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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기억보다 국민 스스로 깨우쳐라" 30돌 맞는 유가협 장남수 회장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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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10  17: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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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10일 낮 서울 창신동 '한울삶'에서 만나 유가협 30년의 의미를 들었다. 장 회장은 1995년 사망한 고 장현구 열사의 아버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사랑하는 자식, 남편, 형제를 잃고 창자를 끊는 듯한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우리 유가족들은 지금도 이 모든 아픔을 딛고 고인들이 썼던 민주의 가시관을 받아쓰는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986년 8월 12일 민주주의 제단에 몸을 바친 이들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계훈제 선생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창립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한때 '문제성 단체'라고 정부에 찍힌 '유가협'이 탄생했다.

"자식들의 뜻을 부모가 대신할 수 없지만, 자식이 못다한 일을 하고자 나온 사람들이 모여 30년이 흘렀다. 서로 의지하며 세월을 이겨냈다"며 30년을 회고한 장남수 유가협 회장을 10일 낮 서울 종로구 창신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남수 회장은 1995년 학원자주화를 외치다 분신한 고 장현구 열사의 아버지로 이듬해 유가협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열사들은 과거에 권위주의 정권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탄압받거나 항거하며 죽은 사람들이다. 가슴아픈 자식들이 죽었을 때,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가 좋게 보지 않았다. 정부를 비판하면 용공세력이라고 했다. 친지나 지인들에게도 속을 털어넣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런 부모들이 여기 모여 한 가족이 됐다."

   
▲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유가협 사무실 '한울삶'.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장 회장은 유가협 30년을 그렇게 회고했다. 유가협 사무실의 이름인 '한울삶'이 '한울타리에 산다'는 의미처럼, 가족을 가슴에 묻은 사연을 안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민주주의 실현의 유훈을 이어받아 모인 것.

함께 자리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전 회장은 "30년은 우리들의 삶에 묻어있다. 많은 분들이 있어 30년을 살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30년을 살았는지, 그때는 하루도 못살 것 같았는데... 부끄럽기도하고 대견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가협은 1986년 창립 이래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가족들의 뜻을 이어받아 1987년 '4.13호헌 선언' 거부 무기한 농성, 1988년 의문사진상규명촉구 및 폭로대회, 1993년 의문사 전면 재조사 촉구 대국민 서명운동, 1999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촉구 274일 천막농성 등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역사는 30주년을 엮은 책 『너의 사랑 나의 투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의 삶이 그래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식 죽음으로 인해서... 되돌아보면 한 것은 없는 것 같지만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보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저희들을 투사라고 하면 우습지만,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 삶이 이어졌다"며 배은심 전 회장은 책 제목의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열사들은 여전히 안식에 들지 못한 상황. 유가협은 정부가 만든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6월 이천시에 문을 연 공원은 총 466억 원이 투입돼, 1만5천여㎡ 부지에 건축연면적 6천970㎡로 조성됐다.

   
▲ 장남수 유가협 회장.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를 두고 장 회장은 "묘역을 만드는 목적은 살아있는 민주교육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죽음이 민주화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대중이 찾아갈 수 있어야 묘지다운 묘지 아니겠는가"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이천 시내에서 오가는 대중교통이 없다. 공원 인근 4km에 마을이 있지만 이 마을을 오가는 버스도 하루에 4차례뿐. 민주교육장으로서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희생자 136명 중 49명만이 안치된 이유도 그러하다.

"정부가 그 곳으로 열사들을 흔쾌히 보내려는 것은 보기싫은 사람들 안보이는 곳에 보내려는 심산 아니냐. 유배다." 

2002년 결성된 유가협 민주공원건립추진위원회는 현재 민주묘지 건립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든 살아있는 민주교육장으로 민주묘지 부지가 조성되면 재추진할 예정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자가 사망 136명, 상해 8백여 명, 피해자 9천여 명이다. 이들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여건도 조성되고 우리의 생각과 맞아떨어진다면, 민주묘원은 언제든 추진될 것이다."

장 회장은 거듭 '사회적 여건'을 강조했다. 2017년 6.10민주항쟁 30년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운동을 곱지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반증이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할 때 우리 손으로 한 것도 아니고, 또 다시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정권에 들어오고, 어느 장교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구조적 모순이 지금까지 이어진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장 회장은 "우리가 아직도 더 싸워야 한다. 우리 부모들도 지금까지 자식 뜻에 따라 운동한다. 서구는 왕정시대부터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몇 백년을 싸웠다. 한국은 비교적 빠르다. 머지않아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열사들을 기억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국민을 대변해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한 분들이다. 같이 기려야 하지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우쳐서 우리의 주권찾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 운동이다."

   
▲ '한울삶' 외벽에 설치된 홍성담 작가의 동판.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자식의 죽음은 단장(斷腸)이라고 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자식들의 죽음을 목도한 부모의 심정도 그러하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주름이 늘어간 30년의 세월에 부모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장남수 회장과 배은심 전 회장은 국회로 향했다.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이들을 기억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 가족들은 고인들이 생전에 그리도 목메어 외치던 민족통일과 민중이 주인되는 새날을 위해 앞장서 투쟁할 것을 온 세상에 선언하는 바입니다." 유가협 창립선언문은 이렇게 갈무리한다. 

'한울삶' 문을 나서다 돌아선 배은심 전 회장의 사투리 담긴 당부. "30주년 행사에 꼭 오시오. 많이들 델꼬 오시오. 그날 다 얼굴 봐야혀".

오는 12일 오후 5시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유가협 3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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