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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보려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포토> 백두산 역사평화기행
황금상  |  hks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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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25  00: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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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상 / 사진작가, 소프트웨어개발업체(www.softville.co.kr) 운영

지난 5월의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한 후배의 제안으로 시작된 ‘백두산 역사평화기행’에 참가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몰랐다. 개인적인 우여곡절 끝에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3박4일 동안 기행은 시작되었고, 내 친구와 친형도 함께 동반했다. 개인적인 소소한 의미도 있어 약간의 기대감으로 시작된 이 여행은 ‘소통과 혁신연구소’가 주최하고,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경기본부’와 ‘평화와 자치를 열어가는 부천연대’가 주최하였다. / 필자 주

 

여순감옥, 일본관동법원지구, 고려박물관

7월15일 오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정도 날라서 중국 대련에 도착하여 첫 방문지는 안중근 의사가 투옥되고 사형이 집행된 여순감옥이었다. 마침 내리는 촉촉한 이슬비가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였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선생도 옥고를 치르다 병사한 곳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던 중국, 한국, 일본, 터키 등의 투사들의 희생을 간직한 곳이다.

   
▲ 여순감옥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두상. [사진제공-황금상]

 

   
▲ 여순감옥의 사형장. 이 장소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진제공-황금상]

 

   
▲ 사형장의 아래 모습. 사형이 집행된 된 죄수를 아래의 원통에  떨어뜨려 넣고 바로 야산에 매장하였다. [사진제공-황금상]

 

   
▲ 여순 감옥의 감방 복도. [사진제공-황금상]

 

   
▲ 여순 감옥. 수형자들이 강제 노역을 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고 옷을 갈아 입은 장소이다. 옷의 곳곳에 혈흔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진제공-황금상]

 

   
▲ 사람을 눕혀 묶어 넣고 고문을 한 도구. [사진제공-황금상]

 

   
▲ 고문도구. [사진제공-황금상]

 

   
▲ 일본관동법원지구의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장소. [사진제공-황금상]

여순감옥과 일본관동법원지구에는 안중근 의사 외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독립 투사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 중국 공산당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셨던 독립 투사들이다. 처음 접하는 그 분들의 자취를 보면서 분단된 국가에서는 독립 운동의 역사도 반쪽만을 배워왔다는 또 다른 분단을 느꼈다. 아래는 아마도 남쪽에서는 모를 '등학고'의 법정 진술 내용이다.

법관 :  피고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느냐?

등학고 : 우리 중국 공산당의 현 단계 목표는 자본가의 폭리를 제한하고 토지 소유권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장래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법관 : 너희들은 자본가의 철도, 공장, 전기기계 사업을 몰수하여 국가 공유하려고 한다.

동학고 : 만약에 이렇게 한다면 직원에게 실제적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법관 : 너희들은 왜 학생, 노동자, 농민들에게 단결을 강화하라고 하느냐?

동학고 : 반드시 필요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음 일정으로 '고려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개인 박물관으로 황희면 관장님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우연히 장터에서 고조선 유물을 발견하고 한민족의 고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사재를 털어 유물을 사들여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관장님의 짧은 강의(?) 속에서 해방 이후에도 깊숙이 자리 잡은 친일 사관을 비판하고, 민족사관에 대한 강한 애정과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 고려박물관. 황희면 관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황금상]

 

압록강단교, 조중철교,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여행 2일차 7월16일 오전 5시반에 일어났다. 전날 숙소로 들어와서 일행과 늦은 밤까지 양꼬치와 함께한 고량주의 취기가 아직도 입안에 머물고 있었지만 간단히 아침을 먹고 7시에 단동에 있는 압록강 철교로 이동하였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더웠다. 차창 밖의 도심 풍경은 간판의 한자 외엔 한국의 다른 소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윗통을 입지 않은 중국  남자들의 모습을 제외하면... 

단동의 압록강에는 두 개의 철교가 있다. 하나는 지금도 북측과 통행을 하는 철교가 있고, 하나는 6.25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끊겨진 철교가 있다. 일명 '압록강단교'.. 압록강 너머로 북측이 보였다.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도 보이고 간혹, 나무 사이로 건물들이 보이지만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가 없다. 

압록강 단교에 올라 북측 방향에서 끊어진 부분까지 걸어갔다. 양쪽에 있는 중국기 외엔 별다른 이국적인 풍경은 없다. 토요일에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중국인들과 한국 여행객들은 평화롭게 보였지만, 강 건너 보이는 북측의 모습도 한적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 압록강단교.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의 조중철교. 간혹 중국에서 북측으로 가는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단교의 끊어진 부분. 당시 미국에서 투하한 폭탄의 모형이 보인다.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 본 북측의 모습. 압록강에서 수영하고 있는 중국인이 보인다.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 만포시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 만포시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 만포시의 모습. 멀리 밭 일을 하는 북측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제공-황금상]

 

   
▲ 압록강에서 본 북측 만포시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다음 일정은 고구려의 수고였던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Km떨어진 환도산성으로 이동했다. 환도산성은 적이 침입하면 국내성을 떠나 적을 방어했던 산성으로 비상시의 왕과 귀족의 대피처인 곳이다.

   
▲ 고구려의 환도산성. [사진제공-황금상]

 

   
▲ 고구려의 환도산성 전경. [사진제공-황금상]

 

환도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로 이동하였다.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비바람의 훼손을 막기 위한 유리벽의 건축물 안에 광개토대왕비가 있었다. 관리인 한 명이 지키고 있고, 안타깝게도 실내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에 까지 펼쳐진 영토에서 대망을 꿈꾸었던 광개토대왕은 지금의 분단된 한반도를 어찌 보고 계실까? 당신을 보기 위해 북측을 멀리 돌고 돌아온 남측 사람들을 반기고 계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왕의 꿈은 우리에겐 과거의 시간 만큼이나  먼 이상일 것이다.

   
▲ 광개토대왕비. [사진제공-황금상]

 

   
▲ 광개토대왕릉. 발견 당시 주민이 능의 석조물 가지고 가서 한 쪽 부분이 많이 기울어져 있다. [사진제공-황금상]

 

   
▲ 장수왕릉. [사진제공-황금상]

 

   
▲ 장수왕릉의 순장묘. 장수왕릉 주변에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개의 순장묘가 있지만 지금은 한 개만 남아있다. [사진제공-황금상]

 

백두산, 장백폭포 

7월17일 기행 3일차인 오늘도 4시 반에 기상하여 6시에 호텔로비에 모이기로 했지만, 전날 밤 과음(?)으로 침대에서 눈을 뜬 시각이 6시였다. 부랴부랴 옷을 입고 10분만에 차량에 탑승했다. 미안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나에게 걱정스레 옥수수, 빵, 우유들을 건네는 일행들... 따뜻한 고마움을 느끼며 백두산길에 올랐다.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 하며 반도에서는 백두산이라 부르고, 눈이 오래 지속된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불리는 산, 반도의 고대사의 첫 머리에 나오는 민족 정기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민족의 산을 오늘 우리는 돌아 돌아서 중국을 통해 오르려 한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혹시, 천지를 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백두산 정상의 날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위로(?)의 말에 우리 일행은 노래 '백두산'을 부르며 천지의 염원을 품고 4시간여 동안의 버스길을 달렸다.

점심 식사 후  도착한 장백산 입구. 일요일 오후임에도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날씨는 흐렸고, 입구에서도 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불안한 마음을 품고 백두산에 올라갈 차량을 갈아탔다.

   
▲ 백두산(장백산) 입구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몇 년 전부터 중국 중앙에서 장백산관리위원회를 두고 직접 관리한다. 생태 보존을 위해 일반 차량으로 백두산에 오르지 못하고, 입구에서 30~40인승 전기 차량으로  천지 입구까지 이동하고, 그곳에서 다시 8인승 지프차 전기차량을 타고 천지까지 이동한다.

   
▲ 백두산 입구에서 천지 입구까지 이동하는 차량에서 본 백두산의 모습. 약 40~50분간 이동하며 길 양 옆으로 밀림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진제공-황금상]

 

   
▲ 백두산 천지 입구에서 천지까지 지프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꼬불꼬불한 길을 지프차를 타고 15분~20분간 오른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지대라 수목은 보이지 않고, 이끼와 같은 작은 식물만 있다. [사진제공-황금상]

 

   
▲ 천지의 모습. 불행하게도 이슬비가 내리는 날씨에 안개가 끼어 천지를 보지 못했다. 천지를 보려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사진제공-황금상]

 

   
▲ 장백폭포 가는 길. [사진제공-황금상]

 

   
▲ 장백폭포로 가는 길. [사진제공-황금상]

 

   
▲ 장백폭포로 가는 길. [사진제공-황금상]

 

   
▲ 장백폭포의 전경. [사진제공-황금상]

 

   
▲ 장백폭포의 하류에 있는 온천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청나라 고궁 

중국 기행의 마지막 날인 7월18일이 밝았다. 오늘은 심양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가 볼모로 잡혀 있었던 청나라 고궁을 방문하고 인천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원래 일정에는 '조선의용군 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관장의 납득할 수 없는 방문 거부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심양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주위에 산이 없고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 잡은 도시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과 냉방기에서 거리로 내뿜는 더운 바람이 도시의 온도를 더 올라가게 하는 것 같았다.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청나라 고궁의 첫 모습은 우리나라의 경복궁보다는 작고 건축물이 조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청나라 고궁의 전경. 건축물의 지붕이 금색인 것은 누르하치가 기거하는 곳이고, 검은 지붕의 건축물은 신하들이 사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의 건축물.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 누르하치가 앉았던 의자.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전통 의상을 입은 중국 소녀 관광객.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의 모습.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의 창문 모양.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의 담에 있는 문양. [사진제공-황금상]

 

   
▲ 청나라 고궁의 천장에 있는 문양. [사진제공-황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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