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겨레의 뜻과 힘을 합쳐 현 난국을 타개하고 남북관계와 조국통일위업 수행에서 획기적 전환을 일으켜 나가려는 절절한 염원으로부터 조국해방 일흔 한 돌을 맞으며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북한은 지난달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남측과 해외를 향해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갖자고 제의했다. 8월 15일 광복절을 계기로 평양 혹은 개성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지난달 27일부터 황교안 국무총리, 홍용표 통일부장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에 공개편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의 연석회의 제안은 5월 초 열린 당 제7차대회에서 남북군사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당시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 인민무력부가 각각 남북군사회담 실무접촉을 제의하고, 김기남 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필두로 한 대남 대화공세에 이은 것이다.
북한의 연석회의는 과연 대남공세의 수준에 불과한 것인가.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논의의 장인가. 1948년 '남북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1948년 연석회의, 단선단정 반대 등 통일원칙 합의
해방직후 분단된 한반도의 최대 화두는 통일이었다. 북한 김일성은 1947년 10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에서 '남북협상방안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유엔에 의한 남한 단독선거가 추진되던 시기로, 여기서 김일성은 남북 정당, 사회단체대표 연석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여기에 1948년 1월 김구와 김규식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 군 철수, 남북요인회담과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연석회의 개최가 물살을 탔다. 그리고 그해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정당, 사회단체대표 연석회의'가 열렸다.
남북 56개 정당, 사회단체를 대표한 695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는 '조선 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 '전조선 동포에게 격함', '미소 양국 정부에 보내는 전조선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요청서'가 채택됐다. 여기에는 단선단정 반대와 이를 위한 투쟁, 미.소 양군 군대 동시 철수 등이 담겼다.
그리고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이 모인 '4김회담'과 남북지도자협의회에서 △외국 군대 즉시 동시 철수, △외국군 철수 후에도 내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단선단정 반대와 불인정 등 4개 원칙에 합의했다.
이를 두고 북한은 "남북연석회의 소집방침은 북과 남의 애국역량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열책동을 단호히 저지 파탄시키고 나라의 완전독립을 실현하려는 온 민족의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남한에서는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의 합의를 실현하지 못했으나, 분단의 길목에서 남북의 정치인들이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었다"고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귀감이라고 의의를 찾는다.
당시 연석회의 이후 북한은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결의대회'를 열고 △통일사업은 조선인민들이 실현하고, △미군과 유엔한국위원단을 즉시 철수하며, △입법기관을 구성하고, △남북정당사회단체 대표로 선거위원회를 구성해 자유선거보장을 위한 대책과 남북정부에 총선거 준비 및 필요조치를 강구토록하며, △외국군대 철수를 살피기 위핞 감시위원회를 구성, 이 위원회로 하여금 남북경찰을 직접 관장토록 하고, △입법기관이 수립되면 헌법을 채택하여 정부를 구성하고 남북정부로부터 정권을 인수토록하며, △남북군대를 통합하되 파르티잔 탄압운동에 참가한 남조선 국방군은 해산토록하라는 내용의 7개 항을 발표했다.
이어 한국전쟁 발발 보름남짓 전인 1950년 6월 7일 '조국전선 중앙확대회의 호소문'을 통해, 8월 5일~8일 사이 총선, 8월 15일 서울 최고입법기관회의 소집하기 위해 6월 15일에서 17일까지 해주나 개성에서 남북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협의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70년 가까이 이어지는 연석회의 개최 제안
북한의 이러한 제안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 고착화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오히려 남측 당국은 북측의 이러한 제안을 대남 정치공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은 해마다 정당.단체 연합회의를 열고 1999년부터 정부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북한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는 1979년 1월 전민족회의, 1988년 1월 남북 연석회의, 1989년 9월 민족통일협상회의, 1995년 1월 대민족회의, 1999년 1월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 등 1948년 남북연석회의의 경험을 이어가고자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여야 불문 정치인 왕래.접촉(2001.1), 당국.민간급 대화.접촉(2002.1), 6.15선언 4주년 평양민족통일대축전 개최(2003.3), 민족명절과 남북공동기념일에 민족적 회합(2004.1) 등으로 제안됐다.
하지만 6.15공동선언과 8.15광복절을 기념한 민족통일대회라는 행사만 열렸을 뿐, 진지한 남북 제정당.사회단체의 통일논의는 없었다. 물론, 6.15, 10.4선언에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정책이 담겨 있었기에 별다른 통일논의가 불필요했고, 실천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정상간 합의가 유명무실화되고 실천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남북간 대화단절과 경색국면 심화, 2015년 8월 전쟁 일촉즉발 상황에 이르는 등 한반도 긴장 고조가 극에 달하면서 북한의 연석회의 제안은 1948년의 그것과 동일시 되는 경향이다.
2016년 연석회의 실현될 것인가
북한은 6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를 열고 '전체 조선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에 담긴 5대 항은 당 7차대회에서 강조된 연방제 방식의 통일 실천과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위해 공개편지를 통해 오는 8월 광복절을 전후해 평양 혹은 개성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위한 북.남.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각 지역에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를 토대로 전민족공동준비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해 7월 중 합의되는 장소에허 실무접촉을 갖자고 했다.
"남측에서 연석회의와 관련하여 시기나 장소, 참가대상과 토의안건 등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한 건설적 의견을 내놓는다면 그것도 허심하게 검토하고 받아들일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토의안건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남한의 북한 핵포기, 인권개선 등의 주장과 충돌해, 합의안건이 될 지 불투명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연석회의가 제대로 열릴 가능성도 낮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번 연석회의가 1948년의 그것과 유사하게 개최되고 합의를 도출하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이 서로 다른 각계각층의 대표들, 더우기 오랜 세월 공산주의를 적대시해온 민족주의 세력과 한자리에 무릎을 마주하고 앉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누구나 내릴 수 있는 용단도 아니였다. 그것은 오직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것을 민족통일전선운동에 구현하시여 빛나는 업적과 고귀한 경험을 쌓으시였으며 애국애족이라는 공통된 이념으로 각당, 각파, 각계각층 인사들을 능히 단합시킬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제시하실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침이였다."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해내외의 각계각층 겨레가 67년 전 4월 민족대단결 마당을 펼쳐놓았던 그때의 애국전통을 살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굳게 뭉쳐 나아갈 때 조국통일 위업은 반드시 이룩될 것"이라며 2016년 연석회의로 이으려 하는 것. 그러자 남한은 이를 '기만적인 통전공세'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1948년 연석회의의 경험은 2016년 연석회의와 다를 수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 끊임없이 진행된 남북대화는 7.4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합의를 만들어 왔고, 그런 합의와 경험은 2016년 연석회의에 담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6년 연석회의를 보다 구체화하고 상설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도 상설기구화하려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연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로두철 내각부총리 등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조직을 구성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이 연석회의 북측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직접 임명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만큼 힘이 실린 셈이다. 여기에 남한은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북한이 밝힌 공개편지를 보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부 정부기관 국회, 정당 지자체 시민사회 종교 개인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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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회의 편지 받으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