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고국을 방문하면서, 광주, 대구, 수원, 군포, 전주, 거창, 청주, 옥천, 서울 등 9개 지역에서 시민단체나 학생들 상대로 15차례의 크고 작은 강연회나 지역모임을 가졌다.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인식과 분단문제를 연결하여 시민운동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함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지역을 순회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여러 곳을 다녀야하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즐거움과 보람이 크다.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에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구촌과 연결된 시민운동, 즉 지역기반의 글로벌 통일운동이 AOK가 꿈꾸고 추구하는 사회운동이기도 하다.

‘평화나비 통일로 가다’를 주제로, 각지역에 맞춘 부제를 택하여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책의 홍보와 더불어 지역의 모임을 다양하게 가졌다. 역사인식에 관해 그리고 분단시대 극복에 관해 지역의 많은 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었다. / 필자 주

 

광주, 전주의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호흡하다

광주의 일반인 대상 지역모임은 내가 직접 주관한 것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지인이 전남대 강의실을 확보해주긴 했는데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문제였다. 6월 7일 전남대 <일본군성노예 문제 현주소와 해결방향>을 주제로 열린 강연회는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공저자인 고은광순 선생님과 같이 출연하는 강연 형식이었는데 주최단체가 청년단체라서 대학 학기말 고사 시기와 겹쳐 회원들 참석이 힘들다고 했다.

▲ 광주 전남대에서 일반인 대상 강연과 좌담회, 착사모(착한사람들의모임) 전경훈 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사진제공 정연진]

그러나 막상 행사날,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오셨다. 주최 역할을 한 광주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착한사람들의 모임'(착사모, 전경훈 회장)을 비롯해 생활정치연구소, 광주시민센터, 광주역사교사모임, 특히 광주흥사단에서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 주셨다. 2년 전 LA흥사단에 입단하여 정식 단우가 되었는데 생면부지의 단우를 챙겨주시는 마음이 고마왔다.

고은광순 선생님은 "민족, 민중의 눈으로 보아야 숲이 보인다"라는 주제로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 강점을 위해 얼마나 치밀한 작업을 해왔는지, 또한 자주독립 세력인 동학혁명 세력을 어떠한 식으로 파괴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앞으로 1백만 명이 동참하는 평화적 저항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위안부 문제 활동가로 오래 일해온 입장에서 왜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미국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특히 역사운동이 국제적 평화운동, 통일운동과 앞으로 연대해 나가서 커다란 물결을 만들어야한다고 발언했다.

시민활동가들이 많아서 그런지 남북관계 정상화, 민주주의 회복, 양극화 문제, 샌프란시스코조약, 등에 대한 깊이있는 토의가 오갔다. 학기 말이라 학생들 참여가 저조했으나 학생들의 반응은 ‘통일은 너무나 멀어보이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라는 의견이었는데 그 중 어느 학생이 ‘북한에 쌀 한 톨이라도 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 광주에서 6월 7일 좌담회를 마치고 남은 사람들과. 남원흥사단 곽충훈님, 비정규직센터 명등룡 소장, 광주흥사단 하재귀 상임대표, 근로정신대 문제 활동을 오래 해오신 김희용 목사님, 생활정치연구소 정달성 소장 등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사진제공: 정연진]

 

▲ 환영사를 하고 있는 생활정치연구소 정달성 소장. [사진제공: 정연진]

 

현 정권 이전에도 이명박 정권 때부터 통일세를 거두어야한다 하면서 통일을 이루려면 마치 전 국민의 주머니가 더 얇아지는 것처럼 선전을 해댔으니, 가뜩이나 구직이 힘든 청년세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북이 한 나라로 되는 것만이 통일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단계를 먼저 생각해보자,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남북이 공동대처해야 할 문제이고 전쟁을 반대하는 국제평화운동 세력과 연대하여 평화의 목소리를 결집해야 한다" 는 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전주에서는 ‘생명평화기독행동’ 모임에서 강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전북의 농민운동, 생명, 평화운동, 통일운동의 중심에서 현장을 중시하는 시민운동을 오랜 기간 해오신 분들이다. 그동안 페이스북으로 소통해온 하연호 선생님이 귀한 분들과의 만남의 인연을 만들어주셨다. 다음에 전주를 찾을 때는 더욱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넘치는 강연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 전주 생명평화기독행동 모임에서 활동가로서 느낀 위안부 문제 해결의 장벽에 대해 설명하는 중. [사진제공: 정연진]

 

▲ 전주 생명평화기독행동 강연을 마치고 몇몇 분들과. 오른쪽 서있는 분이 하연호 선생님. [사진제공: 정연진]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하늘북에서 만난 하늘처럼 맑은 청주 사람들

청주의 시민활동가 이순익 선생님 덕분에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청주지역을 이번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일요일 저녁인데도 단재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하늘북’이란 공간에서 청주지역의 여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소 기념관이 있는 고드미마을이 인근 청원군에 있다. 충북의 여러 활동가들의 쉼터와 회의실 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사무실은 신채호 선생의 대표시 天鼓(하늘북)를 이름으로 쓰고 있다.

▲ 강연을 마치고 청주 단체 관계자들과 OK원코리아 운동을 상징하는 오케이 손싸인을 하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 [사진제공: 정연진]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역의 보금자리인 하늘북은 통일단체 ‘우리의소원’과 소녀상추진위 평화나비 등 소규모 단체들의 이용공간이기도 하다. 하늘북에서 노자 공부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태종 선생님은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를 다시 만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 ‘더불어 가는 길’ 청주 하늘북에서 노자공부모임을 이끄시는 김태종 목사님이 부채에 손수 붓글씨로 써주셨다. [사진제공: 정연진]

 

강연 중에는 통일운동에 대한 최대 걸림돌은 미국이라는 것이 여러 차례 지적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미국이라는 강대국 때문에 우리가 통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외세편향적인 사고’이다. 마침 미국 내에도 이제 경찰국가 그만하고 국내의 문제에 집중해라, 하는 미국민들의 요구가 거세다. 이러한 변화를 잘 활용해야한다.’ 라고 이야기했다.  참석자들의 내 강연에 대한 반응은 ‘어려운 화제를 쉽고 재미있게 강연해 주어서 감사’, ‘세계 평화운동과 연대하면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금까지의 투쟁적 통일운동과는 다르지만 희망이 느껴진다’ 등 긍정적이었다.

▲ 청원군 고드미마을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박자혜 여사의 동상. 독립운동가의 동상에 부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정연진]

 

풀뿌리의 힘으로 역사를 지킨다, 평화의소녀상

이번 지역기행에서 전국 곳곳에 평화의소녀상이 세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립자금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둘러본 곳만 하더라도 전주, 광주, 그리고 청주에 평화의소녀비가 서있었다. 

소녀상의 의미는 물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한다는 뜻으로 우리 역사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한국인 스스로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라는 것을 지역강연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는 적어도 650만 명에 달한다는 엄청난 사실과 함께우리 역사책에서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왜 나라를 이웃나라에게 빼았겨 이토록 많은 백성들이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수반되지 않은 채 일본만 탓하는 것은 외눈박이 역사인식이라는 것과 함께….

또한 소녀상은 이름없는 백성을 상징한다.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과 같이 조선인들은 20세기에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참담한 굴욕과 수난의 역사를 겪었으나 21세기에는 이름없는 백성, 풀뿌리시민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일깨운다. 따라서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가는 여정 또한 풀뿌리 시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 2015년 8월 청주 청소년광장에 세워진 평화의소녀상. 청소년광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쟁을 극복하고 무사히 광장에 건립되었다. 소녀상 뒤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린 그림과 함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빼곡히 적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 정연진]

 

▲ 2015년 8월 전주 기억의 광장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전북겨레하나운동본부가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녀상 뒤의 평화나비 조형물은 지역예술인 김두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소녀상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김서경 김운성 부부작가의 작품. [사진: 정연진]

 

▲ 광주시청 시민의숲 광장에 들어선 평화의소녀상.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는 다르게 서있는 모습으로 안경진 작가의 작품이다. [사진제공: 착사모]

 

광주시청 시민의숲에 작년 8월 14일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을 위해 '착한사람들의모임'(착사모)이 이끌어낸 시민 모금과 크라우드 펀딩, 재능 기부 등을 통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는 다르게 서있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평화의소녀상’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착사모 회장 이야기이다. 그래서 세우는 것 못지 않게 사후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의미있는 행사를 많이 해야, 사람들에게 기억이 된다고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시의 소녀상의 예를 들어주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번에 AOK 지역간담회가 평화의소녀상을 세우게끔 결의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6월 14일 고은광순 선생님과 내가 연사로 출연한 일본군성노예 문제 간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이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옥천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자고 결의한 자리가 되어서 한층 의미를 더했다.  

아하, 나비효과를 부르는 시민운동

이번의 지역강연회는 주로 ‘평화 나비 통일로 날다’라는 주제에 지역에 맞는 다양한 부제를 붙여서 진행했는데, 그리고 보니 ‘위안부’ 할머니들이 전개하는 평화운동도 ‘나비기금’인 것이 떠올랐다.

나비는 인권과 자유,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기에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모티브로서 썩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분단 71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세계 제일의 큰 무기 수입국이자 자살률이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죽음의 문화가 가득 찬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암울한 분단의 땅에서 어두움을 뚫고 나비가 날아드는 환하고 따스한 한반도의 모습을 상상하자.

애벌레가 암흑의 시기를 이겨내고 환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듯이 현재의 죽음의 문화로 뒤덮은 분단 시기를 극복해내고 생명과 자유로 충만한 한반도의 모습이 우리가 마땅히 꿈꾸어야할 통일조국의 모습이다.

 

밝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풀뿌리 시민들이 이루는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할 때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주인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 광주에서 만난 활동가 한 분이 AOK의 취지를 들으시곤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 AOK가 하고 있는 풀뿌리운동은 “누구나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소중한 운동이다.  낮은 차원의 풀뿌리 운동이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날개짓은 작지만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그 날, 통일이 세계적 대세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묵묵히 우리 함께 정진하자. 지역의 힘, 풀뿌리의 힘을 연결시켜 나비가 통일로 날아가는 여정을 함께 준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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