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김일성의 두 삼촌이 문제가 되고 있다. 1920-30년대의 항일독립운동 때문이다. 아버지 김형직의 동생 김형권은 1930년대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서울의 감옥에 갇혀 죽었다. 어머니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 역시 1920년대 독립운동을 하다 옥살이 후 병으로 죽었다. 이에 보훈처가 친삼촌 김형권에겐 2010년, 외삼촌 강진석에겐 2012년 건국훈장을 주었다는데 이게 시빗거리가 된 모양이다. 김일성의 친인척에 훈장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날엔 조상의 죄로 후손이 해를 입는 억울한 일이 무수히 많았다. 이젠 조카 때문에 먼저 죽은 삼촌들의 오래된 공덕이 훼손되는 애꿎은 일이 벌이지고 있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정권 때 폐지됐던 연좌제가 거꾸로 솟아오른 셈이다. 냉전이 끝난 지 거의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북한에 대한 편견과 왜곡은 바로잡히지 않고, 민주화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도 치졸한 정치는 그치지 않는다. 흔히 그래왔듯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수구꼴통’ 세력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진보적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정통보수’ 더민주당에서 딴죽을 건 게 충격적이다.

김일성이 우리에게 대역 죄인이 된 것은 6.25전쟁 때문이다. 해방 전엔 독립운동을 벌이던 친가와 외가 어른들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옥살이를 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사람이다. 지난날 정통성 없는 친일독재정권들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그를 ‘가짜’라고 터무니없이 왜곡하고 폄하했을 뿐이다. 그는 결코 ‘분단의 원흉’도 아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을 해소하려고 전쟁이라는 잘못되고 끔찍한 방법을 택한 것 아닌가.

우리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치를 떨며 원한과 적개심을 품게 된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다. 해방 이전 일제하에서는 물론 광복 이후 미군정 아래서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무렵 조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와 소작농 또는 소농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일파와 지주 그리고 자본가계급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원했을 뿐이다.

이런 터에 한국전쟁과 전혀 관계없이 그리고 분단도 되기 전에 일제에 맞서 목숨 바쳐 독립운동하던 애국자들을 공산주의자거나 김일성의 친인척이라고 훈장을 주지 않거나 주었던 훈장을 박탈한다는 것은 정말 유치하고 졸렬하다. 35년간의 일제식민통치를 당하고 그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아직도 친일세력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인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연좌제 부활은 안 될 일이지만 굳이 이를 만지작거리려면 ‘친북’에만 악용하지 말고 ‘친일’에도 적용하기 바란다.

김일성 삼촌들의 공적을 두고 민족문제연구소와 더민주당 쪽에서 시비하는 게 ‘수구꼴통’ 보훈처장을 쫓아내기 위한 것일지라도 잘못이다. 유신을 찬양하는 DVD를 만들어 배포하고 안보교육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으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줄기차게 막는 등 그의 죄와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김일성 삼촌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의 사퇴를 추진하는 것은 좋지만, 올바른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얻은 게 있다. 북한 지도자들이 훌륭한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친북을 하든 반북을 하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죄악이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든 대북제재나 전쟁을 통한 흡수통일을 지향하든 북한이나 그 지도자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지 않은가.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