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고국을 방문하면서 성공회대, 전남대, 한신대, 경희대 등 대학교를 비롯해 광주, 대구, 수원, 전주, 거창, 청주, 옥천, 서울 등 8개 지역에서 15차례의 크고 작은 강연회나 지역모임을 가졌다.

정부가 12.28 한일합의를 강행하면서 다시금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중심으로 한 역사이슈와 분단문제를 연결하여 시민운동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함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성세대에 비해 참으로 힘든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와의 만남에서 장면 장면을 기억해 보았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수업시간

6월 1일 성공회대 사회학과(김동춘 교수) 수업시간에 특강을 하게 되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분단문제를 연관지어 ‘평화나비, 통일로 날다. 일본군‘위안부’문제와 미완의 광복’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

사회학과 학생들이니 만큼 역사문제에 대해서 관심있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터. 나의 강연내용 보다는 학생들의 반응을 적고 싶다. 학생들은 역시 통일문제보다는 한국사회 현안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기억나는 질문 몇 가지를 적어본다.

▲ 성공회대 사회학과 3,4 학년 수업시간에 만난 학생들. [사진제공 - 정연진]
▲ ‘평화나비, 통일로 날다’ 주제로 강연 중인 나. [사진제공 - 정연진]
 

질문 1: 위안부 문제나 세월호 문제나 국민을 지키기 못한 점에서는 매한가지 인 것 같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떠한 의미로 건국된 나라인가, 건국 정신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질문2: 청년세대가 3포, 5포, 7포 세대를 넘어 N포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보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왜 우리가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무엇 무엇 무엇을 다 가져야 하나, 어른들이 부모세대 방식으로 살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부모 세대의 방식대로 살지 못할 경우 무엇 무엇을 포기한 N포 세대다. 좌절의 시각으로 보려하는 것 아니냐. 부모세대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질문 2: 선생님 이야기에서 북에서 남으로 분단의 장벽을 넘어온 위민크로스 DMZ 가 인상깊다. 해외인사들이 그렇게 북에서 남으로 넘어서 올 수 있는데 북한을 향해 총쏘고 살벌한 갈등에 매 순간 몸사리며 생활했던 군대 경험이 대조된다. 그렇게 북한에 실제로 가보니 어떠했는지, 북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질문 3: 왜 하나의 코리아가 되어야하나? 두 개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사이좋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북과 우리는 너무나 다른 것 같은데 하나로 합쳐서 살아가는 미래는 상상이 안된다. 그것보다 휴전 상태를 종전으로 끝내야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대학생 연령이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도전적 문제까지 제기하는 청춘을 만난다. 많은 기성세대의 우려와는 달리 이들의 의식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북문제에 단계적 통일 발상까지 생각하기도 했고, 특히 ‘N포세대’ 라는 기성세대의 프레임에 문제제기를 하는 당찬 학생도 있었다. NGO 학과가 유명하고 진보적 공부를 많이 하는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은 ‘역시 다르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들에게 내가 감동을 받았다.

▲ 진지하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성공회대 사회학과 학생들과 함께. 오른쪽은 김동춘 교수. [사진제공 - 정연진]
 

대구 일본군’위안부’역사관

6월 6일 현충일 이른 아침. 작년에 풀뿌리 시민의 힘으로 건립된 대구 위안부역사관에서 열린 대구 경북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제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해마다 현충일에 이러한 추모제가 열린다고 한다. 대구에 유명한 이용수 할머니가 단골 연사로 참석하신다.

현장에는 인근에서 또 멀리서 100명 가까이 고등학생들이 참석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역사관의 홈페이지를 보고 자발적으로 신청한 것이라 한다. 아, 기특한 학생들이 이렇게도 많다니!

미쯔비시 징용자 소송으로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와 내가 연사로 출연한 토론회에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적극적으로 응대하면서 경청했던 학생들이 던지는 압도적인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하는 것이었다.

▲ 대구경북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학생들. 맨 왼쪽 앉아있는 분이 올해 89세이신 이용수 피해자. [사진제공 - 정연진]
▲ 대구경북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서 학생들에게 AOK평화보자기를 설명하고 있는 나. [사진제공 - 정연진]
 

내가 한 대답은 “‘위안부’라는 제도도 전쟁이 있기 때문에 생긴 성노예제도 이므로 우리는 전쟁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라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지구촌에 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수 있기 위해 “평화를 원하는 세계 시민들을 끌어들여 그들과 함께 평화코리아를 염원하기 위해”, ‘평화’를 세계 각국어로 써넣은 OK원코리아 평화보자기를 펴보이며… “평화코리아가 한국인만이 아닌 세계인의 드림이 되게 하자는 뜻이다”라고 말해주었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일본의 청소년들과 교류하고 협력해 전쟁반대, 평화 염원 활동을 하는 것을 유튜브 등 SNS 에 올리고 지구촌에 알려나가야 한다. 마침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는 헌법으로 헌법을 고치려는 세력에 대항하는 청년세대의 전쟁반대 목소리가 왕성하다. 한-일 청년들이 함께 연대하여 평화의 목소리를 점점 키워나가자.

또한 중요한 것은 ‘세계인들에게 이 문제는 단지 한일 간의 갈등이 아니라 ‘성노예’라는 참혹한 인권유린 제도가 없어야한다는 인류 보편성에 입각해 해결되어야하는 문제임을 당당히 요구하자”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평화보자기를 테마로 학교에서 정식 프로젝트로 해보기를 원하다는 학생과 선생님이 다가왔다. 감동이었다.

한신대 역사학과 수업시간

한신대학교 역사 수업시간. 강연에 앞서 나를 초대한 교수님이 당부하신다. “강의하다가 분노하지 마세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강연하다 말고 왜 분노를 해요?”

▲ 한신대 역사학과 수업시간. 미국에서 바라보는 일본군성노예문제 현주소와 해결방안을 주제로 특강을 하게 되었다. [사진제공 - 정연진]
 

“요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도 계속 눈 내리깔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립니다. 올 초에 국내 최고의 저명한 학자가 500여명이 수강하는 대형강의실에서 강연하다가 학생들이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말을 안 듣고 핸드폰만 보자 크게 화를 내고 강연장을 박차고 나가버리셨습니다.”

“아.. 그런 일이… 걱정하지 마세요. 더군다나 학기말고사 중이니 학생들이 졸지만 않아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 강의가 끝난 후 남은 학생들과. AOK 평화운동에 호응하면서 생기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 [사진제공 - 정연진]
 

학생들은 “일본군성노예 문제의 현황과 우리의 나아갈 길”이라는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강연을 학기말 시험 중인데도 제 강연은 휴대전화를 그다지 들여다보지 않고 잘 들어 주었다. 각박한 취업전쟁 시대에 학기말 중에 이런 강연을 듣는 것이 고역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역사문제 그리고 분단을 넘어서자는 통일 이야기, 사실 너희들 현실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겠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가까운 미래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란다. 귀담아 들어주어서 고맙다. 얘들아. 너희들이 대한민국의 희망, 통일 코리아의 희망이란다.

옥천, 지역 문화회관

옥천신문사 주최로 평화운동가 고은광순 선생님과 함께 강연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현황과 우리의 나아갈 길’ 좌담회에는 지역에서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올까, 무척 궁금했다. 주최측 말이 동원되는 행사가 아닐 경우 대개 30명을 넘기기 힘들다는데 50명정도 오신 것 같다.

더우기 젊은 엄마들과 역사선생님들이 많이들 오셨다.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통일이슈 강연에는 주로 50,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참석하는데 옥천지역은 예외였다. 생생한 기운이 느껴졌고 참석자들에겐 연령을 가리지 않고 젊은 의식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옥천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선일보>가 침투하지 못한 지역이다. 1989년 창간된 지역신문인 <옥천신문>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공동체를 튼튼하게 지키는 버팀목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기자들도 무척 젊다. 이번 행사도 4년전에 우연히 옥천신문사를 방문했다 알게되었던, 당시 대학 졸업한지 얼마 안 된 박누리 기자 덕분이다.

▲ 옥천신문사 주최로 열린 좌담회. [사진제공 - 정연진]
▲ 윗줄 왼쪽부터 <옥천신문> 이현경 기자, 박수정 기자, 이인재 대표, 정연진,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 이창욱 기자, 권오성 기자, 박누리 기자. 아랫줄 왼쪽부터 장재원 부국장, 임만재 군의원. [사진제공 - 정연진]
 

지역이 희망이다. 그리고 청춘이 희망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글로벌 경제체제 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언론에서는 N포 세대다, 청년실업이다, 자살률이 어떻다, 늘 암울한 시각을 떠들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대한민국의 청춘은 여전히 절망보다는 희망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한국에 갈 때 마다 지역을 꼭 순회하는 이유는 지역공동체 기반의 풀뿌리 통일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AOK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국제적으로 네트워킹이 된, 지역기반의 글로벌 시민운동을 추구한다.

모든 것이 중앙 중심이고, 과도하게 수도권에만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안쓰러운 현실. 그러나 지역이 있어야 중앙도 있는 것이지…. 풀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도 있고 숲도 있다.

통일로 가는 길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동안 한국인들은 너무도 ‘국가’라는 집단의식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 틀을 잠시 내려놓고 지역공동체가 세계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형태로 성장하면서 국가를 다시금 바라볼 때, 미래지향적인 통일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는 통일 비전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죽음이 일상화된 나라, 암울한 그림자가 기운 분단의 땅에서 나비가 찾아드는 온전한 축복의 나라, 밝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서로에게서, 공동체에서 찾아야한다.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기죽지 않는 젊은 세대의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자신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지역공동체를 아끼고 풀뿌리 정신을 보듬어 나가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한국인들은 해낼 것이다. 통일 코리아에 이르는 험난한 길을 풀뿌리의 힘으로 담대하게 개척해낼 것이다.

2016년 6월의 지역순회에서 희망과 감동을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지역에서 만난 모든 분들, 청춘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이야기한 젊은이들, 모두 모두 고맙고,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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