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 원장)

 

북한은 이젠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되었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핵 보유국인 북한을 어떻게 핵을 포기시키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문제는 국제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임이 틀림없다.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키고 미.중.러.일, 남북 6자가 합의한 9.19공동성명에 담긴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와 해법이 범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현실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 칼럼에서는 지금까지 제안된 북핵 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북한 스스로가 핵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핵포기 핵심 5대 조건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북핵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북핵 해법의 문제점

지금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북핵 해법의 실패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 이유를 알면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요약하면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와 압박정책으로 북한체제의 생존보장 없이 핵 포기를 요구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밝혔고 김정은 체제의 생존과 안보를 보장하면 핵을 가질 필요성이 없다고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강도 대북제재와 압박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북한은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북한체제의 생존을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핵 억제력을 최고 수준에까지 증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북핵 해법을 가지고는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혁신적인 새 북핵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 포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은 적대적 국가들로부터 포위당하고 있다는 피포위강박증(siege mentality)을 앓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어떻게 하면 피포위강박증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가? 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북핵 해법의 핵심은 국제사회가, 특히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가 북한을 피포위강박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므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포기를 위해서는 한.미 양정부는 대북제재/압박정책을 접고 큰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협력을 장기적으로 구상하는 새로운 로드맵을 짜야 할 것이다.

한.미 양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입장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창의적인 새 구상을 위해 북한입장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스티븐 보스워스 전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로 대북전략을 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려면 테이블에 앉아 대화해 보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필자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비핵화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고집한다면 오히려 미국의 대화 진실성 여부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고 재강조하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해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선결 과제"라고 강변했다.

한미 양측이 선(先)비핵화 조치를 고집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킬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현재 미국의 선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미국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역할을 무시하지 못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강조해 미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국도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고 있어 미국이 비핵화 사전조치를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해 미국이 한국에게 첨단 무기판매, 중국을 견제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구축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5대 핵심조건

한국 언론에서 별로 언급하지 않은 유엔안보리의 결의 2270호의 49항과 50항이 있다. 즉 49항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의 촉진"을, 50항은 6자회담 재개와 비핵화, 미국과 북한의 상호 주권존중과 평화적 공존을 내용으로 하는 9.19공동합의를 명기한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대북 제재와 대화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 결의 2270호의 정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대화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대북제재만을 강요하고 있다. 49항과 50항을 성실히 준수하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은 6월 13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라고 밝히고 “성급히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서 모처럼 형성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모멘텀을 놓친다면 북한 비핵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대북제재와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한겨레신문(6.20)은 단독기사에서 한국정부는 6개월 동안 대화와 교류 없이 대북제재와 압박을 하면 북한이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정부고위 관리가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이런 성급한 판단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알고 싶다. 현재 유엔결의 2270호가 다소 실효성이 있긴 하지만 9월에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이해가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국내외 환경조성을 만들어 나갈 필요성이 있다. 특히 북한과의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만약 9월까지 정부가 원하는 대로 북한이 무릎을 꿇지 않으면 북한과 대화를 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길 기대한다. 생산적인 대화 없이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타결하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와 압력에 “굴복”할 것이란 낭만적인 환상에서 조속히 깨어나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 북미 간 트랙 2차원의 3차례 회동에서 북한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고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다단계 협상 프로세스'를 주장하였다. 제네바 합의(1994)나 일련의 6자회담 합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로 나눠 양측이 필요한 단계적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방식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종착역이다. 협상분야는 비핵화, 정치, 군사, 경제 분야 등 네 가지로 나눴다. 군사 분야에는 평화조약과 한미군사훈련도 논의될 수 있으며 경제 분야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북한의 비핵화 협상의지를 고려하여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사전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한미 양측이 사전조치에 유연성을 갖고 단계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첫 단계로 핵 동결과 핵 비확산 체제로 유인하는 딜(deal)을 위한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이 갖고 있는 피포위강박증(siege mentality)을 해소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핵무기를 가질 필요성이 없는 바람직한 동북아 체제의 구조적 변화와 동북아 환경이 조성된다면 북한이 피포위강박증(siege mentality)으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핵 포기를 위한 5대 핵심 조건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로, 가장 주요한 조건은 건설적인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화이다.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주축이 되어야 함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은 남과 북이 양보와 타협을 통한 협상 없이는 이룰 수 없다. 남북 간 건설적인 대화 없이 어떻게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비핵화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남북이 기본조약 체결로 서울과 평양에 각각 대표부를 설치하여 남북 간 정상국가 관계로 발전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한과 미.중.러.일 4강 간의 교차 승인이 완료되어야 한다. 한국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와 국교정상화를 맺은 지 25주년을 넘었지만 아직도 북.미/북.일간 국교정상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미 및 북.일 외교 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렇게 되면 남북한과 4강의 교차승인이 완료하게 된다. 남북한과 4강 간의 외교 관계의 정상화가 이뤄지면 적대적이고 호전적인 북한의 군사적 도발행위도 해소될 것이고 보다 우호적인 상호관계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협력적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중 간 협력체제는 동북아 체제의 안정화를 가져오게 되고 그리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변수이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간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하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중 간 갈등구조는 동북아 불안정 요소로 남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은 인센티브(incentives)로 남게 될 것이다.

넷째, 현 정전체제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63년간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이 바람직하다.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1974년부터 일관성있게 주장하여 왔으나 한국과 미국 양측은 북.미 평화협정을 반대하여 왔다. 그래서 필자는 북.미 평화 합의문을 포함하는 한반도 평화조약(A Korean Peninsula Peace Treaty) 체결을 제안하여 왔다. 이 조약은 북.미 평화협정보다 더 강력하고 구속력 있으며 유엔에 등록한 다자 국제조약이 될 것이다.

다섯째, 지난 8년 동안 고사상태인 6자회담을 재개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남북한과 미.중.일.러 6자가 합의한 9.19 한반도 비핵화 공동성명(2005)을 실천 이행하여야 한다. 동시에 9.19공동성명에 합의한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 4자 간 한반도 평화포럼을 개최해, 위에 제안한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논의하여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유리한 동북아 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요약하면, 필자의 구상은 미.중.남북 4자가 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이들 4자와 러시아 일본이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동시에 실현함으로써 동북아 체제의 바람직한 구조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상기 5대 조건이 형성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북한이 피포위강박증으로부터 해방이 되면 핵 보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돼 북한 스스로가 핵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을 기대해 본다.

 

한국외국어대학 학사, 미국 클라크 대학교 석사,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 경남 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통일연구원 원장 역임. 현재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사) 동북아 공동체연구재단 상임고문, 통일전략연구협의회 (Los Angeles)회장. 31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200편 이상의 학술논문출판; 주요 저서:『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공저: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등; 영문책 Editor/co-editor: One Korea: Visions of Korean Unification (Routledge:Taylor & Francis Group, forthcoming, 2016);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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