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정부는 유엔군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해군과 해경으로 편성한 민정경찰(Military Police)을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들여보냈다.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정전협정 발효 이후, 이 지역에 남측 선박이 진입한 사례는 1997년 북측 양해 하에 '유도로 떠내려간 소 1마리 구출작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민정경찰 투입에 대해서는 “63년 만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군사분계선(MDL), 한강하구 중립수역, 그리고 북방한계선(NLL)

▲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정부가 작성한 지도. 붉은색 칠해진 지역이 '한강하구 중립수역'. [자료사진-통일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윌리엄 해리슨 미국군 중장과 남일 북한군 대장이 각각 유엔군사령관, 북한 및 중국군 사령관을 대신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육상에 ‘휴전선’이라 부르는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그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 후방으로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했다. 무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구역인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한 것이다. 이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각각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설치했다.   
 
정전협정은 또한 육상 군사분계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해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한강하구 지역을 ‘중립수역’으로 설정했다. 좁은 곳은 폭이 약 900m인 강을 사이에 두고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어,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서해에는 훗날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졌다. 

국제법적으로 바다와 달리 하천에는 자유항해가 보장된다. 특히, 접경지역 하천에는 인접국들 간 무장충돌 방지를 비롯한 안보 우려 해소, 민간선박의 자유 항해를 보장하는 균형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 정전협정 제1조 5항과 그 후속합의가 탄생한 배경이다.    

정전협정 제1조 제5항은 다음과 같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부분의 한강하구의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규정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해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지도상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도 서도면 볼음도까지 67km 구간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이다.

정전협정 제1조 제5항에 따라, 양측 군사정전위는 1953년 10월 3일 제22차 회의에서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을 채택했다. 1주일 뒤 발효된 이 규칙은 육상 비무장지대(DMZ)에 적용되는 규정을 중립수역에 준용하여, 군사정전위의 허가 없이 군용 선박과 병력, 무기.탄약을 실은 민용 선박 출입을 금지했다.

양측 모두 중립수역에서 쌍방 100m까지 진입할 수 없게 하고, 군사정전위원회에 등록한 선박에 한해서 중립수역 중앙으로 항해할 수 있게 했다. 

순찰 목적으로, 양측이 각각 최대 4척의 민정경찰용 선박, 24명을 넘지 않는 민정경찰 인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상대편 만조 때 땅과 물이 경계를 이루는 선을 기준으로 100m 안으로의 진입은 금지했다.

중국어선 단속 근거는 군사정전위 ‘사전등록’ 

정부가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바로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이다. 

△선박이 중립수역에 들어오려면 군사정전위에 등록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고, △대부분 국적 표시 깃발을 달지 않았으며, △야간활동 금지 조항도 어겼다는 점을 들어, 중국 어선들을 ‘무단진입 선박’으로 규정하고 민정경찰을 투입해 단속한 것이다. 

문제는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공동기구로 출범했던 군사정전위원회가 현재는 이름뿐이라는 데 있다. 

지난 1990년 2월, 한.미가 미군 장성이 맡아오던 군사정전위 유엔사 측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을 임명하자 북한은 군사정전위에 불참하고 별도로 판문점대표부를 출범시켰다. 중국 측도 군사정전위에서 탈퇴해 정전협정의 세 축 중 하나가 무너졌다. 이후 정전협정 사안은 북측 판문점대표부와 유엔사 군사정전위 (또는 북.미 군사회담) 틀에서 드문드문 논의됐다. 북한이 지난 2013년 3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에는 그 틀마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중국 어선의 ‘사전등록’을 받아줄 적법한 기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중립수역에 자국 어선을 들여보내기 위해 중국이 북한을 건너뛰고 유엔사 측 군사정전위에 등록 신청을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중국은 유엔사, 북한과 함께 정전협정의 당사자다.

한.미는 왜 지금 중립수역에 군.경을 들여보냈나?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에도 이 수역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이어지자 외교적 조치의 한계를 인식해 민정경찰을 운용하기로" 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또, 유엔사 군사정전위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미리 북측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20일 현재, 북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가 “한강하구에서 중국어선이 완전히 철퇴될 때까지 작전을 펼칠 계획”이어서, 향후 북측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에 나설 수 있다. 북측의 남북 군사회담 제안을 남측이 뿌리치고 있어, 대화의 기회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번 작전에 나선 한국 정부의 처지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다만, 미군 장성이 사령관으로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63년 만에 민정경찰 작전을 승인한 배경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우선, 한강하구를 비롯한 서해 일대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DMZ나 NLL과 마찬가지로, 한강하구에서 유엔사의 최우선 임무는 우발충돌 방지다. 유엔사가 63년 간 이 지역에 군.경을 들여보내지 않은 이유다.       

▲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사진-청와대]

최근 변화라면, 지난 4월 30일 빈센트 브룩스 육군대장이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으로 취임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부임 전에 태평양 육군사령관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아.태 재균형’을 이행해온 대표적인 인사다.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태평양사령부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방안을 입안해온 그가 ‘중국어선 단속’이라는 명분에 본능적으로 이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 지도부는 중국이 해양진출의 선봉장으로 어선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공공연히 표출해왔다.

민정경찰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중국어선 단속작전에 나선 시점(6.10)에도 눈길이 간다. 

9일 새벽, 중국 호위함 1척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접속수역에 진입했다. 미국의 ‘아태 재균형’에 보조를 맞춰 남중국해 문제 개입을 확대하던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중국에 허를 찔린 것이다. 그 다음날 브룩스 유엔군사령관 승인 하에 서해와 인접한 한강하구에서 중국어선 단속 작전이 실시됐다. 무려 63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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