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조치 이래로 최근까지 진행된 한국 정부의 외교활동을 보면 북한 붕괴를 당면과제로 설정한 듯이 보인다. 한국의 보수세력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면 북한주민을 하루라도 빨리, 한 명이라고 더 많이 탈출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시각에서 탈북사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방주를 만드는 노아나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에 견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정책책임자들은 허황한 생각을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붕괴는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남이 강요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국가들의 관계에서도 손익은 언제나 상호적이다. 군비경쟁을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쪽이 전쟁을 시작한다는 엄청난 통찰이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나온다. 평화체제의 확립을 목표로 정책방향을 올바로 잡지 않는 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탈북자 김련희 씨의 상황을 지적해보겠다. 인권문제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북한인권단체들이 북한 당국을 상대로 행사하는 외교적 공세수단이었다. 오로지 북한문제였다.

그런데 요즘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남한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인권상황에 수차례 경고음을 보내다가 며칠 전 한국의 시민적 권리 실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평가는 여전히 시민사회가 직면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의 침해상황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탈북자나 외국인노동자, 이주자 등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인권침해상황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미 2015년 인권이사회는 보편적 정례검토에서 특히 탈북자 억류시설(보호센터)의 인권침해 상황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서 인권이나 민족애와 같은 기준이 작용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애초부터 탈북자는 그저 분단체제 아래서, 이데올로기적 적대구도 속에서 정치적으로 양산되고 소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양시민이자 대구시민으로 알려진 김련희 씨는 참으로 불행한 사례이다. 그는 지난 5월에 베트남 대사관에 진입하여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또다시 표명하였는데, 정부 당국이 국내의 실정법을 내세워 거부하였다.

나는 김련희 씨의 문제를 그의 시선에서 권리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많은 매체들이 김련희 씨의 인도주의적 송환을 주장하며 인도주의라는 단어를 좋은 의도로 사용하지만 김련희 씨의 송환은 인도주의 사안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다.

김련희 씨 주장에 의하면 그는 2011년 중국 여행 중 브로커에 엮여 남한에서 돈도 벌고 간경화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경솔한 판단에 남한에 입국하였는데, 합동신문센터에서 사태를 파악한 후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견을 표시하였지만 당국이 수용하지 않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처리’되었다.

그는 여권을 발급받아 해외로 나가 북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지만 국정원의 특이자 지정에 의해 여권도 발급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간첩행위를 하면 추방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탈북동료들의 신상과 전화번호를 수집하여 간첩행위를 하였다고 자수하여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를 추방하지도 않고 여권을 발급해주지도 않았으며,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가족을 접촉할 기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도가도 못하고 5년이 흘렀으니 이 이야기는 한 백년 뒤에 발간될 『분단설화집』에 실릴 만도 하다. 나는 이 사건이 더 비극적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

김련희 씨가 입국 직후부터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 국적을 강제적으로 부여한 것이 국제법상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다. 국적에 대한 근본적인 원칙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국적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세계인권선언 제15조). 그렇다면 김련희씨는 의사에 반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현재로서도 그가 한국 국적자인지 확신할 수 없다. 김련희 씨가 정보 수집행위로 간첩죄의 유죄판결을 받고 형기를 대략 마쳤으니 외국인(북한인)으로서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김련희 씨가 한국 국적자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국제인권법은 이러한 사태에 기준을 제시해 놓았다. 세계인권선언 제13조나 자유권규약 제12조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나라를 포함해서 어느 나라든지 떠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이 김련희 씨에게 국적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대한민국을 떠날 권리가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1999년 <이동의 자유에 관한 일반논평 제27호 CCPR/C/21/Rev.1/Add.9>에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일반논평에 따르면, 여권발급은 국적국의 의무이며, 여권발급을 거부하거나 갱신을 거부하는 조치는 이러한 출국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인권규약위반이다(일반논평 제27호 9항). 김련희씨를 한국 국적자로 간주한다면 한국정부는 여권을 발급해주어야 한다.

물론 떠날 권리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므로, 이 권리도 제한될 수 있다. 출국권의 제한은 법률에 규정되어야 하고, 제한이 민주적 사회에서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공중도덕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의 보호에 필요하고, 규약에서 인정된 다른 모든 권리들과 양립해야 한다(제27호 9항). 나아가 출국권에 대한 제한은 비례성, 상황에 대한 적합성, 목표달성에서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어야 한다(14항). 권리를 제한하더라도 원칙과 예외를 역전시켜서는 안 되며, 제한을 설정하는 법도 정확한 기준을 사용해야 하고, 그 실행에 책임이 있는 담당자들에게 무제한의 재량을 부여해서도 안 된다(13항).

실제로 이러한 제한기준에 비추어본다면 김련희 씨의 출국제한조치는 너무나 포괄적이고 무제약적이다. 영원히 보내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판단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김련희 씨 사건과 좀더 직결된 사항들도 일반논평에 포함되어 있다. 일반논평에 따르면 개인이 국가기밀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국을 금지하는 조치는 허용되지 않는다(16항). <이동권에 대한 스트라스부르 선언(1986)>에 따르면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출국권의 제약은 막연해서는 안 되며 출국권의 행사가 국가에게 명백하고 임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는 상황에서만 허용된다. 심지어 개인이 군사적 기밀사항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출국권을 제약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제한은 무기한으로 확대될 수 없으며, 그러한 기한은 개인이 그러한 비밀을 취득한 이후 5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밝히고 있다(제4조).

실제로 김련희 씨가 취득한 탈북자들의 신상정보가 대한민국의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내용이라고 보이지도 않으며 중차대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무제약적으로 김련희 씨의 출국을 거부하는 것은 국제인권법의 심각한 침해에 해당한다.

더구나 그의 한국 입국상황의 비정상성까지 감안하여 국제인권법의 눈으로 사태를 검토한다면 그를 왔던 곳으로 돌려보냈어야 맞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입국적부심사제(入國適否審査制)>의 도입을 촉구한다.1) 구속적부심사제를 통해 형사절차상 구속의 타당성을 다투듯이,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자발적으로 입국했는지 여부를 전담재판부 앞에서 완전하게 소명하는 절차를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도입하는 것이다.

브로커들의 무리한 기획탈북이 분단극복에 도움을 줄지 의문이지만, 그들의 작업이 최소한 노아의 방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정은 알아야 한다. 김련희 씨 사건은 처음에 간단한 조치로 시정할 문제가 난제 중의 난제로 발전하는 과정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탈북자의 문제는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체제의 고유한 문제였다는 사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1) 이재승, 신체를 보여라!, 인권연대(2016-5-18), http://hrights.or.kr/technote7/board.php?board=bal&command=body&no=671

 

 

서울대법학박사

전 국민대, 전남대 교수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년 <국가범죄>로 임종국상 수상

로베르토 웅거 <주체의 각성(2012)> 야스퍼스 <죄의 문제(2014)> 번역
국가폭력 및 인권문제에 관한 논문을 민주법학에 규칙적으로 투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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