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북한법 박사, 사단법인 피스코리아 상임대표)

 

  일본은 항복하기 직전 계획적으로 한반도를 분단시킨 만행을 저질렀다. 1945년 8월 8일 새벽, 스탈린을 긴급 방문한 일본 정보 요원들의 제안을 당일 실행에 옮겼다. 당일, 일제는 8월 15일 항복 전에 소련군이 한반도 중 38선 이북 지역을 미리 점령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임을 극비리에 전했다.

  일제의 ‘8.15 항복’이 이뤄지면 UN군은 일반명령 1호에 의거, 한반도 전역에 진주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소련 단독으로 한반도 북반부를 점령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터. 스탈린은 일본의 제안이 고맙기만 했다. 미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2차 대전 참전’을 빙자하였기에 간간이 교전을 하는 척 하였지만, 스탈린은 일제와의 ‘내통’ 속에 속전속결로 한반도 진공작전을 진행하였다. 작전은 일주일이 안 되어 완결되었다. 8월 13일까지 북한 전역에 소련군을 주둔시킨 것.

  1945년 8월 8일에 김구 주석을 위시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도 일제가 8월 15일에 항복할 것이라는 정보를 접하였다. 같은 날, 미국 OSS부대 도너반 소장과 합동으로 육성한 한국 청년 장교들을 완전무장 시켜 태운 비행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하기 위해 프로펠러가 돌고 있었다(장준하 『돌베개』, 김준엽 『장정』 참고).

  그 순간 비행기 위로 뛰어 오른 미군 정보장교는 일제가 항복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접했음을 알렸다. 비행기 안의 미군 교관들은 일제히 환호하였다. 그러나 장준하와 김준엽 등 한국인 청년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심경 역시 복잡했다. 일제의 항복 시점이 너무나 미묘했기 때문이다.

  “조국 강토 곳곳에 낙하하여 일본군 섬멸 작전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도 당당히 UN군의 일원으로 항일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한·미 합동작전들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며칠 뒤에는 소련군이 북한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겹쳐, 임시정부 청사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다.

  이국땅에서 27년간의 목숨을 건 항일독립 전선을 펼치다가 귀국길에 올랐을 때 다소나마 미소를 머금을 수도 있었을 터지만, 그날의 사진에 비친 김구 주석 일행의 모습은 어둡고 쓸쓸함이 가득하다.

  “하나였던 조국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상, 진정한 광복이 아니다”, “조국 강토를 최대 강국인 미국과 소련이 분점하게 된 이상, 한반도는 미·소의 대리전 성격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초래될 수 있다”, “남북한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간은 물론 부모 자식 간에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통탄스럽게도 김구 주석은 반통일 세력에 의해 암살(1949. 6.26)되었고, 서거 후 정확히 1년 뒤 동족상잔의 비극은 현실이 되었다).

  암울하고 비극적인 국제정세가 먹구름처럼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국이 처할 미래를 간파한 김구 주석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다시 나서기로 했다.
   
  20대 초반부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선(死線)을 누볐던 백범은 새로운 기조의 연설을 하며 전국을 순회하였다. “남북으로 분단된 동포간의 하나됨을 위한 노력은 이 시대의 새로운 독립운동입니다!” 

  ‘새로운 독립운동’... 그는 이를 몸소 실천하기 위하여 1948년 4월 19일 아들 김신과 선우진, 신창균 등 최측근들을 대동하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당시) 김일성 위원장과 회담을 위해 38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하였다.

  김일성 위원장과의 역사적인 ‘양김 회담’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상의 헌법정신에 의하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다.

  헌법 전문은 현재 대한민국의 법통(법적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법통’이란 중단 없는 계속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제1공화국 헌법의 효력 발생 전까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의 효력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1948년 4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국가 원수) 지위에 있었던 만큼, 김일성 위원장과의 만남은 개인 간의 만남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이라 해야 헌법 정신에 부합한 것이다.

  그로부터 5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났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이다. 그 결과물이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두 정상 간에 합의․서명한 5개 항은 다음과 같다.

  제1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제2항 남과 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제3항 남과 북은 2000년 8월 15일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합의한다.
  제4항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 신뢰를 도모한다.
  제5항 위의 네 개항의 합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남과 북의 당국이 빠른 시일 안에 관련 부서들의 후속 대화를 규정하여 합의 내용의 조속한 이행을 약속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담은 6.15공동선언 이후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남북장관급회담,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구성과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이 조성되고 운영되었다.

  남북분단으로 단절되었던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위한 복원공사가 착수되어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유럽까지 내달릴 수 있는 ‘철도 혁명’시대의 개막도 앞두게 되었다.

  오늘은 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6주년이 되는 날이다. ‘6.15’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듯, 새벽부터 온종일 비가 내렸다.

  개인사와 민족사를 막론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실증해 주듯 ‘분열과 고립 정책’보다는 ‘화해와 협력 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최대 다수에게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개인의 삶에서든, 국가적 상황에서든 정의는 구현되어야 한다. 다만 구현 방법은 지혜로워야 한다.

  ‘하절오한(夏節惡寒)’! 한여름이건만 오슬오슬 떨리며 추위를 느끼듯, 현재 남북관계는 악화일로에 처해 있다. 유수(流水) 같은 시간이 증명해 주겠지만, 과연 최선의 상황인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거대 중국과 대만(이하 ‘양안(兩岸)’)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당과 공산당간 전쟁의 출발점은 장개석이 공산당원들을 학살한 1927년 ‘4.12 정변’으로 볼 수 있다. 일시적인 ‘국공합작’ 기간을 고려해도 ‘양측’의 전쟁이 일제의 ‘8.15항복’ 이후까지도 계속되었으니 족히 20여 년을 싸웠다. 남한과 북한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다.

  그럼에도 ‘양안’은 중국 건국(1949.10.1) 상황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책임자에 따라 정도 차는 있지만 ‘자신을 위해’ 상대를 배려하는 협력상생(協力相生)의 정책을 지향해 왔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과 대만의 장개석 총통 때부터 형성된 전통적 ‘양안정책’은 ‘시진핑시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인 6.15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인 오늘, 생각나는 두 개의 한자 성어가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만시지탄(晩時之歎)! 늦었다 싶은 지금이라도 ‘양안관계’를 교훈삼아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방법이 다소 달라도 좋으니 6.15 공동선언 정신의 실천을 위한 노력은 정권과 무관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화통일지향’을 명문으로 천명하고 있는 헌법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남북 동포간의 하나됨 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피살될 위험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김국 주석은 전국을 순회하며 목 놓아 호소하였다.

  “남북으로 분단된 동포간의 하나됨을 위한 노력은 이 시대의 새로운 독립운동”임을 강조했던 김구 주석의 유언에 따르면 6.15공동선언은 이 시대의 ‘새로운 독립선언서’이다.

  이 땅의 지도자들이여!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새로운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남북한 협력상생(協力相生)길을 찾으라! 항구적인 극일(克日)의 길, 한반도와 대한국민이 인류평화의 중심에 서서 ‘G2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이 여기에 있지 아니한가! 라며, 천상에서도 부르짖고 계실 김구 주석의 절절한 호소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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