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부산가톨릭대 외래교수, ‘수령국가’의 저자, 전 민주공원 관장

 

  북한의 제7차 당대회가 끝난 지도 한 달여가 지났다. 비례해서 그 분석글은 대략 잡아도 200여 편이 넘는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보도나 분석글은 북한의 ‘미래 비전’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람(인물), 즉 인사와 관련한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인사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하여 사람과 직책의 변화만으로 ‘앞으로’의 북한 노동당이 설계하고 싶은 시대좌표(역사발전단계), 제도나 구조, ‘컨텐츠’를 다 읽을 수는 없다. 분명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진보적인 대북전문가들조차 북한이 이번 당대회를 통해 ‘선군정치에서 선당(先黨)정치’로 전환했다거나(김근식),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던 제7차 당대회’라는 분석(진희관) 등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경향신문은 사설(2016.5.11)에는 “7차 당대회 폐막 이후 김정은의 북한에 드리운 그림자”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우측으로는 이보다도 더 심해 당 대회 전후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더 포커스를 두고, 김여정의 정치위원 진입 및 결혼설 진위여부, 후지모토 방북에 대한 호들갑, 외국수반 참석여부(특히, 중국), ‘김일성’ 코스프레 등에 초점을 맞추기에 급급했다.

  내용적으로는 북한이 말하는 ‘휘황한 설계도’에는 새로운 것도 희망적인 것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도이념으로는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재탕되었고, 국가전략으로서 경제‧핵 병진노선이 재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자위적 수단으로서의 핵, 주한미군 철수, 조국통일 3대 헌장, 연방제 통일 등은 북한의 변함없는 대외‧대남노선에 불과하며, 경제분야에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지만, 이는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대한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기존에 나왔던 주장을 정리한 수준이었다는 식의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그런가? 이 질문을 갖고 이번 제7차 당대회를 분석하면 분명 다른 결론이 나온다. 아니 나와야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제6차 당대회는 당창건 35주년인 1980년에 열렸다. 따라서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려면 당창건 70주년인 2015년이 더 합리적이었다. 더군다나 경제문제가 해결된 뒤에 당대회를 개최하라는 김일성의 유훈을 고려하면, 현 경제상황이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라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마땅치는 않다.

  더해서 작년(2015년) 당창건 70주년 행사 준비로 주민들이 탈진한 상태여서 경제적 동원 여건이 그리 좋지 않을 뿐더러, 국제제재가 가중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과 5월 초는 모내기 등에 농촌 동원시기라는 점도 5월 제7차 당대회 개최를 부정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참고로 제4차는 9월, 제5차는 11월, 제6차는 10월에 개최되었다).
 
  상황이 그런데도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급하게(?)’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게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결론은 우리가 기껏 그러저러한 요인들로 상상해낼 수 있는, 즉 핵 고도화 프로그램 공식화를 통해 미국과의 담판으로 인식하거나, 김정은 시대(유일영도체계)를 선포하기 위한 ‘그들만의’ 잔치라거나, 인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우고 인민생활 향상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했다 등 그 정도보다는 훨씬 더 뛰어 넘는 북한 노동당 총화가 있었다는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재해석된다면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 부분적으로는 이번 제7차 당 대회 개최명분이 될 수는 있겠으나, 충분한 답은 되지 못함은 분명하다. 학점으로 치자면 겨우 낙제점을 면한 D+ 정도일 뿐이고, 정답(A+)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길이라는 비전!

  그들이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던 제7차 당 대회의 모습은 그러했을 것이다. 이는 북한자신이 주체의 혁명이론에 의해 설계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가 실현 가능할 것인지, 또 그들의 지향하는 경제적 목표(월등한 생산력)와 사상적 목표(‘주체형 인간’으로 개조)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북한은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과도기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것이 이번 제7차 당대회 개최목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해졌다.

  그래야만-그렇게 인식해야만 이번 제7차 당대회 개최의 본질이 김정은 시대 개막이 제7차 당 대회를 개최하고 개최하지 않는다하여 열리고 열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제6차 당대회 개최 이후 36년만의 총화가 핵 고도화를 통한 미국과의 담판용으로 귀결시키기 위한 것도, 인민생활 향상 또한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체제수호 위기를 견뎌온 강도에 비하면 그 개최목적에 100%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들의 그러한 분석으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북한 노동당의 시대좌표로서, 궁극적 목표로서 부합하기에는 한계가 많음을 인정하게 한다. 실제 김정은 당 위원장은 이미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어서 절차적으로 제도적으로 마무리된다하여 그것이 본질이 되지도 않는다.

  즉, 기존의 인식관성은 탈피하고, 전직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 (North Korea Pollcy Coordinator)에 임명(1999.5)되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10월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 (North Korea as it is not as we wish them to be)’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페리 보고서'가 작성되는, 그 정신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그렇게 될 때 이번 6월 리수용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목적도 ‘앵벌이’하러 갔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분석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간을 되돌려 2011년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기간(5.20~27)에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은 ‘친선협조 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는 사안에 공감하고, 북·중 관계 발전의 4원칙을 천명한 사실을 기억해 내어야 한다. ‘고위층 상호 방문 전통 지속’, ‘협력 내용이 담긴 교류 영역 확대’, ‘경제무역 협력을 통한 공동 발전 모색’, ‘적극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 추구’라는 합의. 그 연장 하에서 ‘대북제제’라는 프레임이 아닌, ‘친선협조 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는 프레임으로 인식된다면, 리수용의 이번 중국 방문은 북한 자신의 제7차 당대회 결정사항을 통보하고, 김정은이 당 위원장이 되었다는 것을 보고하는 아주 ‘정상적’인 방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북한을 들여다보고, 제7차 당대회를 분석해내어야 한다. ‘검은 양 효과(Svarta får effekt)'를 띄어 넘어 페리의 ‘North Korea as it is not as we wish them to be’ 관점으로.

  누가 뭐래도 북한은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다. 공산국가에서 당대회는 최고의 정치 행사이며 축제의 장이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거치면서 여섯 차례 당대회를 개최했다. 12년에 한 번 개최하는 셈이다. 당대회의 불규칙성을 보여 준다. 김일성 시대 마지막 당대회는 1980년 제6차 대회였다. 김일성 주석은 1985년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될 때 7차 당대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김일성 주석이 1994년 사망했다. 사망 때까지 당대회가 개최되지 못한 것은 인민 생활이 그만큼 어려웠음을 반증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령승계를 했고,  2011년까지 집권했다. 집권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김정일 위원장은 당대회뿐만 아니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개최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당보다 국방위원회를 중시하는 선군정치의 결과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 시기는 정상체제가 아니라 과도체제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의 제7차 당대회는 김정은 정권 5년차에 개최된다. 5년이 흐르면서 당의 기능이 정상화됐고, 김정은 정권도 안정화되었다. 중요 정책·조직·인사 개편은 당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군대도 수령(당)의 군대로 자리매김했다. 미흡하지만 1% 내외의 경제성장도 이뤄냈고(한국은행).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450여개의 농민시장과 350만대의 휴대전화기도 개통됐다. 연간 탈북자 숫자는 1300여명으로 줄었고, 핵능력은 고도화됐으며 현지지도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불안전한) 대외관계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안정됐다는 판단이 이번 제7차 당 대회의 개최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위 서문을 지나 우리는 북한이 정의하고 있는 ‘경제학’에 주목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물질 경제생활의 력사적인 발전 단계에서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히며 사회의 다양한 경제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론적으로 일반화하며 물질적 부의 생산과 이용에서 요구되는 실천적 방안들의 작성을 자기의 기능과 과업으로 하는 과학의 총체, 일명 경제 과학이라고도 한다." 

  해석하자면, "사람들의 물질 경제생활의 력사적인 발전 단계에서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히며"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이번 제7차 당대회 개최목적을 읽어낼 수 있다. 인민정권 수립이후 사회주의 건설기(김일성시대)를 지나 사회주의 체제수호(김정일시대)라는 ‘고난의 행군시기’를 마감하고 5년차 되는 이 시점,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힐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이번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수령유일사상체계를 확립과 핵-경제 병진노선 채택, 자강력제일주의 원칙이 정립된 이 상황에서 북한의 노동당은 김정은시대를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 전 단계인 ‘사회주의 완전승리’라는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비전을 선포하고 싶었고, 실제 김일성시대 때 이룩하고 싶었던 ‘사회주의 완전승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연동하여 북한이 설계한 공산주의 사회는 물질적 요새(생산력)와 사상적 요새(주체형의 인간)를 모두 점령해야 하는데, 이는 물질적 조건과 사상(ideology) 둘 중 하나만 강조하고 절대화시켜 양극단을 달린 소련과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과는 분명 다르다. 북한이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했던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이는 보다 뚜렷이 증거된다. 그 어느 국가도 가지 않았던 선군정치라는 전략으로 그 위기를 돌파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36년 만에 당 대회를 다시 열었다는 것은 이 위기를 돌파(극복)했고, 역사발전의 과도기에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여곡절을 겪은 사회주의 완정승리라는 지향점이 이제는 안정적으로 다시 과도기론에 입각하여 역사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고 총화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당 대회를 열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총화보고’의 내용과 폐회선언의 워딩(wording)에서도 이는 명약관화하게 드러난다. 김정은 당 위원장은 1980년 10월 6차 대회 이후 36년을 "당 제6차대회가 진행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 당의 오랜 역사에서 더없이 준엄한 투쟁의 시기였으며, 위대한 전변이 이룩된 영광스러운 승리의 연대였다"라는 방식으로 결산, 노동당의 승리사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번 당 대회보고에서 우리 당을 백전백승의 향도적 역량으로 강화 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국력이 강한 사회주의 강국으로 일떠세워준 불멸의 혁명업적을 총화했다"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실제로도 1980년대 이후 불어 닥친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체제위기, 두 명의 수령이 사망했고 유례없는 경제난을 겪었으며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가혹한 제재와 고립을 강요받았지만 결국은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통해 수령론대로 승계순응방식으로 수령승계를 완성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여 최근 경제상황의 호전과 미국에 굴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시키고 있다는 점 등은 노동당의 인식으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하다 하다 하겠다.

  또한 김정은 당 위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는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천만년 드놀지 않을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우리 당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강조와 함께, 그러면서 "나는 모든 대표자 동지들과 우리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전체 당원들,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의 굴함없는 공격정신과 영웅적인 투쟁에 의하여 당 제7차대회가 내놓은 혁명적 노선과 방침들이 철저히 관철되고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위대한 전환이 이룩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폐회가 선언되었는데, 이는 결국 이번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가 시사해 주는 것이 북한이 절체절명의 어려운 시기를 마무리하고 노동당을 재정비하여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36년간 많은 고비를 맞고 굴곡을 거쳤지만 북한은 그들이 정의하고 설정하였던 과도기론에 다시 입각하여 그 틀 안에서 당을 다시 정상화시켜 김일성-김정일시대를 거쳐 이루지 못했던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길로 매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북한이 갖고 있는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가 실현 가능할 것인지, 또 그들의 지향하는 경제적 목표(월등한 생산력)와 사상적 목표(‘주체형 인간’으로 개조)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북한은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과도기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며 이번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가 갖는 본질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 전제로 이번 제7차 당대회가 사회주의 완전승리로 재(再)매진할 수 있는 토대와 근거를 어떻게 총화하였는지를 각론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는, 김정은 체제가 이른바 ‘정상국가(당-국가시스템)’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체제위기 국면에서 당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붕괴와 김일성 사망, 식량난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은 정상적으로 5년에 한 번씩 당대회를 열 수 없었고, 1997년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도 정식 당대회가 아닌 당대표자회에서 추대되었다. 2010년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와 2012년 권력승계도 당대표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36년만의 정식 당대회 개최는 그동안 북한의 체제위기와 이로 인한 비정상 상황을 마무리하고 사회주의 당국가의 정상화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일차적 의미가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체제위기 상황과 비정상적 당국가 시스템을 종료하고 이제 김정은 시대는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정상적 사회주의 국가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당의 전사회적 영도를 재확인하고 당 우위의 국가시스템을 재정비함으로써 과거 위기상황에서 체제를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 ‘선군’을 내세웠던 비정상 상태를 이제는 사회주의 본연의 ‘선당’으로 복원시킨 셈이다.

  또한 당 최고수위의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직책은 당대 수령인 김정은이 제1비서(제1국방위원장의 직책도 당 대회 이후에 개최될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면 수령의 직위에 걸 맞는 직책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로의 직책으로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했을 때 ‘영원한’ 수령인 선대 수령의 상징화(수령국가체제의 특징)와 함께, 비서국 대신 정무국으로의 조직재편 등을 통해 김정은 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김정일 시기에 비해 김정은 시기에는 권력승계 과정과 상징조작이 빠르고 압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돌 행사와 2015년 10월 당창건 70돌 행사 등 대규모 정치행사 등이 그것에 해당되며, 가장 최근에는 지난 2월 ‘광명성 4호’ 발사 기록영화에서 김일성‧김정일의 태양상과 유사한 김정은 태양상이 최초로 등장한 것, 곧잘 북한매체에 등장하고 있는 김정은을 ‘21세기의 위대한 태양’으로 치켜세우고 있는 것, ‘김정은 강성대국’, ‘김정은 조선’ 등의 단어가 사용된다는 것 등은 김정은이 이미 선대수령들과 동렬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당의 최고 강령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분명히(재확인)하여 대내·외에 ‘흔들림 없는’ 사상적 요새를 점령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후계자가 선대 수령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이를 전 사회의 규범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업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이 과정(process)은 2012년 4월 6일 김정은 제1비서가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규정하고, 당의 최고강령을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고 선포한 결과가 수용될 수밖에 없는데, 그 경로 역시 김정일 총비서가 후계자 시절인 1974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명명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내세운 것과 같은 유사한 행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셋째는, 북한의 국가발전전략노선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도약기’에 견지해야 할 전략적 노선으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제시한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경제-핵 병진노선’을 재확인한 셈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제7차 당대회에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는 재강조와 함께,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하루빨리 건설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노선”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을 선포하였다.

  먼저, 이의 군사적 의미는 과거 김정일시대에 구사했던 선협상, 후확산이 아니라 선확산, 후협상으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핵보유 공식화는 향후 김정은 시대의 국가발전전략에서 포기할 수 없는 근본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경제 병진노선이 인민경제 향상과 경제발전을 위한 근본담보로서 핵무기 보유를 전제화하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만큼, 핵보유를 전제로 한 북한의 대외전략 역시 과거 김정일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핵무기와 SLBM과 ICBM을 보유하고 실전배치한 이상 미국에게 안보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심산일 뿐만 아니라, 핵보유라는 전제하에 공세적이고 당당한 대외전략은 중국에게도 해당된다 하겠다. 핵을 가진 이상 중국도 이제는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여 이의 또 다른 메시지는 중국·러시아 대국주의를 향한 독자선언이라고도 할 수 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노동당이 이번 당대회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기존 대한반도 정책도 반대하는 외교노선을 당의 전략노선으로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자주의 강국, 핵보유국의 지위에 맞게 대외관계발전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시대는 달라지고 우리나라의 지위도 달라졌습니다”, “우리 공화국이 존엄 높은 자주의 강국, 핵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선 것만큼 그에 맞게 대외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대외사업부문에서는 대외활동에서 당의 노선을 옹호하고 자주적 대를 고수하며 핵보유국의 지위를 견지하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등 총화보고의 구절이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실제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은 지난 20여 년간 크게 두 가지 문제에서 근본적 입장 차이를 보여 왔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이다. 중국은 북한이 세계질서를 균열시키며 새로운 핵보유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특히 최근 ‘비평화적 방도’(전쟁)에 의한 북한(조선) 주도 한반도 통일을 특히 반대하고 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屈起)를 위해 미국과 적대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며 중국 주변에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보다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이번 당대회 총화보고를 보면, 전에 없던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구가 들어있다.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남조선당국이 천만부당한 ‘제도통일’을 고집하면서 끝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는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 세력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릴 것이며 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입니다”. 평화통일 실현에 최선을 다할 것이나 그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노선의 공식화로 보인다.

  다음으로, 이의 경제적 의미는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통해 안보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서도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기존 군 경제에 우선해온 자원의 배분을 인민경제로 재분배하겠다는 정책적 구상을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국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발표가 그것을 함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및 김정일 시대의 고난의 행군시기와 체제수호의 시기는 정상적인 국가발전전략 대신, 주로 ‘속도전’, ‘000전투’ 등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제7차 당대회 개최를 통해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만큼 국가가 정상화되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5년 동안 북한이 그리는 경제발전의 내용이 채워질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소원,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지속 등은 북한이 원하는 경제달성 목표에 분명한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제7차 당대회에서는 4, 5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6개년 또는 7개년 인민경제계획이나 6차 당대회에서 나온 ‘사회주의 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보다 구체적이지 않다. 시간표가 있는 계획(Plan)보다는 시간표가 생략된 전략(strategy)이라는 이름으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함의를 행간으로 잘 읽어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경제 건설을 위한 전략노선으로 “자력자강의 정신과 과학기술을 틀어쥐고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마련하여 주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실현을 위해 언급된 기본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자립적 민족경제의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경제강국 건설의 도약대를 마련”한 만큼 이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기능을 강화하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과학기술강국에 기초한 경제건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의 이러한 처방이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익히 알려진 대로 지난 수십 년 북한 정권에 있어 ‘주체’(자립, 자주성)는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이자 이들이 달성하고자 한 최종 목표였다. 따라서 이번 제7차 당대회에서 표방된 ‘자강력제일주의’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북한이 1960년대부터 주체노선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 당시 북한 과학기술의 성과가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자립의 물적 기반을 강화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COM체제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트랙터를 개발한 것이나 비날론의 개발 등이 이를 증거한다면, 김정은의 자강력제일주의도 김정일시대의 과학기술중시정책-주체철, CNC기술, 국방기술 등-의 성과에 기반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5.30조치, 6.28방침으로 대표되는 신경제전략과 경제특구전략, 핵-경제 병진노선 등도 자강력제일주의를 선포할 수 있는 주요한 토대임이 분명하다

  넷째는, 대남 전략을 김정은 위원장의 언명에서 찾아보자. “수령님들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온 세상에 선포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은 북남관계 발전과 조국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야 할 민족공동의 대강이며… 일방적으로 부정하거나 외면할 권리가 없습니다.” 워딩 그대로 해석하자면 앞의 문맥은 김일성 시대에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기준으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고, 뒤는 남북 합의를 일방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이다(앞은 원칙의 강조이고, 뒤는 현실의 수용이다).

  이를 좀 거칠게 해석하여 조국통일 3대헌장과 연방제 통일 및 주한미군 철수 등에서 확인받을 수 있는 것은 수세적 대남전략에서 공세(체제우월)적 대남전략으로의 선회이다. 그러면서도 김정은 시대의 대남전략의 핵심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출발’이라고 강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는 김정은의 총화보고는 이제 남쪽에게 손을 내밀거나 경제적 지원을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적화하거나 흡수하려는 통일에서 벗어나 남북의 평화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당분간) ‘두 개의 조선’으로 분리공존하자는 출구전략을 선보인 것으로도 판단된다.

  동시에 정찰총국장이었던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인 김영철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그대로 남은 점은, 새로 신설된 정무국의 부위원장이자 통전부장인 김영철이 정찰총국장직을 겸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통전부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에 새로이 진입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후 남북군사회담 언급에서 확인받듯이 향후 대남관계 부분이 상당부분 군사문제와 연계하여 다루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대남정책 결정에 있어 군의 영향력이 증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남군사행동을 통해 협상국면과 경제적인 열세를 만회하여 제한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개연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커졌다. 즉, 대남 군사행동과 통일전략의 동시화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제7차 당대회를 정치, 사상, 경제, 문화, 당, 남북관계 등의 항목을 y축으로 하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순서는 x축으로 하여 그 빈도수를 살펴보면 의미 있는 결론 하나가 도출되는데, 바로 정치사상, 군사부분은 과거 완료형에 해당되고 경제,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가 북한 미래 비전의 핵심이다, 특히 ‘경제’ 분야는 완료형을 한 번도 못쓴 분야임을 솔직히 드러내 보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좀 더 들어가 보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명명된 ‘주체의 사상론’과 ‘일심단결의 혁명철학’, ‘자주의 정치로선’ 등이 온 사회에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선언은 분명하고, 군사적 측면의 경우는 과거 완료형 표현도 있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된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핵’을 비롯한 막강한 무기와 일심단결 된 군대까지 보유하여 ‘불패의 군사 강국’을 이루었다는 선언이 전자의 의미라면, 후자의 의미는 이런 결과가 최근 십수 년 동안 ‘국방 공업과 국방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것이고 아직 완비된 것은 아니기에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할 것이라는 현재 이야기가 그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강성대국’ 건설의 세 가지 구체적인 모습과 똑같이 오버-랩 되는 것이 있다. 당시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 경제 강국’이라는 표현과 함께,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 강국은 이루었지만 경제강국만 더 완성하면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번 제7차 당대회 총화보고 내용 역시 강성대국 건설 목표 때와 똑같이 사회주의 완전승리로 가는 길목에 ‘문제는 경제야!’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그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 자강력제일주의에 기초한 ‘과학기술강국’건설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이다.

  즉, 과학기술강국이 되어야만 경제문제를 풀 수 있고, 그렇게 경제문제가 풀리면 인민생활 향상이 가능하고, 그 실현은 사회주의 완전승리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연결고리가  찾아졌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