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정부의 '12.28합의'에 맞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이 9일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일본 정부에게 역사의 진실을 공개하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우리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12월 28일,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마주한 지난해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일본군'위안부'합의(12.28합의)에 대한 심경이다.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배상 원칙에서 벗어나 '치유금'이라는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으로 설립될 정부의 민간재단 '화해치유재단'(가칭)에 맞서 '정의기억재단'이 9일 발족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살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한국천주교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연합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 발족식이 이날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발족식에서 이들은 선언문을 발표, "화해와 치유라는 명목의 지원금으로 아픈 역사를 종식시키려는 것은 할머니들의 뜻을 바르게 이어가는 길이 아니다"라며 "할머니들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일본군 성노예제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지금도 전쟁으로 아파하는 여성과 아동을 보듬고, 우리 모두가 평화와 인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범죄인정, 진실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한 정의로운 해결을 이룸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며, 역사교육 및 추모사업 등을 통해 미래세대로 하여금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올바르게 기억하게 할 것"이라고 '정의기억재단' 설립 이유를 밝혔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왼쪽) 등이 이날 재단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를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 주장하며 그에 따른 조치를 '화해와 치유'라고 인식하는 한.일 정부에 맞서, '정의와 기억'을 강조하는 '위안부'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가칭 '화해와 치유재단' 김태현 설립추진준비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정부가 출연하는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며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존중하겠다는 차원에서 배상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정의기억재단에 참여한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는 "(한.일 정부가) 화해와 치유라는 멋진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우리가) 정의와 기억이라고 내세운 이유는 정의에서만 평화가 온다. 일제 식민역사와 이후 제기된 많은 문제들이 정의롭게 풀려야 평화가 온다는 의미"라고 양측 간 인식 차를 지적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도 "사실 화해와 치유라는 용어자체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폭력적"이라며 "피해자들이 길거리에서 정의실현을 요구한다. 그런데 한을 풀어준다, 명예와 인권을 회복한다면서 화해, 치유라고 타이틀을 내건 자체가 할머니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를 비롯해 '화해치유재단' 측이 '12.28합의'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할머니들의 숫자를 거듭 거론하는 데 대해 윤 대표는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는 238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분들의 숫자는 알 수가 없다. 정부가 숫자를 이야기하려면 '위안부' 피해자가 몇 명인지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을 맡은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합의 이전에는 어떤 피해 할머니들에게도 어떤 단체에도 협의한 바 없다. 그리고 잘못 합의한 이후에 일본이 법적 사죄했고 배상했으니 10억엔을 받는게 좋겠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며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족한 '정의기억재단'에는 지금까지 10만여 명이 10억여 원을 후원해 기금을 마련했으며, 김복동, 길원옥, 안점순, 이옥선, 강일출, 김군자 등 후원금을 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재단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사장에 지은희 전 장관, 이사에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운성 평화비 작가, 김창록 경북대 교수, 박대수 한국노총 부위원장, 박혜숙 한살림 서울이사장,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정연순 민변 회장, 한금희 아이쿱생활협동조합 부회장 등 19명이 참여했다.

재단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복지 및 지원사업, △진상규명 및 기록보존, 연구사업, △교육 및 출판사업, △국내외 홍보 및 모금사업, △평화비(소녀상) 건립 및 추모사업,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 및 아동 지원사업, △미래세대 장학사업 등을 벌일 계획이다.

생존자 복지사업으로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정책사업 모니터링 및 피해사례에 맞는 사업계발, △의료 및 치유프로그램 전문가 연결 및 활동, △피해자 긴급 의료지원사업, △인권옹호 활동지원사업 등이 포함됐다.

이들 사업은 '배상금이 아닌 치유금 10억 엔'으로 설립될 '화해치유재단'의 사업계획과 맞물려 있어, '화해치유'냐 '정의기억'이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 차가 극명히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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