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압박이 북 비핵화 용도?

리수용 북 노동당 부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비핵화 없는’ 만남 이후 미국 상무부가 중국 기업 화웨이에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에 수출한 5년 치 기록’을 요구하자 언론은 북 비핵화 원칙을 저버린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격인 동시 북에 대한 사실상의 또 다른 제재라고 소개한다. 맞다.

그러나 한 번 더 보자. 화웨이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국가에는 이란, 쿠바, 시리아, 수단 등도 포함된다. 이럴 수가. 미국과 핵합의를 이룬 이란도,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고 정상회담까지 나눈 쿠바도 아직 미국의 제재 대상이란다.

헷갈리는 장면은 또 있다. <미 국무부는 2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2015년 국가별 테러보고서’에서 이란과 수단, 시리아 등 3개국을 ‘테러지원국’(State Sponsors of Terrorism)으로 지정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올해 8년째다. (한국일보 6월 4일)> 아니, 그토록 치를 떠는 핵 국가 북은 벌써 8년 전에 테러지원국에서 뺐으면서 그토록 내세우는 핵문제 해결의 상징 이란은 아직도 테러지원국에서 놓아주지 않았다니.

하나 더 보자. <제이컵 루(Lew) 미국 재무장관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와 함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비공개로 만나 이례적으로 환율 문제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6월 4일)> 제재하고, 묶어놓고, 경고하는 미국의 기준은 단 하나, 그들의 이익이다.

현 시점, 북 관련 미국의 이익

북 관련 미국의 기본 이익은 비핵화다. 그러나 25년 여 동안 못한 것을 하루아침에 할 수는 없다는 걸 왜 그들이라고 모를까. 하여 작년 말 “핵문제 해결과 평화협정 동시 논의”를 주제로 하는 비밀회담도 했던 거 아닌가.

북이 7차 당 대회에서 핵 보유를 또 한 번 기정사실화한 후에 나온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공식 반응이 “북한은 우리 모두의 큰 걱정거리(...) 핵 확산이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며 핵 비(非)확산을 위해 시급하게 나서야 한다(5월 26일 G7 정상회의 기자회견)”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의 비핵화 이전에 북 핵의 비확산부터 확실히 해둬야 향후 비핵화의 가능성도 유지할 수 있고 당장 정권 재창출 가능성도 커진다. 이것이 임기 말 오바마 정권의 이익인 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은 27일(현지 시간) “북한이 다음 달 6일 노동당 대회 이전에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할 수 있으며(...) (동아일보 4월 29일)> 바람이 바뀌면 계절도 바뀌는 법, 기정사실이던 5차 핵실험은 가정사실이 됐다.

5월, 무슨 일이 있었나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위한 물밑 접촉을 진행 중이라고 외교안보부처 고위 당국자가 8일 전했다(...) 이 당국자는 “최근 중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핵 동결과 NPT 복귀를 조건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미국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안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선(先) 핵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 제안을 수용하진 않았다.” (중앙일보 5월 9일)>

위 기사가 사실에 가깝다면 4월 말 중국의 ‘중재’ 하에 탐색전 차원의 북미 협상이 벌어졌다. 내용은? 북이 핵을 보유한 상태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여 핵 비확산에 들어가는 것을 조건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 즉,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북의 입장과 핵 비확산(핵 동결)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를 잠정 충족시키면서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개시하자는 중국의 ‘중재안’을 북과 미국이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그 다음은? 드러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이거다. <지난 5월4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극비 방한했다. 이때 그가 던진 방한 메시지가 매우 복합적이었다. 북·미 평화협정이 추진될 경우 한국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타진하는 한편, 한국 측에(...) 북한의 핵 비확산이나 동결 수준이 아니라 핵 폐기를 뜻하는 비핵화를 강력히 주장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시사인. 5월 23일)> 북미 간 평화협정 본격 협상 국면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득권을 어디까지 조정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기획할 만큼 평화협정 협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협상에서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되는 법. ‘우군’을 확고히 단속하고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거다. <북한 외무성 간부와 전직 미국 국무성 관리들이 28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접촉했다고 <니혼TV>가 29일 보도했다. 조선노동당 7차 대회 이후, 북.미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북.미 1.5트랙 대화’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 참가자들은 북한 측과의 접촉 결과를 국무부 측에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뉴스. 5월 29일)> 중개인을 통해 서로 패를 보고 난 후 바로 수수료 없는 직접 담판에 들어간 거다.

미국식 신경질

그런데 돌연 중국이 북과 판을 벌여 팽창일로, 가열되어야 할 미국의 대북 협상력 보일러에서 김을 확 빼버린 거다. 중개인이 도장 들고 설쳐서도 안 되겠지만, 북미 협상에서 모든 나라는 미국의 보조역량이 되어야 한다, 미국식 신경질도 안 된다. 또 하나, 미국이 지금 길길이 화를 내는 이유는 북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 즉 궁극적으로는 협상을 위해서다. 비핵화만 외치며 남북 사이 대화를 거부하면 결국 허허벌판에 홀로 남아 미국 보조역량밖에는 못한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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