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금진 내각 책임참사는 제주도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뉴욕에서, 백남순 외무상은 로마에서.

28일 하루 동안에 북한의 주요 인사들이 한반도 남단과 미국, 이탈리아 등 3개 지역에 동시에 모습을 나타냈다. 동북아, 미주, 유럽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지고 있는 북한의 외교 활동은 이제 더 이상 북한이 `은둔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북측은 미국과는 미사일, 핵, 테러 등 3대 현안을 논의하며 남한과는 세번째 장관급 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 이행 과정을 중간점검하고 앞으로 실천방안을 협의하게 된다.

이탈리아와는 27일 투자보장, 경제협력, 문화과학협력 등 3개 분야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서방 7개 선진국 가운데 최초로 수교를 한 이탈리아를 발판으로 삼아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관계 정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백남순 외무상은 이탈리아 방문에 앞서 지난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피셔 외무장관은 백 외무상과 양국간 관계 개선 문제를 논의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독일은 북한과의 대화에 개방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점진적인 관계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과 수교 문제는 남북한간의 지속적인 접근과 한반도에서의 추가적인 긴장완화, 그리고 북한 내부의 개혁 성과를 보아가며 적절한 시기에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활발한 외교행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역시 미국과의 회담이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제5차 미사일회담과 지난달 초 평양에서 있은 테러회담에 이어 열리는 이번 회담의 특징은 미사일 문제는 물론, 제네바 핵 합의 이행과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양측 간 3대현안을 동시에 다룬다는 점이다.

이례적인 형태의 이번 회담을 두고 일부에서는 북미관계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있는 만큼 협상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도 있다. 북미 양측이 곧 있을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미사일 문제 = 북측은 5차 미사일 회담에서 미사일 수출 중단 대가로 현금 보상을 요구했으나 미측은 `다양한 접촉을 통해 점차 관계를 개선하면 북한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협상태도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전문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했으며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고 언급, 미사일 수출문제에 관한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27일 서울에서 수신된 러시아 방송은 뉴욕회담을 전망하는 논평에서 `미사일 강령(계획)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서 평양과 워싱턴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접근하게 됐다`며 지난 7월 콸라룸푸르 회담에서 `미국 대표단 단장은 평양이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대가로) `보상금`을 받게 될 것임을 재확인했는데 이 보상금은 현금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원조형태로 수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미사일 수출 중단에 대해 `현금 보상`이 아닌 `경제 원조` 형태의 보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콸라룸푸르 회담에서도 미사일 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존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다. 북측 수석대표 장장천 외무성 미주국장은 `미사일을 개발, 생산, 배비하는 것은 자체방위를 위한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 주변에 수천 기의 미사일을 배비하고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사일 개발은 전적으로 자주권에 속하는 것인 만큼 이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측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주변국을 위협하고 지역안보를 해치는 것인 만큼 중단돼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다.

콸라룸푸르 회담이 끝난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7.19-20)에서 `인공위성 발사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사일 계획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번 뉴욕회담에서 `탐색 과정`을 거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적절한 조건이 마련될 경우 미사일 개발 계획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북측 `진의`가 확인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미사일 문제 해결은 급진전될 수 있으므로 이번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제네바 기본합의문 이행 = 제네바 기본합의문 이행에 대해서는 양측이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북측은 합의문을 미측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경수로 완공 시점이 지연되는 데 대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측은 보상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오히려 북한의 핵 활동 전반을 감시할 수 있는 `전반적 핵활동 검증체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측의 요구는 제네바 기본합의문에는 들어있지 않은 `새로운 요구`라서 북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북측은 또한 미측의 대북 무력위협을 문제시하고 있다. 즉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기본합의문상의 조항에도 불구하고 미측이 `남한과 주변에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네바 기본합의문은 양측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북측 요구사항은 달리 말하면 북촵미 관계개선 요구라고도 할 수 있다.

△테러 지원국지정 해제 문제 = 지난달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언론사 방북단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 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북촵미 간 최대현안은 미사일과 핵 문제가 아니라 바로 테러 문제인 셈이다.

양측은 지난달 9, 10일 평양에서 테러회담을 개최했으며 이 회담은 테러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첫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종전에는 고위급 회담 중에 테러 문제가 논의됐을 뿐 `테러 회담`이라는 명칭을 붙인 적이 없었다.

이 회담이 끝난 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마이클 시헌 국무부 테러 담당 대사의 평양회담 상대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었으며 이들은 북한이 테러 지원을 끝내고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검토가 이루어지기 위해 취해야 하는 선행 조치들을 집중 논의했다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열린 고위급준비회담 과정에서 시헌 대사가 이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조건을 설명했는데 굳이 평양에 갈 필요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실히 하기 위해 이러한 논의를 지속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으며 우리가 바라는 진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일본항공(JAL)의 요도호를 납치한 적군파 요원 3명의 추방에 동의 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아무런 새로운 조치도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나타난 양측 간의 이견은 적군파 요원의 추방을 둘러싼 것 외에는 없다. 미측은 이들을 추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북측은 납치범들이 `정치적 망명자`라면서 일본측이 그들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경우 일본으로 보낼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연합/200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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