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열린 북한 노동당 7차대회에서 당 비서국이 삭제되고 정무국으로 대체됐다. 사진은 지난 1월 1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제1비서와 비서들.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 조선노동당 7차대회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당 대회 마지막날인 9일 김정은 당 제1비서는 '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그리고 기존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이 '정무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당 비서들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도.시.군당위원회와 기층당조직의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직제가 각각 위원장, 부위원장 등으로 변경됐다.

1966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4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제를 폐지하고 총비서와 비서 등으로 새로 구성된 당 비서국이 50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던 당 비서국은 과연 어떤 조직이었을까.

김일성 유일지도체계를 위한 당 핵심조직

1966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평양에서 당 2차 대표자회가 열렸다. 여기서 마지막날인 12일 당 제4기 제14차 전원회의가 열려 조직위원회가 폐지되고 중앙당의 권력이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로 통일됐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제가 폐지되고 비서국을 설치, 총비서와 비서제가 신설됐다. 이는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중앙지도기관을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로 단일화하고 실질적인 사업은 비서국이 맡는 1인 지배체제를 의미했다.

이러한 당 조직체계의 변화는 당시 북한의 상황에서 엿볼 수 있다. 1961년 9월 열린 당 4차대회는 정치적으로 '8월 종파사건' 이후 김일성 유일지도체계 구축을 위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그러나 1960년대 중.소분쟁은 북한이 중립외교를 선택하는 상황과 함께 주체사상 구축에 적극적이어야 할 시기였다.

그리고 국제공산주의운동 진영에서 벌어진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논쟁'에 북한 내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금철, 김도만 등 갑산파가 김일성의 유일 항일혁명전통에 도전하면서 정국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런 속에서 북한은 1966년 당 2차 대표자회를 열고 정치적으로 유일지도체계를 심화해 김일성 체제를 굳건히하려고 했다.

▲ 1970년 11월 당 5차대회에서 사업총화 보고를 하는 김일성 주석. 당시 북한 당 비서국의 권한은 더욱 강화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래서 집단지도체제를 의미하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폐지하고 당 규약에 비서국은 "당의 노선과 정책, 결정들을 집행하기 위한 사업과 일상적인 당 사업을 조직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물론, 이에 대한 갑산파의 반발이 있었으나, 1967년 당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려 숙청, 김일성을 총비서로 한 비서, 비서국 산하 전문부서 등 당 관료조직이 집단적 의사결정기구 대신 당의 실질적 운영을 담당해 김일성 유일지배체계를 공고화하는 핵심조직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는 1970년 11월 당 5차대회에서 더 발전해 나갔다. 당시 비서국의 권한은 기존 집행 역할에서 "간부문제, 대내문제 및 그 밖의 당면문제를 정기적으로 토의하는 결정"으로 강화됐다. 게다가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를 폐지해 비서국은 조선노동당의 핵심조직이 됐다.

'조선노동당 총비서 김정일'

1980년 당 6차대회에서 김정일 후계구도가 구축된 이후 비서국의 역할은 한층 강화됐다. 그리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격상됐다.

1994년 김일성 사후 3년 탈상을 마친 북한은 1997년 김정일을 당 총비서에 취임하도록 하는 정치일정을 시작했다. 당 규약상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를 배제하고 평안남도 도당위원회 대표자회를 시작으로 각 지역별, 군부, 중앙정부의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당 총비서 추대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형태를 취했다.

결국, 10월 '전당의 의사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함께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니라 당 총비서라고 표현한 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 규약에도 존재하지 않는 임시직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일 당 총비서라는 의미는 당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이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독립했다는 의미다. 수령과 당 조직 관계를 재정립해 수령은 당 중앙위원회라는 조직적 한계에서 벗어나 인민을 대변하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제시하는 최고영도자이며, 당 조직은 영도자의 의지를 집행하는 부서로 규정된 것이다.

▲ 무산광산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서들. [자료사진-통일뉴스]

즉, 총비서는 최고영도자가 맡는 선출직이 아닌 절대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기존 방식대로라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총비서를 선출하고, 총비서는 비서국의 일원을 의미하므로, 이는 최고영도자의 지위와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해소한 셈이다.

이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대신 당 중앙위원회로 통칭되기 시작했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등 집체적 지도기관을 제외한 비서국과 전문부서는 실제로 당 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모든 당 사업을 조직하고 집행하는 핵심역할을 했다.

당 집행기관인 비서국은 비서들로 구성된 협의기관으로 상설기관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시 당 인사 및 당면문제 등 당내문제를 토의 결정하며, 그 결정의 집행을 조직지도한다"는 당 규약에 따라 당 사업 전반을 책임지는 핵심부서였다.

여기에는 10여 명의 비서가 전문부서를 관장하고 해당 부서의 장을 겸직했으며, 전문부서에는 조직지도부, 간부부, 경공업부, 계획재정부, 과학교육부, 국제부, 군사부, 근로단체부, 기계공업부, 통일전선부, 선전선동부 등이 있었다.

▲ 지난 2월 열린 당 중앙위원회 당 조선인민군위원회 연합회의 확대회의. 주석단에 자리한 당 비서들은 이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당 비서국을 대체한 정무국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에 들어,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남고 김정은은 제1비서가 됐다.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당의 수반으로서 당을 대표하고 전당을 영도하며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노선을 실현해나간다"고 명시됐다. 그리고 당 비서국의 역할도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 7차대회에서 당의 위상을 강화하면서 제1비서가 아닌 당 위원장에 김정은이 추대됐다. 그리고 당 비서국은 정무국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당 비서들은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북한 매체들은 이들 비서를 호명할 때,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별도로 호칭하고 있다. 

50년 만에 정무국으로 이름이 바뀐 비서국이 김정일 시대의 비서국과 같은 핵심 권한을 갖고 있을지는 판가름하기 이르다. "유일적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우리 당을 영원히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당으로 강화발전시키며 주체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기는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당 7차대회 의미대로, 정무국은 비서국이 그랬듯이, 수령을 보위하고 당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지 않을까. 이제 '당 비서'라고 불리는 이들은 없다. 김정은 시대에서 사라진 키워드가 됐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