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범야당의 승리로 끝났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을, 야당인 더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167석을, 무소속은 11석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이 여당 성향의 무소속을 모두 가져가더라도 과반수가 넘지 않는다. 대통령임기가 22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집권당이 참패함으로써 향후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집권당의 패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겠지만 잘못된 대북 정책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시 제시했던 ‘압박과 대화 병행’이라는 대북 정책을 버리고 ‘압박 일변도’로 나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 등 장밋빛 청사진은 온데간데 없이 대화보다는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대박, 통일준비 등이 정책의 우선순위에 자리잡았다. 급기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최악의 선택’이 나타났다.

이것은 박 대통령이 금과옥조로 삼는 ‘일관성’, ‘신뢰성’과도 동떨어진 정책이다. 남북대화를 통한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대박’을 기대했던 젊은 층은 크게 실망하였을 것이고 이번에 그것이 표심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특히 사전선거일인 4월 8일 북한의 해외식당 종업원 13명 집단탈출 공개는 북한변수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측에 대한 경계심리를 발동케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북한변수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측은 참패하였다. 2000년 이후만해도 김대중 정부의 2000년 4월 10일 남북정상회담 발표 후 4.13 총선 참패, 이명박 정부의 2010년 5월 20일 ‘천안함폭침, 북한소행’ 발표 후 6월 2일 지방선거 참패 등이 있었다. 금번에도 집권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박근혜 정부는 할 말이 많을 지도 모른다. 박 정부로서는 북한이 정부 출범일인 2013년 2월 25일을 코앞에 둔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함으로써 대화·압박 병행정책을 수행할 환경을 망쳐버렸다고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핵실험 및 핵무기 고도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방인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거스르고 ‘my way’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박 정부의 하소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이고 이후 6자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의 의지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도 북한을 압박하여 핵개발 의지를 포기시키려다 실패하였다. 그러한 반성위에서 박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입안되었을 것이다. 박 정부의 통일분야 브레인들은 소위 ‘햇볕정책’과 압박정책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하여 대북 정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박 정부의 브레인들은 북한이 쉽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차원에서 북핵을 폐기시키는 현실적 방안은 병행정책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책입안수립자들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은 언제든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의 의도나 능력, 속성을 모르고 병행정책을 만들었다면 그거야말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은 필수이다. 의사가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투약을 하가나 수술을 한다면 그 환자는 어뗗게 될 것인가? 가족이든 동료든 이웃이든 그들이 아프다고 하거나 또는 정신병적 행동을 보이면 전문의사가 나서서 그 근원과 원인, 증세 등을 정확히 파악하여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고 제대로 된 처치를 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해당 전문의사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돌팔이 의사’가 나서거나 전공이 다른 의사가 나설 경우 환자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특히 환자가 발버둥을 치거나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동을 할 경우 관련분야 ‘경험많은’ 전문의사가 아니면 이를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통일문제에도 ‘고도화된 통일전문의사’가 필요하고 이들이 이를 다루어야 제대로 된 처치가 될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가 파탄이 난 것은 한반도 상황의 병리적 현상, 북한의 ‘고질병’, 남한의 질환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처방책을 갖지못한 담당자들의 ‘돌팔이식 처치’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세칭 북한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한다면 북한문제는 ‘급성병’이 아닌 ‘만성병’이다. 따라서 북한문제는 ‘일희일비식’, ‘대증요법식’ 처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의학, 양의학, 수술요법, 약물요법, 운동요법, 식이요법 등등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치료가 될지 말지 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증요법’식 처방만을 구사한다는 것은 매우 ‘비의학적(비사회과학적)인 행태이자 정책이다.

통일의 편익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통일연구원은 2030년 통일을 전제로 이후 20년 동안 통일편익은 6천304조원으로 통일 비용(3천370조원)의 1.9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15년 통일을 전제로 이후 45년 동안 통일 비용은 4천657조원이나 통일에 따른 경제적 편익은 1경4천451조원으로 비용 대비 3.1배에 달한다고 전망했다.

좀 지난 통계이기는 하지만 2013년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통일의식조사'의 결과는 매우 시사적이다. 통일에 기여할 정책수단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0.8%가 정기회담 > 61.8%가 경제협력 > 58.7%가 사회문화교류 > 46.3%가 인도적 지원 순으로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는 대북사업 중 하나인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재개되어야 한다는 견해의 비중(2010년 60.1%, 2011년 61.4%, 2012년 62.5%, 2013년 57.4%)이 재개 반대의 비중보다 더 많게 나타났다.

한편, 2014년 신년특집으로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등의 협조를 받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통일을 위해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1%는 “북한 정권을 자극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각종 여론조사는 남한 주민의 과반수가 북한과의 협력을 지지하고 있고, 3분의 2 이상은 남한이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정상회담 등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종 조사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지탱해온 소위 ‘원칙적인 대북관계에 대한 지지’의 실내용이 사실은 군사적인 대북 봉쇄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대북관계개선을 실질화 할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에 대한 기대에 기반한 것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정부는 국민들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수행하였고 그것은 ‘선거심판’으로 나타났다.

금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어느 당도 대북 정책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만일 야당이 힘을 합친다면 현재 구조조정 사안처럼 북한문제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단절된 남북관계를 회복하여 안보불안을 축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면 역풍이 불 것이다. 따라서 야당은 운영의 묘를 충분히 살려서 대북 정책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야당도 북핵문제를 포함한 안보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야당은 더욱 책임이 무거워졌고 잘하면 19대 대선에서도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인 북한문제를 잘못 다루었을 경우에는 준엄한 국민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성공 여부는 박 정부가 범한 오만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세력을 여하히 참여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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