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이번 시리즈는 총 20회에 걸쳐 북한의 ‘범 기독교 교회’들을 탐방한 ‘북한교회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남한이나 서구식 기독교가 아닌 ‘북한식 기독교’의 실상을 살펴보며 ‘북한식 사회주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54회부터는 남측이 북측과의 협의하에 북측 영토내에 설립한 개성교회, 금강산교회, 신포교회, 금호성당, 평양과기대교회 등 특수목적 교회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 필자 주

       
남북 상호협상으로 ‘북측 영토에 세운 남측교회’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북측 당국과의 협상과정을 통해 북측 영토 내에 세워진 남측의 다양한 종교 시설들이 있었다. 우선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내린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예배가 중단된 ‘개성공단교회(일명, 개성교회 혹은 신원개성교회)’가 있다. 또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조치에 의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예배와 목회기능이 중단된 ‘금강산교회’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김영삼 정부시절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투자해 함경남도 신포에 건설하던 케도(KEDO) 경수로 공사현장에는 기독교 교회, 천주교 성당, 불교 사찰 등 다양한 남측의 종교 시설들이 세워졌다. 그중에서도 10만평 생활관 부지에 건설한 신포교회(기독교), 금호성당(천주교) 등이 세워져 활발하게 운영됐으나 북핵문제로 경수로 공사가 중단되고 남측 근로자들이 모두 철수하며 예배나 각종 종교활동 등이 중단되어 교회당과 성당은 지금도 텅 빈 상태로 방치돼 있다.
     
또한 오래전 한국교회와 해외한인교회가 성금을 모아 세워진 평양과학기술대학 캠퍼스 게스트하우스에는 매 주일이 되면 교수들과 그의 가족들 위주로 정기 주일예배가 드려진다.  그러나 북측 영토에 세워진 모든 특수교회들은 각계각층의 북측 인민들이 합류해 남북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었다. 북측 국적자들은 동참하지 못한 채 남측이 파견해 체류하고 있는 근로자들이나 외국인, 해외교포들만 허용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교회들은 북한의 공적인 교회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교회로 개성공단 신원공장 부지에 3000명 수용규모로 세워진 개성교회를 다루고자 한다.

다양한 명칭의 교회 이름
      
개성공업지구 단지 내 신원 공장과 사옥에 건축된 교회는 ‘개성교회’, ‘개성공단교회’, ‘신원 개성교회’, ‘개성신원교회’, ‘신원 에벤에셀 개성교회’ 등 그 명칭도 다양하다. 믿음의 기업을 표방하기 때문에 개성법인 공장 사장은 물론 대부분의 임원들이나 상주 직원들도 대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매주 드리는 직원 예배 등에 참석해야 한다.
     
개성공단에 세워진 개성교회의 존재가치는 공단의 안정적인 발전과 확장을 기원하며 남측 사회 각계각층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초청해 개성공단의 안정적이고 활발한 생산활동을 참관케 하고, 남북이 하나 되어 근무하는 생산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잠재 투자자들로부터 투자 계획을 확신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남측 파견 근로자들과 관료들 중에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앙생활 유지와 특수지역에 근무하는 긴장감과 고립감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와 중압감을 신앙에 의지하도록 하려는데 있다.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인지한 북측 당국은 과감히 개성교회를 승인하고 지금까지 존속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개성공단교회’ 첫 공식예배를 드리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인 2006년 11월 30일, 남북 경협사업의 상징으로 건립된 개성공업지구 신원 공장에는 남측 기독교계 지도자 약 40여명이 초청을 받아 첫 기독교 공식예배가 드려졌다. 이곳에 200석 규모의 예배당이 마련되고 대내외적으로 첫 공식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목회자의 신분으로 북측 개성공업지구로부터 초청장을 발급받아 MDL(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측 지역에서 예배를 드린 것은 공식적으로 이날이 처음이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기까지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2004년부터 개성공단에서 섬유제조업 공장을 운영해온 주식회사 신원 에벤에셀의 박성철(朴成喆) 회장 특유의 집념과 종교적 열정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 신원 개성공장 안에는 이미 작은 예배실을 마련해 작은 규모의 예배와 기도회를 드려왔는데 이처럼 본관 3층에 200명 수용 가능한 예배당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날 방문단은 신원 박성철 회장(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길교회 장로)를 비롯해 창천감리교회 박춘화 목사(이희호 여사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 남서울중앙교회 피종진 목사, 중흥교회 엄신형 목사, 예수사랑교회 이일주 목사, 성령교회 엄기호 목사, 꽃동산교회 김종준 목사, 부천경서교회 홍재철 목사,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노원순복음교회 유재필 목사 등 기독교계 지도자 40여명을 포함, 모두 5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개성공단에 도착해 신원 개성공장 본관 3층에 위치한 개성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 개성공단의 주재원들과 북측 근로자들이 함께 근무하는 모습을 참관하고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현대아산 사무소를 방문한 후, 오후 3시에 MDL을 통과해 남측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목회자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보수적인 목회자들이어서 단지 이 개성공단교회를 선교의 전략적 거점 측면에서만 의미를 부여했다.  어렵사리 들어선 교회이니 만큼 남북 긴장 완화와 화해 협력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과 남북화해와 평화 분위기 조성 역할, 대북 인도적 지원의 구심점 역할은 간과된 듯했다.

▲ 개성공단교회에서  남측 기독교계 지도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는 신원 에벤에셀 그룹  박성철 회장.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교회 첫 공식예배에서 설교자로 나선 피종진 목사. [사진제공 - 최재영]

 

▲ 첫 공식예배를 마친 후 기념 촬영하는 남측 기독교계 인사들.[사진제공 - 최재영]


3천명 수용규모의 개성공단 교회당이 세워지기까지
     
신원그룹의 박성철 회장은 2005년부터 공격적인 경영에 들어가 그해 개성공단에 입주한 대표 기업이 됐으며 그해 5월 개성 공장에서 인기 연예인 김태희를 초청해 ‘신원 개성공단 준공 기념 패션쇼’를 열고 화려한 재기를 선언했다. 2년 뒤에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 중 최초로 제2·3공장을 지으며 승승장구하며 하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북측에서는 ‘피복전시회’라고 부르는 패션쇼를 2005년 5월 26일 개성공단 내 신원에벤에셀 2층 에벤에셀홀(근로자 식당)에서 당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남측 정재계 인사 500여명을 초청해 성대히 열었다. 패션을 통한 남북 문화교류라는 차원에서도 뜻 깊은 행사를 열었던 이 행사를 발판삼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성교회 설립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곳 개성공단 부지 내에 교회당이 세워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3천 명 정도 수용규모의 예배당이 건축되기까지 개성교회는 개척교회 시기를 거쳐 세 차례의 확장 이전이 있었다. 제일 처음 이곳에 교회가 개척되던 시기는 신원이 2004년 제일 처음 공단에 진출할 때였다. 당시는 작은 소규모 예배실 형태로 2년간 운영돼 왔는데 당시만 해도 신원의 직원 10여명과 공단 내 남측기업 관계자 중 소수의 기독교인들만 이용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태희 패션쇼가 끝난 이듬해인 2006년 9월에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예배당을 확보하게 되었다. 제 1공장에 이어 2, 3공장을 증축하며 본관 3층에 마련한 것이다. 이 당시부터 매 주일 80여명의 주재원들이 예배를 드리며 점차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북측이 민간인에게 교회 건축 허용과 함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2007년 7월에는 신원 개성공장 3층에 예배실에는 대형 십자가를 달고 북측에서 근무하는 남측 관리자 700∼800명이 매주 주일 예배를 볼 정도로 급성장했다. 또한 담임목회자가 상주하게 됐으며 근로자들 중에는 주일예배 외에도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신앙생활에 전념했으며 이런 모습을 본 개성공단 시찰단이나 방문객들은 신원 예배실을 참관하거나 근로자들의 종교활동을 보고 깜짝 놀라 탄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결국 박성철 회장의 보수적 종교열정과 대북관계에서의 신뢰 구축을 기반으로 더욱 교회가 확장돼 실제로 3천명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예배당 건물을 갖게 됐다.

▲ 신원 그룹 박성철 회장이 뉴욕에서 간증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 내 신원 공장과 사옥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 신원사옥에서 개최된 인기 탤런트 김태희의 패션쇼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 패션쇼가 끝나고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김운규 현대부회장 등과 함께 한 탤런트 김태희. [사진제공 - 최재영]

 

▲ 매스컴에 ‘주일은 쉽니다’,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신원의 옥상 광고판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우리 회사 이름은 믿을 신(信), 으뜸 원(元), 신원입네다”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할 무렵 신원 공장이나 사옥에 들어서면 북측 여성 안내원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입구에서 방문단을 반갑게 맞는다. 입구에서 안내하는 신원 소속의 북 측 근로자 두 명은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어서 오십시오. 우리 회사 이름은 믿을 신(信), 으뜸 원(元), 신원(信元)입네다”라는 멘트를 한다.
     
한마디로 ‘신원(信元)’이라는 명칭은 기독교 용어로는 최고의 단어로 볼 수 있는데 회사 측에서는 이 단어를 회사이름으로 등록을 한 것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 당시 벳새다 광야의 허기진 이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14:16)” 명하시던 예수의 명령이 이곳 믿음의 사람들의 실천적 삶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듯 했다.
     
한편 신원이라는 회사이름 뒤에는 항상 ‘에벤에셀’이라는 명칭이 따라 붙는다. ‘에벤에셀’은 구약성경 창세기서에 등장하는 단어인데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의미이다. 이 회사를 설립한 박성철 회장은 신길교회 원로장로이며 2009년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4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데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신원그룹을 믿음의 기업으로 세우고, 회사에 기도처나 교회당을 마련하는 등 대표적인 기독교 사업가로 알려진 인물이기에 회사이름은 그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성공단에 최초로 교회가 설립된 것은 크리스천 기업인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박 회장의 신앙심이 있어 가능했는데 그의 경영철학은 성경에 나오는 ‘청지기 사명’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기업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이다. 박 회장의 확고한 믿음 위에서 지난 40년간 기업을 통한 선교를 진행해 왔으며, 이에 따라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 준공하는 공장마다 교회 건축을 해왔으며 신원그룹 회사 직원들은 남측에 있는 본사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등 해외지사 전 직원들도 월요일에 출근하면 직원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 근무를 시작한다.
    
이곳 개성공단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매주 월요일은 직원예배, 수요, 주일은 정기예배를 드리며 매일 새벽 5시에는 새벽예배도 드린다.

▲ 신원 소속의 북측 여성 근로자가 방문객을 환영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교회 건물 정면.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교회 건물 우측면. [사진제공 - 최재영]

 

▲ 멀리서 바라본 개성공단교회 건물과 주변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3천명 수용규모의 개성공단교회 예배당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들이 단체로 운동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WTO 가입과 신원그룹 산하 교회와의 상관관계
       
박성철 회장이 개성공단에 교회를 세우기까지 치러야 했던 험난한 경로를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개성공단이라는 특수지역이지만 이북영토에 십자가를 걸고 찬송가를 부르며 설교를 듣고 기도를 올리며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공장을 세운 것만큼이나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상징하는데 그가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기까지 숱한 고통과 말 못할 사연들이 많았다.
       
북측은 60년간 지속된 북미간의 대결로 인해 부분적으로 종교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런 북측 영토에 세워진 신원 개성교회는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십자가 반입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동안 끊임없이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북측이 십자가를 세우는 것을 원천봉쇄하기도 했고 무서운 압력도 있었다. 그러나 강경한 태도를 보인 북측을 탓하기 전에 사전에 북측과 충분한 협의와 논의를 거치거나 북측 관계자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신원 측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었다.
     
신원그룹 산하 해외 공장 교회들 중에는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도 있다.  박성철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 국가들은 신원공장 교회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실례로 중국 측이 WTO에 가입할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종교의 자유 부분의 검증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 중국 측에 “실제적인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 있다면 지금 당장 보여달라”라고 기습적인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때 중국 정부 측 관계자들은 마침 중국에 세워진 신원공장 교회를 WTO위원들에게 견학토록 해서 아무 무리 없이 가입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WTO 가입 당시 베트남 정부 측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신원 하노이 공장 교회와 예배실을 견학시켰으며 그 결과 무사히 WTO에 가입했다고 한다. 박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북측도 언젠가 WTO 가입이 불가피할 텐데 그 때를 대비해 상징적으로 신원공장사옥에 세워진 개성공단교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북측을 설득해 교회가 승인된 것이라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신원 그룹이 북측 영토인 개성공단 내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했다는 사실도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지만 이와 더불어 개성공단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도 이미 남북 간의 통일의 변곡점에 다다랐다는 실감을 주는 큰 사건이었다.

남측 국회의원들과 미국 의회의원들도 개성교회방문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6년 12월 1일은 미의회 민주당소속 에니 팔레마베가, 짐 맥더모트, 마이클 혼다 의원 등이 개성공단을 참관했으며 마지막 코스로 개성공단교회를 방문했다. 방문단에 참석할 예정이던 에디 버니스 존슨 의원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해 나머지 3명의 연방의원들이 참석했으며 남측 국회에서는 당시 영어가 유창한 열린우리당 유재건, 정의용 의원 등이 미 의원들과 동행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원산지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남측과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방문한 미의원들은 교회를 참관한 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진짜 예배를 보느냐”고 물었으며 “그렇다”고 대답하며 실상을 소개하자 “엄청난 변화를 신원이 주도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 7년이 지난 2013년 10월 30일은 남측 국회의 국정감사 기간 중에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 21명이 사상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해 공단 재가동 상황을 점검하고 입주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안홍준(새누리당) 외교통일위원장 등 국회의원들은 북측에 방문증명서를 제시하자 북측 통행검사소(CIQ)를 통과시켰으며 국정감사를 마친 후 신원공장을 비롯한 많은 입주기업을 둘러보고 마지막 코스로 개성공단교회를 방문해 박성철 회장과 함께 방문기념 예배를 드렸다. 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를 올렸다.
      
“우리 정부의 나라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북쪽으로 올라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남북경제협력에 큰 전환점이 되게 하시고, 남북화해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개성공단이 잘 되어 남쪽에서 열차를 타고 개성을 거쳐, 평양, 신의주를 지나 러시아와 유럽까지 평화와 화합, 사랑을 싣고 힘차게 달릴 수 있도록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의 돌보심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하루 빨리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출발점이 이곳 개성공단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오늘의 기도가 통일의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 회장의 기도가 끝나자 국회 외통위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일부 독실한 의원들은  ‘아멘’을 외치기도 했고 기도와 찬송 소리가 잠시나마 교회당에 울려 퍼졌다.

▲ 개성공단교회를 방문한 국회 외통위원들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을 방문한 미의회 민주당 의원들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21명의 남측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정감사단이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에서 감사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북측 세관의 십자가 압류 사건
   
원래 신원그룹 설립자인 박성철 회장은 1992년부터 북측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비전을 품고 나진·선봉지역의 교회 건축 기금을 북측에 전달했으나 건축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 후 오랜 기도 끝에 2006년 정식으로 개성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이에 앞서 2005년 7월 시범단지 공장 건물 3층에 처음 설립한 개성교회는 기도처소의 용도로 작은 예배실 규모로 세워진 바 있다.
      
마침 3층으로 200석 규모로 교회를 확장 이전하며 강단에 세워진 십자가는 7월경 남쪽에서 가져온 것인데 개성공단 내부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당시 북측 세관은 규정대로 십자가를 압수했다. 이때 북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원 측에서는 십자가를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으며 당황한 북측은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사업을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더 나아가 사과문까지 쓸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신원 측은 “개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소용없으니 공장을 철수하겠다. 교회는 결코 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 신원 근로자들과 회사는 신앙을 생명처럼 여긴다” 며 북측을 설득한 끝에 세관은 열흘 만에 다시 십자가를 돌려주었으며 “더 이상 이 문제는 없던 것으로 할 것이며 문제 삼지 않겠다”라며 한 발 물러섰다.
   
이 사건을 두고 박 회장에 대해 용기의 산물인가? 아니면 북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고 되찾은 붉은 십자가는 강단에 걸려 울긋불긋한 성탄목으로 장식됐고 3층으로 이전하기 한 달 전부터 했던 성경공부와 새벽기도도 다시 시작됐다.

십자가 압류 사건의 해결사 김원웅 의원

김원웅(金元雄) 의원이 국회 통일외교통상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당시 북측 세관에 압류된 십자가 사건을 김 의원이 앞장서 북측 고위층과 협상해 원만하게 해결했다. 당시 십자가 압류 사건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김 의원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다행히 김 의원은 2006~2008년까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 한미 FTA협상 문제로 미국을 10여 차례 방문해 미 의회와 국무성의 고위인사와 접촉해 개성공단 제품을 한미 FTA에 포함시키는 일을 성사시켰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는 비공개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민족평화축전 개최를 합의해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남북공동행사인 민족평화축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일제가 약탈해 간 문화재 환수위원회를 결성해 평양을 방문, 남북이 함께 공조해 일본을 압박해 북관대첩비, 조선왕조실록 및 조선왕실의궤를 되돌려 받기도 해 평소 북 당국과는 공감대가 많아 십자가 압류사건 해결사로서 적임자였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개성공단의 인과관계까지 통찰하고 있던 김 의원은 평소 “일제 식민지배를 받은 조선이 분단된 것은 매우 가혹한 희생이며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전쟁이 발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굳이 이처럼 개성공단을 조성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는 역사관을 소유했기에 북측과의 대화도 잘 풀렸다.
  
결국 김원웅 의원의 협상 노력으로 십자가는 무사히 돌아와 교회 강단에 부착할 수 있었고 다시 정상적인 예배가 드려질 수 있도록 했다. 이 사건 이후 신원 박성철 회장은 오히려 십자가가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그후 튼튼한 대리석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개성공단교회 중단과 정병업 담임목사의 금식기도
    
개성공단교회 설립자인 박성철 장로는 평소 이신웅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영등포 신길성결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 장로로 봉직(현재 원로장로)하고 있었는데 이와 동시에 정병업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서대문구 냉천동 신일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황동노회)에 새벽예배도 매일 참석하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정 목사는 훗날 개성공단교회의 담임목사로 임명받아 사역하게 된다.
     
특히 박 회장은 자신의 장남 박정환 목사를 신원의 ‘사목’(社牧)으로 임명, 매주 두 차례 직원들을 상대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며 박 회장 자신도 새벽 5시께 출근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장남이 신원그룹의 사목(社牧, Chapline)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정 목사를 개성공단교회를 담임하도록 배려한 것은 박 회장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정 목사는 자신이 28년 동안 담임했던 신일교회를 정년보다 7년 먼저 은퇴해 후임 이광일 목사에게 교회를 인계하고  개성공단교회를 담임해 3년째 사역을 해 왔다.
      
그러던 중 2016년 2월 10일 오후 5시 남측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발표했고 북측은 11일 밤 10시를 기해 전면 철수조치를 내리면서 공단은 정적이 흐르는 침묵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개성공단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던 정 목사는 마침 아들을 잠깐 만나러 가기 위해 미국에 체류하던 중 공단 폐쇄 조치를 갑자기 접하게 돼 자신이 사용하던 성경책도 못 챙기고 개성교회 문은 닫혔다.
      
개성공단 중단 뉴스를 듣고 급거 귀국하며 개성교회 관리인에게 교회를 보호하라고 부탁하고 귀국했지만 북측의 폐쇄조치로 개성에는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개성공단 철수가 전격 결정되자,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발을 동동 구른 사람은 바로 정 목사였을 것이다. 그는 이번 일로 상심이 크지만 개성공단의 문이 다시 열리도록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개성교회측은 갑작스레 철수하면서 교회 성물들을 미처 들고 나오지 못했으며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들이 예배드릴 때 공동으로 사용하는 다량의 성경책을 비롯한 비품들도 모두 두고 나왔다.

▲ 북측세관의 십자가 압류사건 당시 국회 외통 위원장을 맡은 김원웅 의원은 이 문제를  직접 나서 원만하게 해결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개성공단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정병업 목사. [사진제공 - 최재영]

 

▲ 비리혐의로 구속된 박성철 회장이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개성공단 폐쇄와 교회설립자 박성철 회장의 구속
    
2016년 현재 개성교회는 두 가지 사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중 하나는 개성교회 설립자였던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과 그 일가의 비리혐의로 인한 박 회장 부자의 구속 사건이고 또 하나는 2013년 4월 3일과 2016년 2월 11일,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개성공단 가동 중단 및 폐쇄 조치 때문이다.
    
먼저 박 회장의 구속 사건이다. 법원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 위반과 사문서위조 및 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 회장에게 징역 6년과 벌금 50억원을 선고했고 차남 박정빈 부회장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법정에서 구속됐다. 여러 가지 경제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 회장은 평생 쌓은 명성과 신앙, 사회적 위신이 일시에 추락했으며 이에 따라 박 회장의 설립한 개성공단교회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동안 개성공단은 2013년 4월-9월까지 공장가동이 166일 동안 중단됐고 이어서 다시 재가동된 후  2016년 2월 11일부터 실시된 폐쇄조치로 또다시 무기한 공장 가동이 중단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에 따라 개성교회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2013년에 가동중단 될 때는 그래도 박성철 회장이 직접 주도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으나 이번 2016년도 폐쇄때는 박 회장의 구속으로 구심점이 없어졌다. 1차 폐쇄 당시인 2013년 5월 24일은 박성철 회장이 구심점이 되어 서울 도화동 신원그룹 본사 예배실에서 신원을 포함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60여곳의 임직원 1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개성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로, 공단 철수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가 이날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2016년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박 회장은 현장에 없지만 나머지 회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모여 연이어 금식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개성공단이 재가동 되면 개성교회도 문이 열릴 전망이다.  개성교회는 교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시 예배를 드릴 날을 고대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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