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북아는 불타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 평화는 신냉전구조로 가고 있다. 그 주요원인의 첫째가 일제 식민지 책임 및 태평양전쟁 책임을 둘러싼 역사전쟁이 한 축이고, 다른 하나는 70년간의 한반도의 장기 분단체제의 지속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에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성 대신과 한국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관련 합의 타결을 선언했다. 이 한‧일합의는 일본이 식민지 불법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말장난과 돈으로 식민지 책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꼼수로 한국인 피해자와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분노케 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입장을 인정하여 식민지 국가책임을 최초로 판시한 지난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과 2012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일본은 강하게 외면해왔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역사정의와 동아시아 역사정의를 갈구하는 많은 사람의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문제 해결에 매우 소극적인 일본 정부가 이번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피해자, 국제사회 및 관련 시민사회단체와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내용과 형식에서 졸속으로 너무 성급하게 대응하여 절호의 역사적 협상 기회를 놓쳐버렸다. ‘12.28 한‧일합의’는 일본 측의 기존 논리를 합법화시켜 주어버렸다.

12.28 한‧일합의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재판, 일제식민통치 합법화 및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정의에 대한 인식 부재 그리고 피해당사자의 의견 수렴과정 결여라는 근본적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12.28 한‧일합의는 법적책임 인정 부인(한‧일 식민지통치 합법화 전제), 인권문제와 인도적 문제에 최종‧불가역적 해결 적용불가,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공고화(최종적 완전히 해결),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거출 돈의 성격(국가범죄‧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 아니고, 고령 할머니에 대한 인도주의적 도덕적 시혜적 성격의 기부금), 역사정의 정립 및 동아시아 평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역사인식 부재, 미래세대 교육을 위한 역사적 상징물인 소년상 철거 문제 등 근본적 문제점을 남겼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조기 타결하려는 현상적, 감성적 접근에 그치고, 국제법적, 역사적 근본적 해결이라고 보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본 당국은 1910년 일제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법적책임을 정면 부인함으로써, 한‧일 양국은 오히려 일제 식민지를 합법화시킨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그 아류인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공고화시키고 묵인하였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한계점 때문에 12.28 한‧일합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현실적으로 이미 강한 시민적 저항에 부딪쳐 그 실현이 사실상 불가하고,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문화되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측에서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국제법의 위반이라는 논리로 소녀상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 측의 주장은 국제법상 논거가 없다.

국제법상 ‘1961년 비엔나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2조 2호에서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하여도 공관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법적 특별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동 조 제2호에서 접수국의 공관의 안녕보호 및 품위손상 질서방지 의무는 어디까지나 제1호 공관지역의 불가침에 대한 접수국의 보호 의무이다.

즉, 입법 취지는 공관원이 외교관으로서 그 직무 및 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하여 안녕 유지 및 품위 손상 방지에 있다. 소녀상은 공관원의 공관 기능 수행이나 공관의 안녕유지를 방해하거나 품위손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2003년 헌법재판소도 이를 허용하였다.

향후 12.28 한‧일합의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으로 장단기 두 가지 접근을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

첫째는 단기적으로 피해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12.28 한‧일합의의 무효화를 위한 법적 투쟁에 나서야 하다.

둘째로 장기적으로 힘들지만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정의 확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위해서 다시 근본적인 해법인 새로운 한‧일협정 체제를 향한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법적 논거가 있다. 그 하나는 1946년 도쿄전범재판 법정에서 태평양전쟁과 식민통치 기간에 가장 피해를 입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피해자 소송 주체에서 배제시켰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도쿄전범재판소 결정(조선인과 중국인을 원고에서 제외)을 이어받아 일제식민지 통치를 합법화시킨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그 하위체제인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한계점에 연유한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을 합법이라는 전제하에 맺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은 국가의 정통성을 1919년 3.1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에 두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을 불법‧무효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핵심가치에 정면 반하고,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에 반한다.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에는 일본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명백한 법적책임 인정과 사과, 그리고 그에 대한 청산 약속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가 존속하는 한 식민지 불법통치의 범죄행위와 불법행위를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없고,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은 장기화로 이어져 동아시아의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1952년 샌프란시스코 체제 및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한‧일협정 체제 구축 없이는 역사정의에 기반한 동아시아 평화는 결코 확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에서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과 2012년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의미 있는, 그리고 용기 있는 첫 판결이다. 이 두 판결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그 국가책임 그리고 식민지 범죄의 성립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다.

한‧일 양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위 두 판결이 실효성을 얻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를 위해서 한‧일 양국의 국민적 차원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신뢰관계 또는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좋은 예로서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의 원천 무효를 전제한 ‘201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과 ‘2015년 한‧일 그리고 세계 지식인공동선언’을 들 수 있다.

요약하면 12.28 한‧일합의는 일제식민지 책임을 위해 노력한 지난 25년간 국내외 소중한 성과와 노력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한‧일 양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재판인 12.28 한‧일합의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또한 한‧일 양 정부는 동아시아 평화에 기반한 ‘1965년 체제’의 한계점 극복 및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약속해야 한다.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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