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서평양기관차대가 '70일전투'를 학습하고 있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로, 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충정의 70일전투를 벌릴 것을 호소한다."

북한 당 중앙위원회가 지난 24일 오는 5월 열리는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70일전투'를 호소했다. 북한 김정은 시대 들어 경제건설의 속도전으로 '70일전투'가 주창된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건설과 이를 위한 정치사업을 위해 '70일전투', '150일전투', '100일전투' 등의 속도전을 제시해왔다. 해당 '전투'들의 성과여부를 떠나 이러한 속도전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사회주의 경제경쟁운동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김정은 시대의 '70일전투'와 김일성 시대 '70일전투', 김정일시대 '150일전투', '100일전투'는 무엇이며 북한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북한의 속도전, 사회주의건설의 기본전투형식

'70일전투', '150일전투' 등은 북한의 대표적인 속도전 운동으로, 북한은 "모든 사업을 전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사회주의건설의 기본전투형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전투형식으로 최단기간에 질과 양을 함께 보장하고, △혁명 발전의 합법칙적인 사업전개의 원칙으로, △전격전과 섬멸전의 방법에 의해 담보되며, △사상.기술 혁명, 옳은 조직지도사업의 기본으로 규정한다.

또한, "혁명과 건설의 전진운동을 저해하는 소극과 보수, 침체와 답보를 배격하고 혁명과업을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완수하게 하는 사회주의건설의 기본전투형식이며, 혁명적인 사업전개원칙"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속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최단 기간 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이룩해 사회주의제도의 본성과 인민의 혁명적 지향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과업수행을 위한 침체나 사소한 중단, 답보를 허용하지 않는 '전격전'과 우선순위를 가려 사업 역량을 집중해 완수하는 '섬멸전'의 방식을 활용한다. 여기에 김정은 시대 들어 강조되는 부패척결도 속도전 방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속도전 성과를 위해서는 조직지도사업이 중요한데, 북한은 사상혁명을 확고히 하고 기술혁명을 추진시키며, 조직지도사업을 뒷받침해야 속도전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 2009년 '150일전투'에 이어 실시된 '100일전투' 구호. [자료사진-통일뉴스]

1970년대 1.2차 '100일전투', '70일전투'

'평양속도', '비날론속도', '강선속도' 등으로 1950, 60년대 사회주의 경제생산성 향상과 생산기간 단축이라는 대중운동을 벌인 북한에서 기간을 정한 속도전이 첫 등장한 것은 1971년 '100일전투'이다.

6개년 계획이 시작되던 1971년 1월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천리마 희천공작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한 것을 계기로 '100일전투'를 전개했는데, '석탄공업을 앞세우면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혁명적 양양을 일으켜 6개년 계획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투쟁'으로 정했다. 

이는 석탄공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북한이 국가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기간을 정한 속도전을 시행했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이는 1974년 '70일전투'의 모티브가 됐다.

북한은 1974년을 맞아 6개년 계획(1971~1976)을 앞당겨 수행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사회주의 대건설이 시작되는 해이자 6개년 계획 수행의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1974년 북한은 경제성장 둔화 상황에 빠졌다.

김일성 주석이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며 1975년 당 창건 30돌까지 완수할 것을 지시했지만 성과달성이 쉽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1974년 후반까지 그 해의 성과조차도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 보이자 '요령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김정일은 1974년 10월 '전당이 동원되어 70일전투를 힘있게 벌리자'라는 연설을 통해, 인민경제계획 부분의 수행이 잘 되지 않는 데 당 조직지도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며, 비상조치 일환으로 '70일전투'를 제시했다.

"당 조직과 지도일꾼들은 확고한 사상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계획수행을 위한 투쟁을 적극 벌리지 않고 있다"는 연설내용처럼, 그는 요령주의, 형식주의, 보신주의, 보수주의를 배격하고 행정경제사업의 당적 지도를 강화해 사회주의경제 건설사업을 효과적으로 일으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북한은 70일전투 지휘부를 설치하고, 각 지방과 생산단위에 지도소조를 파견했으며, 70일전투지도소조에 모든 경제사업을 맡아 지도할 권한을 위임했다. 또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로 사상전을 병행했다.

결과, 북한의 공업총생산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48%(11월), 152%(12월) 증가했으며,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공업생산이 17.2% 늘어났다. 또한, 석탄 164%, 강재생산 140%, 시멘트 135%, 공작기계 163%, 비날론 181%가 생산됐다.

북한은 '70일전투'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속도전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으며, 일대 비약과 혁신이 연이어 창조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 북한은 1978년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이 시작되던 해인 1978년 그 해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자는 의미로 두 번째 '100일전투'를 실시했다. 또한, 이는 건국 30돌을 성대히 맞이하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1980년대 3차 '100일전투, 1,2차 '200일전투' 

1980년대들어 북한은 3차 '100일전투'에 돌입했다. 제6차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은 '승리자의 대축전'을 목표로 1980년도 계획달성을 1개월 앞당기기 위해 '100일전투'를 전개했다. '100일전투 과제를 25일 동안에', '소대가 중대의 몫을', '하루과제를 매일 2배로' 등의 구호 속에서 당시 북한은 '100일전투' 결과 공업생산이 전년에 비해 142% 성장했다.

1988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과 건국 40돌을 앞둔 북한은 2월 주요 시설공사를 기한내 완공시키기 위해 '200일전투'가 제시됐다. 이어 같은 해 9월 '전국영웅대회'에서 1차 '200일전투'를 총화한 뒤 2차 '200일전투'가 전개됐다. 기존 '200일전투'가 다음해인 1989년 4월로 연장된 것이다. 

결과, 북한은 평양축전에 관련시설 완공와 함께,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1단계 공사, 사리원카리비료연합기업소 1단계 공사, 발전용량 1백kW 내외의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 김책제철확장공사 등의 성과를 거뒀다.

▲ 2009년 '150일전투'가 실시된 시기 평양에 걸린 구호판과 경쟁도표. [자료사진-통일뉴스]

2000년대 '150일전투', '100일전투'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한은 '200일전투'(1998년)를 실시해 경제성장을 꾀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은 당 창건 60돌을 맞는 2005년 당 창건 60돌을 맞아 농업과 전력, 석탄공업, 경공업, 수도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100일전투'에 돌입했다. 특히, 고난의 행군시기를 지났다는 점에서 식량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9년 북한은 김일성 주석 생일 100년인 2012년을 앞두고 '강성대국건설의 역사적 분수령'을 이루기 위해 '150일전투'에 돌입했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생산을 정상화하고 최고 생산년도 수준을 돌파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대혁신, 대비약을 일으키기" 위해 수령결사옹위, 자력갱생, 집단주의 등이 강조됐다.

신의주방직공장 6명의 여공이 50일만에 1년 생산계획을 달성하고, 정주기관차대는 1천5백만km 무사고 주행목표를 돌파했으며, 강선제강소, 득장지구탄광연합기업소, 희천발전소건설장 등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150일전투' 결과 공업생산은 전년대비 120%, 전력공업은 전년대비 150%, 기계공업은 계획대비 130%, 철도운수 계획대비 118%, 경공업 계획대비 157%, 축산부문 전년대비 1.5배 각각 성장했다.

2009년 종료된 '150일전투'에 이어 북한은 '100일전투'를 다시 전개했다. '100일전투'는 당 창건 65돌인 2010년을 앞두고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 위한 도약대로 삼기 위한 의미였다. 즉, 2009년은 '150일전투'에 이어 '100일전투'까지 한 해가 '전투의 해'였던 셈이다.

김정은시대 '70일전투'

김정은 시대 들어 '단숨에', '마식령속도' 등의 속도전은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제시된 '70일전투'로 대표될 전망이다.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2012년)은 김정은 시대의 성과라기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으로 '150일전투', '100일전투'의 결산이었다.

2015년 당 창건 70돌을 앞두고 '100일전투'가 전개됐다는 일부 대북소식통들의 전언이 있었지만, 북한이 공식 발표한 바 없다.

▲ 북한 거리에 '70일전투'를 독려하는 구호가 걸렸다. [사진출처-rafwober 인스타그램]

그렇기에 '70일전투'는 김정은 시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소탄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이는 가운데, 자강력제일주의를 통한 경제 안정이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가늠케 하는 '전투'가 되는 셈이다.

북한은 1970년대 '70일전투'를 두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중심으로 한 '미더운 대오의 탄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70일전투,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창조의 거장이신 우리 원수님(김정은)의 슬하에서 조국과 인민은 또 얼마나 몰라보게 성장할 것인가"라며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제7차 당 대회를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로 강조하며,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혁명의 원동력으로, 일심단결을 백승의 보검으로, 최강의 핵억제력을 강성번영의 담보로 하여 신심 드높이 전진하는 위대한 김정은시대 주체조선이 어떤 기적을 또다시 안아오는가를 온 세계가 똑똑히 보게 하여야 할 것"이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자 면모를 위한 내부결속을 독려하고 있다. 

즉, 1970년대 '70일전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중운동 지도를 통해 권력장악을 넘어선 '지도자'로서 우뚝 서고, 권력의 정당성과 대중적 지도자로서의 검증, 카리스마의 창출을 동시에 가능케 했듯이, 2016년 '70일전투'는 단순한 경제운동이 아니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7차 당 대회에서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느냐의 70일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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