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년 동안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생산을 500만kw까지 끌어올린다는 장기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풍력발전을 통해 전력수요의 15%를 보장하는 등 2044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능력을 500만kw까지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500만kw 생산목표는 북한이 3년 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완공한 청천강계단식발전소의 총 출력이 43만kw라는 점에서 대단히 원대한 계획으로 보인다.

▲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전시실에 게시돼 있는 재생에너지 과학발전계획도 [사진-후쿠다 게이스케]
▲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전시실에는 풍력, 태양열, 메탄가스 등 각 종류별 재생에너지의 기술적 수준과 도입단위, 경제적 효과, 전망목표 등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진-후쿠다 게이스케]

북한의 이 같은 계획은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라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2014년 11월 설립된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에 전시된 내부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9월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방문했던 한 해외인사는 “평양에 있는 자연에네르기연구소의 전시관에 ‘자연에네르기과학발전의 꿈과 이상’이란 제목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30년 계획이 도표로 게시돼 있었다”며 “‘자연에네르기’ 과학발전을 위한 인재양성 계획도, 풍력․지열․태영열 등의 이용을 위한 기술적 발전과 시범 도입지역 등의 자료 등이 함께 공개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러한 구상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러시아, 중국의 전력을 도입하거나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 외에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석탄․원유 등 화석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자원을 개발․이용하기 위한 사업을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재생에너지 활용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조치와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2013년 재생에너지법 제정

▲ 평양시 사동구역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의 전경도. 이 협동농장은 온수는 태양열로, 난방과 취사는 메탄가스를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장이다. [사진-후쿠다 게이스케]
▲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의 단층 주택. 모든 세대마다 태양열물 가열기, 태양광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선 북한은 2013년 8월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이용을 법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재생에네르기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국토환경을 보호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6장 46조로 구성된 재생에너지법은 재생에너지 정의와 법의 목적, 재생에너지 자원 조사와 개발․이용에서의 기본원칙, 재생에너지 개발․이용 계획 및 장려, 재생에너지 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 강화, 재생에너지 부문 지도통제에서의 법적 요구 등을 규정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를 태양광, 풍력, 지열, 생물질, 해양에너지 등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정의했다.

둘째로 재생에너지산업 발전을 위한 자체 기술 개발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서 ‘녹색에네르기합작회사’가 만든 태양열판을 선보였고, 5월에 열린 제15차 5․21 건축축전에는 태양열․풍력․지열을 이용한 ‘녹색형 살림집 형성 설계’가 출품되기도 했다. 또한 태양광 에너지를 동력으로 한 버스와 소형 여객선도 공개했다.

2013년에는 국가과학원 산하에 풍력, 지열, 태양에네르기, 생물질에네르기, 메탄수화물과 수소에네르기 기술개발을 위한 전문연구기관으로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설치했다. 2014년 자연에네르기연구소 리명선 소장은 “현재 이용되는 풍력발전기 가운데는 300W급이 71.4%, 그 이상급이 28.6%로 대부분 국내(북한)에서 생산된 것”이라며 북한이 태양 에너지 발전과 풍력발전에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을 자체로 생산한 제품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광명LED․태양전지공장을 세웠으며 태양에너지 제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1998년 ‘에네르기관리법’을 제정한 후 풍력, 태양광, 태양열, 조력, 바이오매스, 연료전지를 주력 개발 과제로 선정해 연구를 해왔는데, 그 동안 상당한 기술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연구․시범 단계에서 전국적 보급 단계로

▲ 2000년대 중반 남포시 령남배수리공장에는 시범적으로 6대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됐다. [사진-정창현]

셋째로 시범도입단계에서 전국적인 재생에너지 보급사업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2007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에네르기를 효과적으로 리용하고 절약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풀어야 하며 태양에네르기, 풍력에네르기를 비롯한 새로운 에네르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힘을 넣어 그 리용전망을 확고히 열어놓아야 합니다”라며 재생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의 수력 및 화력 발전소 설비 노후와 화석에너지 부족 등으로 만성적인 전력난을 겪는 북한이 전기문제 해결을 위해 재생에너지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이후 풍력, 지력, 매탄가스, 태양광을 활용해 전기와 난방을 해결하는 시범단위가 연구소, 협동농장, 군부대 등에 마련됐다.

실제로 2008년 5월 남포시 령남배수리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 공장에는 6대의 풍력발전기와 1백여 개의 태양광전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정보설비들과 편의봉사망 운영에 필요한 전력수요를 충분히 보장한다”는 게 공장지배인의 설명이었다.

이때만 해도 ‘연구’와 ‘시범도입’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김정은체제가 출범하면서 정책의 강조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수력 자원을 위주로 하면서 풍력, 지열, 태양열을 비롯한 자연 에네르기를 이용해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연 친화적 에너지 생산을 강조했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전력부족 해결책으로 발전시설 정비 및 보강, 전력생산 최대화, 수력발전소 건설, 에너지 절약 외에 자연 에너지 활용을 제시했다. 연구와 시범사업에서 벗어나 전면적인 ‘도입과 활용’으로 변화된 것이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올해 첫 공식활동으로 과학기술전당 준공식에 참석했다. 1월 1일 준공식에 참석한 김 제1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를 맞는 새해의 첫 문을 과학으로 열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완성된 과학기술전당의 조명과 냉난방에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대규모 공공건물에도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소형 태양광 패널을 구입해 전력 수급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4월 로이터통신은 북한 여행을 알선하는 고려여행사 관계자를 인용해 “평양 가정집 창문에서 목격되는 태양광 패널이 작년보다 3배 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북한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20와트짜리 태양광 패널이 35만원(시장환율로 약 44달러)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제11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참석했던 한 해외인사는 “북한 주민들이 전람회에 출품된 태양광 패널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 상당히 놀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에 따르면 태양광 전지판과 축전지를 설치해 전기를 얻고 있는 공장과 기업, 학교, 유치원, 주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평양시, 개성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태양 전지판을 단 가로등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개성시의 경우 기관, 기업소, 학교, 수만 세대의 가정집들에서 태양전지판과 축전지를 도입해 자체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하고 있고, 새로 개건된 은덕원과 개성중등학원, 개성육아원과 애육원에서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온수를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

‘자강력제일주의’와 ‘세계적 추세’ 결합 구상

▲ 2015년 9월에 열린 제11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전시된 태양열 관련 제품들을 평양시민들이 관심 있게 보고 있다.[사진-후쿠다 게이스케]

넷째로 재생에너지 산업의 활성화와 전력 수요 보장을 위해 해외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경제특구인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내의 전력 수요를 보장하기 위해 풍력발전소를 BOT(Built-Operate-Transfer)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BOT는 항만, 도로, 발전소 등의 시설을 건설한 사업시행자가 일정기간 해당 시설을 운영해 투자원금과 이윤을 챙긴 뒤 그 시설을 발주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북한이 공개한 <2015년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에 따르면 풍력발전소의 총 투자규모는 3천250만∼3천900만 달러, 이행기간은 건설 2년, 운영 10년이다. 이 발전소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특히 통천지구와 금강산지구의 전력 수요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일반화돼 있는 BOT 방식의 외자 유치에 나선 점이 주목된다. 외자유치를 위해 투자방식을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경제활성화, 인민생활 개선뿐만 아니라 경제특구에 대한 투자유치를 위해 전력난 해결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10년 전쯤 평양에서 만난 한 북측관계자는 “경제적 어려움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전력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다른 부문은 어떻게든 하겠지만 전력문제는 대단히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북한은 “인민생활 문제를 천만가지 국사 가운데서 제일 국사”로 내세웠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해 나라의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며 “경제강국 건설에서 전환의 돌파구를 열자면 전력, 석탄, 금속공업과 철도운수부문이 총진격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 석탄, 금속, 철도 등 ‘4대선행부문’의 강조는 북한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매년 강조해온 분야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전력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부문의 목표도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전통적인 화력, 수력을 통한 전력 생산체계와 함께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확보를 한 축으로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투자를 늘리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미 실행에 들어간 북한의 ‘2044년 재생에너지 발전능력 500만kw 확보 구상’은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자강력제일주의’와도 연결돼 있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세계적 추세와도 통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