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평양의 새벽은 오늘도 조용하다

10월 21일(화) 맑음. 북한 방문 18일째다. 잠이 깼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로비에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다.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천천히 시내 쪽으로 걸어간다.
 
조용하다. 새벽이면 들려오던 두부장수 종소리도, 요구르트 아줌마의 바쁜 발자국 소리도, 신문배달 아이의 ‘신문이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들 잠속에 빠져있을까. 새벽 손님을 기다리며 깜박거리는 해장국집 안내판도, 학원에 가기 위해 눈 비비며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오종종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구나. 이곳은 평양. 나는 지금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 평양을 걷는 중이구나.
 
북한 체류 3주일이 다되어 가지만 평양의 새벽길을 걸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곳은 개인 사업이 없으므로 돈벌이를 위한 상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와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인지 모르겠다. 먹고 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설쳐대야 할 필요가 없는 곳. 조용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아, 그런데 농촌은 또 어떨까. 그곳도 새벽이면 이렇게 조용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옛날 농사지을 때, 나는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논에 나가 물꼬를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풀 한 맹태기를 베어왔었다. 새벽에 한나절 할일을 다 해치운 셈이었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가을에 추수할 것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는 사실 새벽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었다. 새벽이면 마을 스피커를 통해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와 마을 사람들의 잠을 깼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들세.”

후일 미국에 온 다음, 미국 친구에게 한 때 온 나라 국민이 노래 소리에 맞춰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말해주었더니, 그 친구 “정말? 웃기는 얘기네!" 하며 배꼽을 쥐고 웃는 것이었다. 생각의 차이다.
 
각설하고, 이곳 평양은 하루 여덟 시간 노동제가 엄수된다고 했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식구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도록 여섯 시간만 근무한다고 했다. ‘개인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인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북한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들었다. 이쪽 사회제도가 각 개인이 자신의 생존,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사회와 생산성을 비교하면 얼마큼 다를까 궁금하다. 행복지수는 또 어떨까.
 
근래 한 국제 전문기구가 세계 146개국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조사했는데, 부패도가 낮은 순서로 1위에서 10위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체제 국가들이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싱가포르,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순이다. 이들 나라는 소득이 높고 잘 사는 나라들이다. 부패지수가 낮은 나라는 행복지수가 높지 않을까.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적절히 혼합된 제도다. 리영희 선생은 “남북한도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를 절반씩 도입해서 비슷한 경제, 문화가 되어야 각 국민의 행복이 증진할 수 있고,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절반씩 가미한 제도의 국가는 통합되기가 쉽다”고 하면서 ‘체제수렴적 통일론’을 주창한다. 역사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걷다 보니 김일성 대광장이 나온다. TV에서 많이 보았던 곳이다.
 
평양은 수천 년 역사를 가진 고을이지만 모란봉 을밀대 등,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역사의 흔적이 많지 않는 도시다. 전쟁 후, 당이 주도하여 도시계획에 따라 만든 신도시라고 했다. 김일성 광장 같은 혁명적 기념물과 공공건물, 그리고 주거지가 중심이 되도록 했다. 분단 후, 토지개혁을 실시했기 때문에 도시 건설에 있어서 국가가 토지를 사용하는 데 장애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계획한 대로 건설할 수 있었다.
 
6.25전쟁 때 40만발 이상의 폭탄이 이 도시에 떨어졌다고 한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도시를 일으켜 세워 지금의 평양을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사진제공-정찬열]

 

▲ 정문을 들어서자 왼쪽 편 돌에 새겨진 말.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사진제공-정찬열]


김일성 종합대학 방문

날씨가 쌀쌀하다. 오늘 오전 김일성 종합대학을 방문할 계획이다. 아침을 먹은 다음 9시경 숙소를 출발했다. 출퇴근 시간이라 시내가 좀 막힐까 싶었는데 소통이 원활하다.
 
교통이 막히지 않는다고 했더니, 교통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국가에서 적절히 관리하고 있어 그렇다고 김 참사가 대답한다. 직장인들을 근무하는 직장 부근 아파트에 살게 하여 가능하면 출퇴근을 멀리 할 필요가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국가가 모든 건물의 주인이니 가능한 일이겠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에 쓸데없이 밖에 나다니는 사람이 뭐 그리 많겠냐는 얘기였다.
 
20분쯤 걸렸을까. 학교에 도착했다. 정문을 들어서자 왼쪽 편에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는 표지석이 보인다. 혁명사적관 앞에 차가 멈추었다. 대학 홍보관인 모양이다. 교통체증이 없어 자동차로 30분이면 평양 시내 웬만한 곳은 갈 수 있겠다 싶어진다.
 
김 참사도 이 대학 졸업생이라고 했다. 학교 대지가 150만 평방미터, 학생 1만 명, 교직원 6,500명 정도라고 한다. 평일인데도 넓은 교정에 학생은 물론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40대로 보이는 여인이 나타나더니 홍보 안내자, 황량희라고 인사를 건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 벽에 금빛 글씨로 쓴 김일성 어록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민족간부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종합대학의 위치와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종합대학은 우리나라 과학의 최고전당이며 민족간부양성의 믿음직한 기지입니다.”      
 
이 대학은 1946년 설립되었으며, 현제 7개 단과대학, 16학부로 구성된다고 했다. 대학의 역사와 현황을 설명해 가는데 특별한 사진이 눈에 띈다. “김일성 종합대학시기 와산동-룡성 사이 도로확장공사에 참가하신...”이라는 설명이 붙은, 당시 학생이던 김정일 사진이다. 이 사진은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성싶다.
 
북한은 중등학교 때에도 건설현장에 나가 노력봉사를 하지만, 대학생은 누구나 일 년에 한 달씩은 공장과 농촌에 나가 생산실습을 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 지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각 공장 기업소나 농촌에 배치되어 최소한 3년 이상 현장경험을 해야 한다.
 
매주 금요일이면 교원과 필수불가결한 직종을 제외한,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든 지 농사나 공사판 등에서 ‘로동봉사’를 해야 한다. 직책이 높을수록 더 힘든 노동을 택하여 구성원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화이트칼라가 블루칼라의 육체노동을 체험함으로써 육체노동의 가치와 힘듦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한다. 그럼으로써 두 계층 간의 융화를 도모하고 사회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매주 금요일에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금요 로동봉사’ 제도, 그리고 토요일에 전국적으로 개최하는 ‘학습의 날’은 북한이 가진 특별한 제도다. 이 두 제도는 북한사회를 결속해주며 구별 짓는 독특한 시스템이 아닌가 싶다.   
 
벽에 ‘진달래’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 걸려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는 표제가 붙은 시다.

“해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 산허리에 피어난 붉은 진달래 / 긴긴밤 찬서리에 피고 또 피어서 / 진달래야 진달래 조선의 진달래 // 때늦든 봄에도 사연을 담아 / 해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 못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련가 / 진달래야 진달래 조선의 진달래.”

시 한 편을 다 읽고 눈길을 따라 밑으로 가 보니 푯말에 쓴 글이 보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주체51(1962)년 9월 14일”
 
밖으로 나왔다. 학생들 몇 명이 본관에서 내려오고 있다. 무슨 학과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라며 웃으며 지나간다. 그들이 한국말이 서툴러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김 참사와 함께 본관 쪽으로 올라가보았다. 본관 앞에 김일성 동상이 서있다. 본관 계단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시내가 보인다. 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선그라스를 낀 웬 젊은 친구가 다가와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보면 모르겠냐고, 사진 찍고 있지 않냐고 했더니, 당신 누구냐고 다시 채근한다. 그때 저쪽에 있던 김 참사가 뛰어와 여차여차 설명을 한다. 그러고 보니 눈매가 날카롭고 한 쪽 귀에 리시버를 꽂았다. 정보기관 사람인 모양이다.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보고하던 학원 담당 기관원은 한국의 대학에도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 

▲ 김일성 종합대학 시기 와산동-룡성 사이 도로확장공사에 참가한 김정일 모습. [사진제공-정찬열]

 

▲ 불후의 고전적 명작 ‘진달래’. [사진제공-정찬열]

 

▲ 학생들이 삼삼오오 본관에서 내려오고 있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라 한다. [사진제공-정찬열]

    
교수 살림집 방문

교수 살림집을 방문할 순서다. 황해도 사리원 협동농장 최제원 씨 댁을 방문했고, 평양 창전거리에 있는 공장 근무하는 최혁 씨의 집을 가 보았으니, 대학교수 댁을 방문하면 각 계층에 따라 북한의 살림집 사정이 어떤지 대강이나마 윤곽이 잡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교수 림광남(44) 씨 댁이다. 아내 되는 분이 맞아준다. 다섯 살 아들. 친정어머니와 함께 산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2013년에 지어 300세대를 분양했다고 한다. 240평방미터 넓이에 방 여섯 개, 화장실 두 개, 부엌, 서제 등이 있단다. 어제 봤던 아파트는 140평방미터였는데 그보다 훨씬 넓은 집이다.
 
집을 한 번 둘러볼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안내를 한다. 바닥은 나무마루다. 취사는 가스를 사용하고 난방은 전기로 한다고 했다.
 
안방, 장모님 방에 이어 서재로 안내한다. ‘당을 따라 일편단심’이라는 족자가 걸려있고, 책장에는 김일성전집이 꽂혀 있다. 50권 정도의 두꺼운 전집이다. 아이 방에는 곰 인형을 비롯한 장난감과, 어린이용 옷장, 그리고 첼로가 악보와 함께 놓여있다. 부엌에는 찻잔을 비롯 각종 그릇을 반질반질하게 손질하여 엎어놓았고, 한켠에 식탁이 있다. 방 하나에는 대형 티비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 있고 어항이 한쪽에 놓여있다. 세면대에는 도브(Dove) 비누와 일제 세제가 놓여있다. 화장실 하나는 반 좌변식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익숙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두 가지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CNN 뉴스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일성대 교수가 “친구들이나 친척들 집에 비해 '훨씬 훌륭하다'고 답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 벽에 식구들의 졸업장과 학위증이 걸려있다. 학사증, 박사증, 부교수증이다. 박사증은 림광남에게 수여한 증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선군령도를 높이 받들고 과학기술중시 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강성대국건설에 크게 공헌한 림광남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박사증을 수여한다”고 되어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어제 최혁 씨 댁과 달리 소파 앞에 탁자가 놓여있고, 전화기도 바닥이 아닌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아주머니에게 언제 결혼하셨냐고 물었더니, 7년 전, 29살에 결혼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해주에 있는 큰형님이 모신다고 했다.
 
옆에 앉아있는 장모님은 올해 예순아홉 살이라고 한다. 사위가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른다며 사위 자랑을 하신다. 손자가 그림을 제법 잘 그린다고 덩달아 자랑한다. 본인도 양강도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한 다음 오랫동안 일하다가 은퇴했다면서, 장군님 은덕이 아니면 어떻게 나처럼 가난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겠냐고 덧붙인다. 딸, 아들 모두 김일성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참 잘 키우셨다고 하자, 본인만 잘 하면 학비 한 푼 내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도 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며 또 장군님 은덕을 강조하신다. 
 
교수아파트 꼭대기 층에 휴게실이 있다.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멀리 유경호텔이 보인다. 길이 한산하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동안 방문한 살림집에서 차 한 잔 드시겠냐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최제영 씨 댁에서도, 최혁 씨 댁에서도 그리고 오늘 림 교수 댁에서도 인사치레라도 ‘차 한 잔 드시겠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제영 씨 댁은 농촌 생활에서 뜬금없이 들어 닥친 손님에게 그럴 겨를이 없으려니 이해가 되고, 최혁 씨 댁에서도 부인이 출타 중이었으니 또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림 교수 댁은 부인과 친정어머니까지 계시는 집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집에 손님이 오면 냉수라도 한 잔 대접하는 게 우리의 인정이고 예절인데, 북한에서는 그런 풍습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림 교수 댁에 고급 찻잔이 찬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보았는데, 그런 그릇들은 언제 사용하려는 것일까. 두고두고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다.

▲ 본관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양시. [사진제공-정찬열]

 

▲ 부엌엔 각종 그릇을 반질반질하게 손질하여 엎어놓았다. [사진제공-정찬열]

 

▲ 교수아파트 주인아주머니, 그녀의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진제공-정찬열]

 

▲ 교수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평양시가. 멀리 유경호텔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메뉴를 가져온다. 명태알탕, 명태순대찜, 쏘가리탕, 쏘가리찜, 보신탕 등이 보인다. 가격은 10달러 정도이다. 다른 특별한 게 없는가 보았더니 5첩 밥상이 보인다. 명태탕밥, 밥조개볶음, 뱀장어구이, 왕세우찜, 송이버섯볶음, 소고기볶음, 김치가 나오는 밥상이다. 가격 40달러. 그 외 여러 가지 메뉴가 있다. 명태순대 정식을 주문했다. 가격 12달러.
  
운전사 방 동무가 아들이 감기에 걸렸는데 낫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가져온 상비약을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 티비를 켜니 어린이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낮 시간에도 방영을 하는 모양이다. 다음은 ‘우리말 상식’ 시간이다. 편견, 편중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가면서 꽤 자세히 얘기한다. 이곳 티비는 조선어방송이 다섯 개, 외국어 방송은 알자지라, 러시아, 중국어 등이 있다고 들었다. 
 
조선영화 ‘농장의 딸’ 방영을 시작한다. 냇가에서 빨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며칠 전 개성에서 스쳐가며 보았던, 빨래하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 식당 메뉴. 명태알탕, 명태순대찜, 쏘가리탕, 쏘가리찜, 보신탕 등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소년궁전 방문

오후에 소년궁전을 방문했다. 소년궁전? 소년 소녀를 아우르는 이름이면 더 좋지 않을까.

운동장에 들어서니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맨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제기차기 놀이를 하고 있다. 돌아가며 제기 차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내 모습과 함께 옛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보지 못했던, 사라졌다고 생각한 풍경이 저렇게 남아있다.  

운동장 여기저기 아이들이 놀고 있다.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 배구 놀이하는 아이 등. 운동장이 아이들로 꽉 차있다. 빨강색 가방을 맨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어야 한다. 쫒아 가면 달아나고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 천진스럽고 밝고 명랑하다. 옷차림이 가지각색이다. 색깔은 물론 스타일도 제각기 다르다. 아디다스, 나이키, 미키마우스 상표도 보인다.
 
소조활동을 관람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장이다. 우리로 말하면 특별활동 시간인 셈이다.
 
학습장에 들어가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인사를 하면서 맞이한다. 똘똘하고 예쁘다. 가야금, 피아노, 수예, 태권도, 미술, 기타, 아코디언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를 들지도 못할 만큼 어린 녀석이 기타를 배우는 모습이 귀엽고, 수예반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학생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오늘은 평소에 배우고 익힌 솜씨를 일반에게 보여주는 날이라고 한다. 여러 방문객들과 함께 아이들의 공연을 보았다. 독창, 합창, 발레, 고전 춤, 장고, 등으로 이어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 공연이었다.

▲ 제기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중학생들. [사진제공-정찬열]

 

▲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진제공-정찬열]

 

▲ 조선장단 악보. [사진제공-정찬열]

 

▲ 소년궁전 극장 아이들의 공연모습. [사진제공-정찬열]

북한의 행정구역은 도, 군 ,리 3단계. 학제는 12년 의무교육제도

저녁을 먹고 김 참사와 고려호텔 쪽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걸어가면서 행정구역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북한은 행정구역이 도, 군, 리, 세 단계로 되어있다고 한다. 남한은 도, 군, 면, 리, 네 단계로 되어있는데 ‘면’이 빠진 형태다. 미국도 주, 카운티, 시, 세 단계로 되어있다. 한 때 남한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행정구역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미국이나 북한의 선례가 있어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평양 의과대학 간판이 보인다. 김일성 종합대학 산하 단과 대학이다. 의과대학은 시내에 있는 모양이다. 
 
학제에 관해 물었는데, 현제 북한은 12년 의무교육제도라고 한다. 유치원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 3년, 고급중학 3년 형태다. 2014년부터 11년에서 12년 제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숙소에 돌아와 찻집에 들렀다. 아가씨 혼자서 지키고 앉아있다.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남한에서 국토종단 했던 얘기를 했다. 남쪽은 허가 없이 아무데나 다닐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이곳 중학에서는 무슨 과목을 배우냐고 물었다. 국어, 수학, 물리, 화학, 지리, 혁명력사 등을 배운다고 했다. 혁명력사는 수령님, 장군님, 김정숙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외국어는 영어를 주로 배우며, 일어나 러시아어 중국어는 선택이라고 한다.
 
학교는 아침 8시 시작. 45분 수업 10분 휴식, 중간 휴식 땐 좀 길게 하여 체조를 한다. 4교시가 12시에 끝나면 2시까지 점심시간이고, 집이 가까운 사람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고 했다. 오후 2시간이면 공부가 끝난다. 대학에선 몇 분 강의냐고 물었더니 90분 강의라고 한다.
 
남은 시간은 ‘소조’활동을 한다고 했다.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각자가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활동하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남한의 학교와 여러 면에서 같은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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