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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따라 청년들 앞으로"[친절한 통일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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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9  2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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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강하면 우리 당과 인민군대가 강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이다. 사회주의 조국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문제인 청년사업에 품을 아끼지 말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5월 열린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 중 일부이다.

김 제1위원장은 청년을 토대로 '청년강국'이라는 구호 아래 당과 국가 강화를 독려하고 있다. 옛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국가를 건설하고 꾸리는 데 있어 청년을 강조했던 것과 같다.

북한의 대표적인 청년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이 지난 17일 창립 70돌을 맞았다. 북한은 청년동맹 70년의 역사 속에 당과 국가 건설을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청년동맹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으며, 김정은 시대 청년동맹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 1946년 1월 <정로>에 실린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 결성 보도내용과 민청 깃발. [자료출처-내나라]

민청→사로청→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변천사

북한 청년동맹의 출발은 1946년 1월 17일 창립된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이다. 물론, 민청의 뿌리는 1926년 김일성 주석이 조직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 핵심 인물인 차광수, 최창걸, 계영춘, 허률, 한영애 등을 중심으로 1927년 8월 28일 북산공원 약왕묘 지하실에서 결성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이다. 1991년 제정된 '청년절'이 바로 공청 결성일이다.

해방 후 국가건설에 나선 북한은 항일유격대 집단이 공청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청년대중조직을 건설하려고 했다. 1945년 10월 6일 공청준비회의, 20일 공청일꾼협의회, 28일~29일 공청열성자대회 등을 잇따라 열며 공청을 조직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당시 첨예했던 이념 충돌이 청년조직 확대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유격대 출신들은 소수 공청 소속 청년들로 정권을 창출,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공청을 해소하고 광범위한 청년을 망라해 대중적 유일 청년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반해 국내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청년공산주의동맹과 같이 노동계급의 당을 위한 후비대를 만들기를 원했다. 이러한 청년조직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1946년 1월 초순 민청을 조직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공장, 기업소, 농촌, 학교에도 조직돼 각계각층의 청년들로 구성했다.

1946년 1월 16~17일 평양에서 북부조선민주주의청년단체대표자회가 열렸고, 여기서 민청이 공식 창설됐다. 1919년 함경남도 출생으로 만주 용정에서 중학교를 나온 김욱진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창설당시 맹원수는 25만명으로 같은해 5월 80만 명, 9월 130만 명 등으로 늘어났다. 

1964년 270만 명으로 맹원수가 늘어난 민청은 5차 대회를 통해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으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 내부를 뒤흔들었던 1956년 8월 발생한 '8월 종파사건'은 민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종파사건 해소와 함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단일지도체계와 유일사상이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 1993년 2월 사로청 제8차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1961년 제4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기 시작한 북한은 청년들을 통한 김일성 유일사상 강화가 중요한 과제였다. 김정일은 1964년 4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청년동맹 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담화에서 사로청으로의 명칭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은 조선노동당의 전투적 후비대이며 우리 당의 영도 밑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청년들의 대중적 정치조직"이라며 "기본임무는 청년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로 적극 조직동원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민청을 사로청으로 고치는 것은 현실발전의 요구이다. 오늘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건설이 힘있게 벌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생활과 풍모에서 커다란 전변이 일어나고 있다"며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즉, 북한이 당과 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민청이 역할을 했다면, 1961년 제4차 당 대회를 계기로, 1964년 5차 민청 대회를 통해 북한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넘어 김일성 유일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후비대로 청년조직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개칭하며 역할 확대.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198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의 후계구도 확립과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사로청의 개편에 영향을 줬다. 1996년 1월 16일 사로청 창립 50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이어 17일 열린 사로청 대표자회에서 '전체 청년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사'에 따라 조직 명칭을 사로청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으로 개칭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사로청에서 청년동맹으로의 개칭은 구소련 붕괴와 연이는 동구권 해체,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던 시기 등 북한 내외부 상황과 맞물려 청년층들을 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묶어두기 위한 예방책으로 청년조직의 표상인 김일성의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6년 1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깃발을 수여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칭 직후인 1월 20일 청년동맹 일꾼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청년조직을 영원히 수령님(김일성)의 청년조직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가려는 우리 당의 철석같은 의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고귀한 이름은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 밑에 승리의 길을 걸어온 조선청년운동의 자랑찬 노정과 숭고한 사명이 반영되어 있다"면서 "사회주의를 압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는 제국주의자들과 반동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된다"고 말했다.

현재 청년동맹은 중앙위원회, 도.시.군 청년동맹위원회, 대학, 학교, 공장.농장 초급청년위원회, 초급단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 근로단체부(비서 최룡해)의 지도를 받으며 14세부터 30세까지 청년들로 망라되어 있다.

   
▲청년동맹 휘장[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당에 입당하거나 여성들이 시집을 가면 청년동맹에서 당, 조선직업총동맹(직맹),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등으로 전맹한다. 현재 청년동맹원은 5백만 명이며, 이 밖에도 소년단 3백만 명도 청년동맹의 지도를 받는다. 현재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전용남이다.

청년동맹 중앙위원회는 조직부, 선전선동부, 간부부, 사적자료부, 대학생청년부, 학생소년부, 노동청년부, 국제부, 총무부, 재정경리부, 속도전청년돌격대지도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외화벌이 기관인 은별무역회사, 간부양성소인 금성정치대학 등을 두고 있으며, 금성청년출판사, 청년전위신문사, 청년문화회관, 청년취주악단, 청년기동예술대, 송도원국제야영소, 학생소년궁전,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등을 관리하고 있다.

사로청 당시 간부의 호칭이던 위원장, 부위원장은 청년동맹으로 개칭되면서 제1비서와 비서 등으로 변경됐으나 2012년 7월 12일 청년동맹 대표자회의에서 규정을 개정, 위원장, 부위원장 등으로 환원됐다.

역대 청년동맹 위원장은 김욱진 (1946~1948), 현정민(1948), 홍순권(1962~1967), 오기천(1967-1970), 김시학(1970-1972), 리영복(1972-1976), 지재룡(1976-1978), 리영수(1978-1986), 최룡해(1986~1998), 리일환(1998~2001), 김경호(2001~2007), 리용철(2007~2012), 전용남(2012~ 현재) 등이다.

   
▲ 청년동맹 역대 회의 내용. [자료정리-통일뉴스]

청년동맹, 당의 후비대로 사상강화. 경제건설 핵심역할

청년동맹은 1946년 1월 창립 당시, 아니 그보다 앞선 1927년 공청 당시부터 북한의 사상을 사회 전반에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당과 국가 건설의 후비대, 척후대, 익측부대로 활약해왔다.

공청이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의 선봉대로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을 조직.지도하는 전위조직의 역할을 하던 것이 해방 후 민청, 사로청, 청년동맹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해방 후 창립된 민청은 김일성의 뜻에 따라 당과 국가건설의 핵심인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육을 일임했다. 또한, 당 건설의 근간이 청년이라는 점에 주목한 김일성은 민청을 통한 간부양성에 주력했다.

1946년 4월 민청 1차 확대위원회에서 "청년이 있는 곳에 민청 초급단체가 있고, 매개의 초급단체가 살아서 활동하여야만 민청 전체가 살고 힘있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이라는 내용의 결정서가 채택되고, 이어 같은해 11월 당 중앙위 상무위원회 제12차 회의에서 김일성은 민청을 '당의 후비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1948년 11월에 열린 민청 3차대회에서 김일성은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은 민청단체들의 기본임무'라는 연설을 통해 당의 사상교양단체로서의 민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혼란 속에서 민청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분열책동과 죄악을 폭로하고, △인텔리 청년들과의 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려 당의 방침을 적극 지지하며,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사상 전위대로의 임무로 이어졌다.

1964년 사로청으로 개칭한 청년조직은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해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화, 발전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대표적으로 60년대 청년선봉대운동, 70년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의미하는 '3대혁명소조운동'에 청년들이 뛰어든다.

   
▲ 허천청년광산을 개발하고 있는 민청원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은 1973년 당 중앙위 비서국 회의에서 "당의 조치에 호응하여 새 것에 민감하고 정열에 불타는 사로청원들을 3대혁명을 수행하는 투쟁에 적극 조직 동원함으로써 청년들이 3대혁명 수행에서 근위대, 선봉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망 직전 해인 1993년 동구권 해체 등 사회주의권 변화에 청년들이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한 듯,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함께, "청년들의 심장은 언제나 주체사상으로 고동쳐야 하며 청년들의 몸에는 오직 주체사상의 붉은 피만 흘러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면서 사상강화를 주문했다.

1996년 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꾼 청년조직은 '김일성'이라는 명칭을 달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중조직을 넘어 조직력과 단결력, 투쟁력이 강한 전투조직으로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2002년 열린 청년동맹 대표자회에서 개정된 규약에는 당의 정치적 후비대로 "당의 선군혁명영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혁명의 영도자를 앞장에서 결사옹위하는 청년전위조직"으로 명시됐다.

1920년대 공청에서 시작해 해방 후 민청, 사로청을 거친 청년동맹은 70년 역사 동안 당의 후비대, 척후대, 익측부대라는 명칭에 맞게 북한 사상의 선본대로서의 역할은 물론, 경제전선에 뛰어들어 국가건설에도 일임했다.

해방 후 민청원들은 사회개혁에 나서면서 초급단체를 중심으로 '승리의 깃발운동'을 전개해 청년노동자의 경제계확달성 경쟁유도운동을 펼쳤다. 농촌으로 뛰어든 청년들은 토지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청년생산돌격대, 청년건설대 등을 조직한 민청원들은 공장 복구와 생산활동을 전개했으며, 원산기관구 내 민청원들은 철도운수 정상화에 이바지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민청돌격대운동'으로 민청원들이 탄광, 광산, 건재공업, 임업 등 가장 고되고 힘든 노동현장으로 투입됐다. 민청에서 사로청으로, 그리고 현재의 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꾼 청년동맹은 자신들의 선배들이 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전선에 뛰어들었듯이 '속도전청년돌격대'의 이름으로 현장으로 갔다.

대표적인 청년조직의 건설사업은 평양-남포 청년영웅도로, 해주-하성 광궤도철도, 라선청년1.2호 발전소,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등이 있다. 이 중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만에 완공된 청년영웅도로는 평양-남포간 46km 왕복 12차선 고속도로로 '강성대국 대통로'라고 불린다.

전후복구시기였던 '해주-하성 광궤도철도' 건설사업은 80km가 넘는 해주-하성 간 광궤도 철도를 놓는 공사로, 88만m³의 흙처리, 5천6백㎡의 옹벽, 38개 다리, 9개 역사, 9개 선로반, 2백 세대 살림집을 민청원들이 75일 만에 끝냈다고 한다.

   
▲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청년동맹의 작품인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의 청년동맹.. "청년중시, 청년강국"

김정일 사후 2012년 북한 최고지도자로 자리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청년의 역할에 주목하며 청년강국을 강조하고 있다.

2014년 9월 열린 제4차 초급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그는 '청년들은 당의 선군혁명위업에 끝없이 충실한 전위투사가 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청년들은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문명국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앞장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2015년 5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 "청년중시는 우리 당과 혁명의 영원한 전략적 노선"(2015년 청년절 축하문), "청년들을 시대의 주인공으로, 총진군대오의 전열에 내세워 강성국가의 문패를 남먼저 달게 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2015년 10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준공식 연설) 등으로 청년중시를 설파했다.

이는 당이 청년을 아끼고 있듯이 사회주의 청년강국 건설을 위한 청년의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4년 5월 '젊어지는 시대'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말보다 일을 많이 하는 젊음, 해놓은 일과 경험보다 해야 할 일의 계획과 착상을 더 많이 논하는 젊음이 얼마나 좋은가. 전 사회에 혁신과, 창조, 애국으로 젊음이 넘치게 하자"고 촉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오늘의 총진군에서 청년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청년들은 청년강국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조국을 떠받드는 억센 기둥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하며 강성국가 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의 창조자, 청년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청년동맹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70돌 촛불행진을 열었다. '500만'은 청년동맹원 숫자를 의미하며, '당을 따라 앞으로'라는 구호를 형상화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에 보답하듯 청년동맹은 '김일성.김정일 청년조직', '김정은의 청년부대, 근위부대'로 지난해 당 창건 70돌에 이어 오는 5월 당 7차대회를 향한 애국보답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에 이어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청년동맹은 오는 5월 당 7차대회에 이어 열릴 9차 대회에서 본격적인 '김정은 청년부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청년동맹은 '청년전위모범초급단체쟁취운동'을 벌리며 철저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강성국가'의 문패를 먼저 달게 하겠다는 김 제1위원장의 청년중시 의지는 청년동맹의 역할 강화와 확대를 불러오고 있다. 이는 젊은 지도자의 '젊어지는 시대' 청년강국 건설에서 청년의 힘이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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