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장충성당 미사에 두 번째 참석하다 

10월 19일(일) 맑음. 북한 방문 16일째 일요일이다. 성당 미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아침 10시에 장충성당 미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택시를 잡느라 늦게 도착했기에 이번에는 좀 서둘렀다. 오늘 아침도 택시 잡는 일이 여전히 힘들다. 서둘러 가는데 마침 성당 가는 어느 길목이 공사 중이라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이번에도 늦겠구나 싶었는데, 김 참사가 내려서 교통순경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다행히 미사 시작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김철웅(프란치스코) 회장과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 주일에는 미국에서 온 김세을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차분히 미사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본당은 좌석 2백석 정도의 규모다. 앞쪽 벽에 예수님 초상화가 걸려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이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그리고 왼쪽에는 성모님 사진을 걸어놓았다. 바로 밑에 성모님이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나무 조각이 놓여있고, 조각상 앞쪽에 여자 성가대원 4명이 미사포를 쓰고 앉아 있다. 하얀 제의를 입은 남자 세 명이 예수님 초상화 바로 밑에 마련된 제대 앞에 서 있다. 가운데 있는 이가 김철웅 회장이다. 그 이가 미사를 집전하는 모양이다. 제대 위 촛불이 켜졌다. 
 
미사가 시작된다. “오늘은 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바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28장 16절부터 20절’입니다.” 진행자가 미사 순서를 안내하자 신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복음을 낭독한다.
 
“열한 제자는 갈릴레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복음 낭독이 끝나자 가톨릭 미사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말씀 전례가 진행된다. 우리가 평소 진행하던 미사 순서와 다르지 않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매주 같은 주제로 같은 순서에 따라 미사를 드린다고 오래 전 어떤 분에게 설명했더니,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면서 새삼스러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함께 바치는 ‘주기도문’을 온 신자가 큰소리로 낭송한다. 신자들이 기도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고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진중하다.
 
강론은 오늘도 김철웅 회장이 맡고 있다. 오늘 미사 주제에 관한 얘기를 한 다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코멘트를 남긴다.     
 
신자들의 보편 지향기도를 바치는 순서다. 각 성당에서 필요한 내용을 준비하여 바치는 시간이다. 여자 신자가 나와 기도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날 세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 ” 기도가 끝나자 다른 신자가 나와서 각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한다. 준비된 다른 기도가 진행된다. 말하지 않는 내용까지도 포함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다. 미사에 임하는 신자들의 모습들이 진지하다.
 
미사가 끝나고 김철웅 회장, 성가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회장에게 성가집을 한 권 얻을 수 있겠는가 물었다. 2005년 방북했을 때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본 다음, 목사님께 부탁하여 성가집을 가져간 적이 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잠깐 망설이더니 성가집 한 권을 챙겨 주기에 가지고 나왔다.  
 
밖에 나와 보니 신자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르고 있다. 신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버스가 출발한다. 미사가 끝난 다음 신자들이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는 친교 시간이 이곳은 없는 모양이다.
 
본당과 떨어져 있는 별채는 오늘도 문을 열지 않았다. 마당 한쪽 감나무에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신자들이 떠난 성당 건물이 쓸쓸해 보인다.
 
이곳에는 상주하는 신부가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방문하는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만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2015년 12월, 한국주교단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천주교 주요 대축일에 남측 사제를 장충성당에 파견하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남측 사제가 장충성당에 상주하고, 신자들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양측이 노력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북측에서 장충성당에 ‘예비신자 교리실’이 필요하다고 하여, 남측에서 성당 개보수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고 했다. 분단 70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방문을 통해 남북화해와 협력에 새 이정표가 마련될 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막힐 때는 종교나 체육 등, 민간 부문에서 물꼬를 튼 선례가 있었으니까.
 

▲ 김 참사가 교통순경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장충성당 미사 모습. [사진제공-정찬열]

 

▲ 미사가 끝나고 프란치스코 회장, 성가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정찬열]

 

▲ 미사가 끝나자마자 신자들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장충공원의 휴일풍경. [사진제공-정찬열]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발원지가 현 장충성당 자리란다   

북한을 방문하기 전, 내가 다니는 본당 수녀님을 만났다. 그녀가 당신이 소속 되어있는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발원지가 평양인데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기에 주소를 받아왔다. 평양에 도착한 후 김 참사에게 그 일을 부탁했는데 그동안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너무 오래된 일이라 확인이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오늘 다시 김철웅 회장에게 그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엉뚱한 곳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북한 방문을 마치고 평양 순안 공항을 출발하여 심양에 도착하던 날, 마침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재미 교포 J씨를 공항에서 만났다. 그 분은 북한 출신인데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살고 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평양을 왕래해오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장충성당 얘기가 나왔고 궁금하던 문제를 털어놓게 되었다.    
 
내가 적어놓았던 주소를 말해주었더니, 현재 장충성당이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본인이 사실을 확인한 다음 몇 년 전 수녀회 본부에 그 내용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한국과 온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1932년 6월 27일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모리스 몬시뇰(Morris, John Edward)이 평양 영유읍 상수구리 257번지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방인(邦人) 수녀회,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의 발원지가 현 장충성당이 자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되었다.

평양의 일요일 풍경(1)

장충성당 바로 옆에 장충공원이 있다. 성당을 나와 길을 걸어가면서 보니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어른들은 군데군데 몇 명씩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제각각 좋아하는 놀이를 즐기고 있다. 시소를 타는 아이, 미끄럼을 타는 아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공원이 왁자지껄하다.
 
롤러스케이트장이 규격에 맞춰 잘 만들어져있다. 평양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사리원에서도 광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멋지게 타고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요즈음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 타는 게 유행인지도 모르겠다.
 
큰길까지 걸어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아리랑 식당에 들어서는데, 일요일이라선지 손님이 붐빈다. 강냉이국수를 주문했다. 맛이 일품이다. 국물이 담백하고 면발이 쫄깃쫄깃 한 게 입에 척 달라 붙는다. 강냉이 국수가 이렇게 맛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가격은 3달러. 오늘 강냉이 국수를 처음 먹어보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호텔 구내매점에 들렀다. 이곳도 손님들이 붐빈다. 여자용 반코트에 30,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300달러 정도라는 얘기다. ‘옷입어보는 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저렇게 쉬운 우리말로 표기된 이름들을 보면서, 남한 거리에 넘쳐나는 외국어로 된 표지판들이 떠오른다. 외래어에 오염되어 있는 언어습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화도 시킬 겸, 혼자서 호텔 주변 아파트촌으로 산책을 나갔다. 일요일에 주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돌아보고 싶기도 했다. 
 
아파트 골목길에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지막한 시멘트 기둥을 세워놓았다. 골목에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다. 골목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고추와 강냉이를 말리고 있다. 바로 옆 빨랫줄에는 크고 작은 빨래들이 걸려있다. 휴일이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식구들의 빨래를 했는가 보다.
 
남정네들 대여섯이 길 가운에 빙 둘러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 삼매경에 빠져 누가 지나가는지 관심조차 없다. 그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그릇을 닦고 있다. 밀려있는 집안일을 하는 모양이다.
 
골목입구 노점상이 오늘은 두 개로 늘어났다. 두 곳 모두 손님이 심심찮게 다녀간다. 천천히 걷다 보니 광장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SUV ‘삼천리’ 자동차가 보인다. 광장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가까운 곳에 백화점이 있다. 이따금 시내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를 향해 사람들이 몰려가고, 택시가 멈추면 사람들이 또 달려간다. 택시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 SUV ‘삼천리’ 자동차가 보인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차종이라고 했다.      

▲ 옷입어보는 칸. [사진제공-정찬열]

 

▲ 장기 삼매경에 빠져 누가 보는지 관심조차 없다. [사진제공-정찬열]

 

▲ 골목 입구 노점상이 둘로 늘었다. 둘 다 바쁘다. [사진제공-정찬열]

 

▲  북한에서 생산되는 SUV ‘삼천리’ 자동차. [사진제공-정찬열]

 

▲ 일요일이라선지 광장에 사람이 많이 나와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릉라 곱등어관에서 돌고래쇼를 보다

김 참사가 릉라 곱등어관에 가보자고 한다. 릉라 인민유원지 안에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니 금방이다. 돌고래쇼를 하는 곳이다. 돌고래를 북한에서는 곱등어로 부르는 모양이다. 
 
관람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다. 1,400석이라는 좌석이 이미 꽉 차있다. 가족끼리 온 사람, 직장 동료와 온 사람,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곳이 휴일 평양 시민들이 가고 싶은 곳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장소라고 한다. 중앙에는 대형 수조가 좌·우측에는 보조 수조가 설치되어 있고, 대형 스크린이 전면에 걸려있다.
 
공연이 시작된다. 남녀 진행자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쇼를 이끌어간다. 돌고래는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뒤로 서서가기, 동시 솟구치기, 연속 공치기 등 재치 있게 기교를 부린다. 조련사와 함께 물속을 돌기도 하고, 축구 골대에 골을 넣기도 한다. 그 때마다 관중들이 박수를 치거나 박장대소하며 환호한다. 
 
미국에 내가 사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샌디에고 시월드에서도 돌고래쇼를 한다. 곱등어쇼 몇 가지는 그쪽 돌고래쇼와 비슷하다. 최근 동물애호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머잖아 시월드 돌고래쇼가 중단되고 돌고래들을 바다로 방류할 거라는 기사를 봤다. 북한 주민들이 미국처럼 곱등어쇼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것 같지는 않지만 앞일을 또 누가 알겠는가. 
 
릉라 인민유원지는 곱등어관을 비롯 능라 물놀이장, 놀이공원 등의 시설이 있다고 한다. 남쪽 연합뉴스가 취재하여 방영한 덕분에 꽤 많은 남한 국민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에 들러서야 알게 되었다.
 
주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계속 늘여가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다녀왔던 마식령 스키장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정치란 게 별거 아니다. 국민들이 잘 먹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게 정치가 할 일이다.
   

▲ 릉라 곱등어관에 관람객이 만원이다. [사진제공-정찬열]

 

▲ 곱등어 쇼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정찬열]


평양의 일요일 풍경 (2)

곱등어쇼를 보고 나서 숙소에 돌아왔다. 일요일 오후,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어 가벼운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가능하면 많이 보고 듣고 돌아가는 게 어렵게 성사된 이번 여행을 그만큼 의미 있게 하는 일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는 건 아무래도 아파트 부근이 좋을 성 싶다. 어느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니 창고 앞에 고구마를 가득 담은 박스가 줄지어 늘어서있다. 고구마가 잘 여물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각 가정에 나누어줄 모양이다.
 
‘배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내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처럼 개인의 능력이나 기호에 따라 각 개인이 재화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여 생필품을 배급해주는 나라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부분적으로 시장제도가 도입되고 남한에서 국민 복지를 일정부분 국가가 책임지는 것처럼,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차용하면서 변화되어 가기 마련이다. 인류가 만든 유일하게 좋은 사회제도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성밥공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밥을 지어내는 곳인 모양이다. ‘닭공장’에서 닭을 공업적으로 길러낸다는 것처럼 저곳도 영양가를 고려하여 과학적으로 건강에 좋은 밥을 만드는 곳일까. 호텔에 들어와 찻집 종업원에게 밥공장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주부가 아침 일찍 출근하거나 저녁 늦게 퇴근하는 경우 등, 집에서 밥을 해먹기 어려운 경우에 밥을 공급해주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 한 끼도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골목을 돌아 나오니, 5,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있다. 방금 불을 피워 놓은 듯, 연탄 위에 씌워놓은 양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주머니는 헐렁한 몸빼 바지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서서 골목 어귀 저쪽을 바라보고 있다. 영락없는 우리 이웃집 아주머니 모습이다. 외출한 남편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놀러 나간 손주 녀석이 달려오면서 ‘함무이’ 하고 품속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오늘 저녁 무슨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의 입맛을 돋우어 줄까를 궁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사는 게, 행복이란 게 별거 아니다.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둘러 앉아 오붓하게 밥을 먹는 거, 그게 매일 얻을 수 있는 행복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대동강가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강물에서 작은 배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부자간인 듯 어른과 아이가 한 배에 타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노를 젓는 풍경도 있다. 빈 배들이 강가에 여러 척 메여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배다.    
 
강가를 걷다가 해가 설핏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배구 코트에서 청소년들이 배구 시합을 하고 있다. 바로 옆 테니스 코트에서는 중년 부부들이 복식 테니스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일요일이라 모두들 저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줬다가 빼앗으면 머리에 뿔나는 거 아시죠?”

숙소에 돌아오니 김 참사가 아침에 만났던 장충성당 김철웅 회장이 나를 만나러 오겠노라는 연락을 해왔다고 전해준다. 무슨 일일까. 한참 후, 김 회장이 찾아왔다고 하여 아래층에 내려갔다.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침에 주었던 가톨릭 성가집을 돌려달라고 한다. 순간 좀 당황스러웠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순간, 책을 돌려달라는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겠나 생각되었다. 
 
잠깐 기다리시라 말해놓고, 방에 올라가 책을 가져왔다. 성가집을 돌려주면서 웃으며 한 마디 건넸다. “줬다가 빼앗으면 머리에 뿔나는 거 아시죠?” 그도 웃으면서 대꾸를 한다. “아, 미안합네다.”

▲ 고구마 박스를 줄지어 늘어놓았다. [사진제공-정찬열]

 

▲ 중성밥공장. [사진제공-정찬열]

 

▲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있는 아주머니. [사진제공-정찬열]

 

▲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 평양시민들. [사진제공-정찬열]

 

▲ 배구 시합을 하고 있는 청년들. [사진제공-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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