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었단다. 그것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이 협상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피해자를 대리한다고 자처하는 한국 정부 사이에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협상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물론 정부 대 정부,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상이기 때문에 쉽게 뒤집기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피해자도 동의하지 않고, 피해자와 함께 오랜 세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워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제도권 내에서 야당도 받아들일 수 없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이 합의는 결국 원천 무효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협상을 졸속으로 처리했을까? 이 점에 관해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자.

무능

이 협상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 그 자체를 보여준다. 한 나라를 대표해서 협상을 한다면 적어도 피해자는 물론이고, 국민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협상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일본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정부는 자화자찬을 하는데 당시 일본군의 관여가 있었다는 것은 이전 고노 담화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이름이 직접 언급된 것이 진전이라면 진전이고, 재단을 만들어서 10억 엔의 기금을 정부 예산으로 출연한다는 것도 좀 더 나아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정도에 비해 우리 쪽에서 준 것은 너무나 많다.

위안부 문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 기간에 벌어진 범죄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는 이러한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이라는 것이 없다. ‘법적 책임’은 ‘도의적 책임’ 등과는 달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조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이미 대부분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므로 책임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단죄를 내리는 일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상 규명이 확실히 되어야 하고, 재발 방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될 수 있는 길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인정이고, 국가기관을 동원한 진상 규명이며, 그에 대한 기록화, 후대에 대한 교육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법적 책임’도 없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조건은 너무나 황당한 것이다. 역사적 문제에 대한 협상에서 이런 조건이 붙을 수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결국 일본 정부에 너무도 쉽게 면죄부를 준 것이고, 이후 UN 등의 국제기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일본 정부, 좀 더 정확하게는 아베 극우정권의 족쇄를 풀어주고 날개를 달아주는 대신 우리 정부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문 것이다. 더 나아가서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 좀 더 확대해서 우리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다. 이 어찌 무능한 협상이 아닌가?

불통

이렇게 무능한 협상이 된 가장 큰 원인은, 이 정권의 능력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통을 하지 않으려는 불통의 자세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협상을 하면서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의견을 일절 묻지도 않았으며,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에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야당과도 전혀 소통을 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이 정부 내의 다른 부처들이나 여당의 관련 전문가들과 의견 교환이라도 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저 대통령과 극소수 참모들의 생각대로 하고는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타결되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한다.

이 정권이 지난 3년 동안 했던 대부분의 일이 이러한 불통 자세 때문에 엉망이 되었던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에서 야당, 시민사회 혹은 전문가 집단의 견해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일말의 반성도 없이 그저 누르려고만 해왔다. 특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서 이러한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특히 역사학계의 압도적 다수가 반대하는데 무조건 자신들의 생각대로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국정 자체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언제는 민생 문제가 최우선이라고 하더니 다시 접고 역사 교육이 잘못 돼서 나라가 망할 듯이 난리를 쳤다. 그러다가 다시 노동관계법 등 이른바 대통령 관심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듯이 떠들어 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심기와 의중에 의해서 국정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보이는 난맥상이다. 이번 협상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이 올해 안에 협상을 끝내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정하니 모든 관리들이 대통령만 바라보면서 대통령의 심기에 맞춰서만 일을 하려고 한다. 이러한 불통은 무능을 낳고, 또 독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독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번에 하지 않으면 위안부 문제가 영구 미제가 될까봐 그랬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독선적인 자세이다. 왜 자기 정권에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것은 대통령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리라. 올해를 넘기면 아버지가 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의 빛이 바랜다는 대통령의 생각에 발맞추려고 서둘러서 한 것은 아닌가? 그 결과 역사적인 문제를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종결해 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무슨 망발인가?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인 자세는, ‘소녀상 철거’ 합의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결정까지 한 것으로 추정하게 만든다. 물론 일본 언론에서 보도한 것이었고, 우리 정부는 부인하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도 발표된 것 이외에는 없다고 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두 외교부 수장들의 발표에서는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및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소녀상이 문제가 있으니 옮기겠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우리 정부가 거기에 동의해 주었다는 말 아닌가?

결국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옳은 것이다. 피해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관련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뭐라고 생각하든, 전문가들이 어떠한 견해를 말하든 구애받지 않는다. 우리가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우로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의 의지라기보다는 대통령 자신의 의지이었고, 그에 대해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없는 실정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여당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역사학계의 90%가 좌파라는 망언까지 하였다. 이번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향해 ‘혼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할 것인가?

굴종

우리가 이 문제를 접하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협상이 박근혜 정부의 굴종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협상에서 우리의 원칙을 고수한다면 일본과 크게 벌어져서 큰일이라도 날듯이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뿌리 깊은 친일 본색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실 일본과 우리는 지금 밀고 당기기를 해도 충분하다.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손해 본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굴종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친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위안부 협상 결과를 두고 ‘위대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의 타결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미국이 있다는 것은 별로 심오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문제도 아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위안부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하도록 한일 양국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러한 압박에 이렇다 할 항변 한 번 못해 보고 따르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아니던가?

물론 박근혜 정부 자체가 협상의 타결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협상을 밀어붙이는 것은 바로 그들의 굴종적인 자세 때문이다. 이러한 굴종적 자세가 지속되는 한 우리 민족은 자신의 운명을 남의 이해관계에 맡기는 처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 또한 이러한 자세로 한미 관계를 생각한다면 광주항쟁 이후 형성되었던 반미정서가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맺는 말

결국 이번의 위안부 협상은 박근혜 정부가 무능-불통-독선-굴종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이제 이 협상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수많은 범죄 중에 일부분이다. 우리는 일본 민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군국주의 일본을 싫어하는 것이고,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아베와 같은, 극우정권을 싫어하는 것이다.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막고, 그 잔재에 대한 철저한 청산을 위한 투쟁의 하나로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과거에 대한 불철저한 청산이 과거사 문제를 지금까지 남아 있게 만든 것임도 인식해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는 절차상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되었다지만 사실 군국주의의 후예들이 권력을 잡았다. 피해자 측인 우리나라는 친일파의 후예들이 독재정권을 하면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아 왔다. 위안부 문제 역시 그러하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된 시기를 생각해 보라. 6월 민주항쟁 이후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전개되기 시작하고, 독재가 후퇴하기 시작하던 때가 아닌가?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을 안고 있었다. 바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로 점철되어온 역사 때문에 그러하다. 왜 위안부 할머니들이 젊은 날에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밝히지 못하였겠는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자료는 소실되고, 당사자는 세상을 떠나거나 은둔하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런 조건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선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능하고, 불통이며, 독선적이고, 굴종적인 정권이 저지른 위안부 협상 타결을 무효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최대의 선물을 주는 것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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