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행한 전쟁(베트남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베트남이 역경을 딛고,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들이 한 발언이다.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베트남전쟁 이후 한국 최고인사의 '위로'라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여기에 청룡.맹호.백마부대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베트남 중부 5개 성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발언과 후속조치는 무엇을 위한 '위로'였는지, 과연 사과의 의미인지 등의 아쉬움을 남겼다. 이는 뒤이은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됐다. '위로'가 사죄인지, 왜 병원과 학교를 건립하기로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 총리들이 '위로'와 '유감'을 표명해왔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국민기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이 이를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9월 베트남을 공식방문, 호찌민 국가주석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의 베트남전쟁 관련 발언이 오히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9월 베트남을 방문해 호찌민 국가주석 묘소를 참배했지만, 베트남전쟁 발언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베트남 이주여성 5만 명 시대를 염두에 두고 '사돈의 나라'라고 표현하며 "한국은 오래전부터 베트남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했고, 투자와 협력을 통해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왔다"라고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은 베트남전쟁 파병을 강행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고, 김 전 대통령의 베트남전 '위로' 발언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는 것과 같다"라고 비난했다는 점에서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위로'수준의 발언도 없었다는 대목은 정부 차원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음을 증명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사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범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배경에는 한.베트남 양국이 과거사를 어느 정도 정리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1992년 수교 당시 베트남 정부는 "승전국으로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고, 여기에 배상문제도 제외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지역인 낌따이, 빈호아, 붕따우 등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빈호아 마을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라는 자장가를 부른다.

한.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실을 정리했을지언정, 50년 동안 피해자들은 과거와 싸우고 있고, 한국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한국 정부와 참전군인들의 범죄인정과 사죄가 절실하다.

▲ 한국정부의 ODA를 기반으로 한 대 베트남 정책. [자료출처-ODA KOREA]

한국 정부의 '새마을운동'에 묻히는 민간인학살 전쟁범죄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대하는 한국 정부와 사회 일부는 민간인학살 피해자들과 대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새마을운동'으로 대표하는 공적개발원조(ODA)에 집중하고 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총 2.7억 달러를 무상원조로 지원해왔다. 이는 연간 2,000~2,500만 달러에 해당한다. 

또한, 유상원조(EDCF) 명목으로 2014년 말 현재 총 48개 사업, 약 20억 3천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베트남에 대한 총 12억 달러의 EDCF 지원을 위한 EDCF 기본약정을 체결한 상태이다.

즉, 한국 정부에게 있어서 베트남은 제1의 ODA 협력대상국이고 47개 EDCF 지원국 중 최대지원 대상국인 셈이다. 

그리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대표적인 새마을운동사업은 '라오까이.꽝찌 행복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의 주인의식을 기반으로 소득증대 촉진 및 균형발전을 위한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는 △7개 현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신농촌개발 마을지도자 양성, △농촌직업훈련학교를 통한 우수 농업기술 개발 및 보급, △소득증대 사업 창안 유도 및 소규모 창업예산 지원 등의 사업내용이 들어있다.

이는 사회경제개발 전략(SEDS) 및 계획(SEDP)에 부합하는 유.무상 통합 '2011-2015 베트남 국가협력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對) 베트남 ODA는 과거사를 이유로 하지 않는다. 베트남이 태국과 더불어 동남아 내 한류 열풍의 진원지라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한국 정부의 자본에 기반을 둬 과거사를 지우려는 대베트남 정책은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위령비에서 엿볼 수 있다. 1968년 음력 1월 24일 청룡부대 3개 소대가 마을주민 135명을 살해한 것을 추모해 2001년 한국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지원으로 위령비가 들어섰다.

그러나 한국군 민간인학살지에 들어선 여타 위령비와 달리 '한국군'이라는 학살 주체가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위령비 뒤편 '청룡병사들이 미친 듯이 와서... 피가 이 지역을 물들였다'라는 문구를 문제 삼아 한국 정부가 지원 약속 철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정책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참전군인들의 행위에 기반을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부르고, 지금도 그렇게 평가받는 참전군인들은 "전쟁영웅을 양민 학살자로 둔갑시켜 죄인 취급을 받는 현실에 통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민간인학살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는 '종북 프레임'으로 묶여,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왜 사죄해야 하고, 어떤 고통을 줬는지 규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정부 스스로 이를 활용해 ODA 최대지원으로 무마하려는 모양새다.

▲ 낌따이촌에서 학살된 이들이 묻힌 무덤에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이 4일 향을 피우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시민,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죄운동으로 정부 움직여야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연계해 일본 정부와 사회 일부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에 과연 한국 정부와 시민들은 어떻게 대하느냐며 질문한다. 게다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도 모르는 체하면서 남에게 사죄를 물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은 국가가 저지른 전쟁범죄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향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사죄와 법적책임을 묻는 일이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도록 하는 일은 시민들의 몫이다. 아베 총리를 박근혜 대통령으로,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자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바꾸어 읽으면 되듯이 말이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도 인식되지 않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 초 한 학자에 의해 폭로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중심으로 20여 년 넘게 한국 정부와 세계여론을 움직여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한 전시하 여성폭력 근절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1999년 처음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이 언론에 공개되고, 작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된 진상규명작업은 가해자 한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가해국 시민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사죄운동이 필요하다. 이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전시하 민간인학살 중단운동과 평화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해국 시민으로 베트남전쟁 과거사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의 제안으로 전시하 여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인 '나비기금'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베트남전 피해여성도 포함되어 있다. 

▲ 지난 4월 베트남전쟁 한국군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베트남 빈호아마을 초등학교 학생들. '학살자 맹호부대, 살인귀 한국군'의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에게 화해를 통한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길이 절실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베트남 사회적기업인 '아맙'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추모사업, △피해자 지원사업, △피해 지역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을 목적으로 가칭 '한베평화재단' 설립이 준비 중이다.

'베트남의 목소리'라는 미국의 베트남 인권단체는 지난 10월 2만9천 명의 항의 성명서를 모아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고,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베트남전 기간 중 한국군의 조직적인 강간'에 대한 유엔의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운동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진실을 통해 증오를 해원하고 '학살자 청룡부대, 살인귀 한국군'의 의미가 담긴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화해를 통한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길이 될 것이다.

결국,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체하고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모습과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를 잊은 채 '사돈의 나라'라고 칭하고 ODA 자금으로 베트남 민간인학살을 지우려는 현실 속에서 시민의 연대가 절실하다.

과거의 진실을 밝혀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정대협 '나비기금' : 국민은행 069137-04-010752 (예금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나비기금))

(가)한베평화재단 설립 참여 : 건립추진위원 구수정, 070-7554-5670, amapvietn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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