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26일 프란치스코표육회관에서 ‘문명의 용광로 아시아’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반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다른 대륙과 달리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가치관을 저는 민족주의라 봅니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26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문명의 용광로 아시아’를 주제로 옥인학당 마지막 강좌에서 아시아문명의 일체성의 근거로 ‘민족주의’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정수일 소장은 “민족주의의 역사는 유럽에서는 굉장히 짧다”며 유럽에서는 봉건적인 지방분권제도가 상당히 발전돼 있었고, 그것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민족관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아시아는 옛날부터 노예제 국가, 봉건제 국가로부터 민족국가를 형성해서 중앙집권적인 민족국가가 일찍부터 형성됐다”며 그 의미를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을 때 민족을 구성할 수 있는 제반 요소들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는 언어의 공통성을 비롯해 경제, 문화, 의식 등이며,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제도 하에서만 요소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

▲ 정수일 소장의 옥인학당 강좌는 이날 8강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수일 소장은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통일뉴스, 2010)에서 민족 발생론 중 유럽 중심적인 ‘근대주의(mordernism)’를 비판하고 ‘연속주의(continualism)’를 새로이 제기한 바 있다.

근대주의는 “유럽에서의 민족은 18세기 말엽부터 일기 시작한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자본주의에로의 전환과 국민국가의 탄생 등을 통해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로 근대의 소멸과 더불어 단명할 운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영속주의(perennialism)’는 “민족의 원형이 씨족이나 종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족은 결코 근대의 산물이 아니며, 오랜 역사 과정에서 형성되어 상당한 역사기간 내에 존속한다”는 입장이다.

정수일 소장은 “영속주의가 내재한 비합리적 측면을 털어내고 합리적 측면을 살리는 방향에서” 양 이론을 재검토해 “‘영구불멸의 초역사적 상수’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발생해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존재하다가 조락된다는 민족의 역사적 존망을 거시적으로 반영한 그러한 이론이 바로 최적의 이론”이라며 ‘연속주의’를 제출했다.

정수일 소장은 강좌에서 “우리나라의 민족국가 형성은 삼국시대에 이미 싹이 텄고 고려시대에 와서 완전히 민족국가를 만들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이 고려시대부터 나왔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아시아문명의 일체성의 근거로, 체질인류학적 공통성으로 아시아인 대다수가 ‘황인종(몽골로이드)’이라는 점과 쌀을 먹는 등 생활문화상의 공통성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정수일 소장은 “유구한 역사와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을 갖고 있는 아시아는 인류문명의 ‘교차로’에서 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며 지정학적 의미가 큰 문명의 ‘십자로(교차로)’보다는 “동서문명이 만나서 융합되고 융화돼서 오늘의 아시아가 됐다”는 의미에서 문명의 ‘용광로’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시아문명의 특징으로 ‘다양성’과 ‘관용성’을 꼽았으며, ‘오리엔탈리즘’을 “아시아의 ‘후진성’을 전제로 한 서구의 우월론, 침략론”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일본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에 대해서도 “아시아 ‘후진성’에 대한 우월론과 탈피론‘이라고 비판했다.

▲ 차병직 변호사와의 대담에서 정수일 소장은 개인적 견해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차병직 변호사가 진행한 대담에서 정수일 소장은 자신의 저서 중 가장 아끼는 책은 『실크로드 사전』(창비, 2013)이며, ‘문명교류학’ 입문서로 추천하는 책은 자신이 감옥에서 번역을 마친 헨리 율과 앙리 꼬르데이가 지은 『중국으로 가는 길』(사계절, 2001)이라고 밝혔다. 또한 실크로드 첫 답사지로는 ‘중국 서안-돈황-천산-카슈카르’ 코스를 추천했다.

정수일 소장의 강연과 차병직 변호사의 대담으로 진행된 옥인학당 강좌는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8강좌를 진행해 이날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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