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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에 오르다. 시간이라는 조각가가 만든 저 걸작을 보라<정삿갓 북한 방랑기> 동포시인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 여행 (12)
정찬열  |  noproblem10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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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7  02: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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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 금강산에서. 꼭대기 천선대 오르는 철제 계단에 앉아. [사진제공-정찬열]

고성만의 아침 풍경

10월 15일(수) 맑음. 북한 방문 12일째 6시 기상. 창문을 여니 고성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결이 잔잔하다. 여객선이나 고깃배는 물론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2003년 10월, 설봉호를 타고 오후 2시 속초를 출발하여 해질녘인 6시30분에 이곳에 들어오던 날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온 L.A평통 가족 80여명, 그리고 수학여행 학생과 일반여행객을 포함한 팔백여 명 승객이 네 시간 반 동안 동해 바다를 항해하여 이곳에 도착했다.
 
설봉호와 금강호가 교대로 손님을 실어 나르던 시절이었다. 2박3일 관광객은 저기 보이는 현대호텔을 이용하고 3박4일인 우리 일행은 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숙소를 사용했다. 부부가 함께 온 사람은 방을 따로 내주고, 그 외 사람들은 한 방에 네 명씩 자도록 숙소를 배정 받았다. 금강산 일대가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시절이었다. 그 후 육로 관광이 시작된 후야 더 말하여 무엇하리.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다. 
 
산책을 나섰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호텔 해금강’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현대에서 바다 위에 지은 호텔이다. 가까이 와 보니 외벽 색이 많이 바래있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부스스한 얼굴을 한, 자다 일어난 여인의 모습이다. 내부수리중이다. 얼마나 더 오래 내부수리를 해야 할까. 환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할 때가 언제일까.  

아침밥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식이다. 한식을 마련해 놓았다. 손님이 적어 썰렁하다.
 
금강산은 보통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나누며 다시 이를 세분화하여 모두 22개의 명승구역으로 나눈다. 지난 번 방문 때, 22개의 절경 중에서 3개 절경을 구경했다. 동석동과 집선봉을 포함한 선하구역, 삼일포구역, 그리고 구룡연구역을 찾아보았다. 오늘은 만물상을 다녀 온 다음 해금강까지 둘러볼 예정이다. 22개 절경 가운데 겨우 5경을 본 셈이 된다. 다른 절경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밖에 나와 보니 아침 해가 고성만을 비추고 있다.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물결이 햇빛을 받아 은빛 비늘로 반짝인다. 금강산 연유 공급소가 보인다. 어제저녁엔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몇 년째 저렇게 방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멀리 바라보이는 큰 바위에 무슨 글씨가 보여 자세히 보니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라고 새겨놓았다. 그러고 보니 9년 전에도 이 부근에서 저 바위를 보았다. 김 참사가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재촉한다. 금강산관광 접수사무실에 들러 안내원을 태우고 가야한단다.   
 

   
▲ 호텔 해금강, 현대에서 바다 위에 지은 호텔이다. 내부수리중이다. [사진제공-정찬열]

 

   
▲ 금강산 골프장 가는 이정표. 지금 휴업중이라고 했다. 오른쪽 바위에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 글씨가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금강송 숲을 지나 만물상 입구에 이르다

어제 들렀던 사무실이다. 김 참사가 사무실로 들어간 다음 밖에 나와 서있는데 네댓 살쯤 되는 꼬마아이가 아장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백팩을 등에 메고 학교에 가는 모양이다. 학교에 가니, 물어도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름이 뭐니, 나이는, 말을 붙여보고 싶은데 시선을 내리깔고 묵묵부답이다. 사진하나 찍자 응, 하고 얼르니 빤히 쳐다보고 경계하는 눈빛이다. 길가 젊은 분의 얼굴을 쳐다본다. 동의를 구하는 모양이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이 마을 아이인데 학교가 바로 저기라고 한다. 할머니가 기르는 아이라고 얘기해준다.   
젊은 아가씨가 차에 오른다. 윤옥심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고성군 온정리 이 부근이 고향이란다. 매일 관광객과 함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안내원이 젊은 사람이어야만 할 성싶다.
 
요즈음도 관광객이 꾸준하냐고 물었다. 예전처럼 많지는 않아도 매일 손님을 모시고 산에 오른다고 한다. 작년에는 부근 바다에서 고기가 엄청 많이 잡혔다고 자랑을 한다. 전에 속초에 갔을 때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어종은 잘 모르겠단다. 
 
안내원이 금강산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금강산은 원래 여름에 부르는 이름이고 봄에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그리고 겨울엔 개골산으로 이름이 바뀐다 한다.  봄가을로 ‘금강내기’라는 강한 바람이 불어 가을단풍이 나무에 오래 붙어있을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영어로 금강산을 어떻게 표기하느냐고 물었더니 “Diamond Mountain”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차 안에서 안내원이 혹시 “망장천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냐”고 묻는다. “망장천忘丈川, 잊을 망忘, 지팡이 장丈, 내천川, 으로 쓰는데요”하면서 얘기를 계속한다.

옛날에 나무꾼 할아버지가 나무를 끝내고 내려가려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청년이 된 할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네요. 음, 할아버지가 마신 물이 회춘의 물이었답니다. 할아버지 말을 듣고 할머니가 샘물을 마시러 갔는데, 여자가 남자보다는 욕심이 좀 많지 않나요. 그 물을 많이 마셨더랍니다. 할머니가 하도 오지 않아서 가보니 어린 여자 갓난애가 울고 있어서 업어서 집으로 데려왔더랍니다.

선생님, 재미있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만물상 내려오는 길에 회춘하는 샘물이 있으니 조금만 마셔야 합니다, 농담을 건넨다.
 
산길을 올라가는데 소나무 숲을 지나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다. 이 부근에는 소나무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미인송이 많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금강송이다. 궁궐을 짓거나 국가적 건물을 지을 때 베어다 쓰던 나무라했다.
  
잘 보이는 바위 여기저기에 지도자 동지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2003년에 왔을 때, 저런 모습을 보며 함께 산을 오르던 경상도 분이, “이리 좋은 산에 저게 뭐꼬”한 마디 하시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잠자코 있자 “기 안능교”동의를 구하던 모습까지도 생생하다.
 
금강산 비로봉이 1,639미터, 우리가 올라갈 만물상 천선대가 936미터라고 한다. 꼬불꼬물 좁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자전거에 곡식을 싣고 힘들게 올라간다. 원래 이 길이 금강산을 넘어 가는 군사도로로 만들어진 길이었는데, 현대에서 관광도로로 개보수를 했다고 한다.
 
만물상 등산로 입구에 도착. “금강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큰 글씨 아래 ‘주의사항’다섯 가지가 한글, 영어, 한자 3개 국어로 쓰여 있다.

1. 금강산의 자연 경치에 손상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2. 등산로정에서 벗어나면 위험할 수 있으므로 조심하십시오. 3. 담배, 라이터 등 화재요소가 있는 물건들은 휴대하지 말아주십시오. 4. 등산로정과 환경이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이 거두어 주십시오. 5. 금강산해설원들의 안내에 따르며 신상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연락해 주십시오.

바로 곁에 ‘만물상 등산로 안내지도’가 나란히 서있다. 거리는 2.6km, 걸리는 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라고 한다. 제일 꼭대기 천선대를 다녀올 예정이다

   
▲ 학교에 가는 꼬마 녀석. [사진제공-정찬열]

   

만물상 천선대天仙臺 - 암석과 계곡, 봉우리와 함께 계절의 아름다움까지 어우러진 절경

골짜기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선지 등산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예년 같으면 골짜기에 물이 좋은데 올해는 가뭄이 심해 저렇게 물이 말랐다고, 제 탓이나 된 것처럼 안내원이 미안해한다. 그래도 아래쪽은 완전히 마르지는 않아 곳곳에 작은 물줄기가 흘러가고 있다. 오르는 길 군데군데 돌계단을 놓았고, 가파른 곳은 나무 손잡이를 설치해 놓았다.
 
길이 가파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더 가파르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나무, 그리고 산새들의 지저귐 속으로 나 또한 자연이 되어 걸어간다. 금강산 구경은 험산을 오르는 등산에 비견할 수 있으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오시라는 얘기를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안내원은 길을 올라가면서 곳곳에 바라보이는 바위를 가리키며 거기 얽힌 얘기를 풀어 놓는다.
 
‘서리 맞은 단풍은 2월의 꽃보다 붉다’고 누가 말했던가. 발갛게 물든 단풍이 잠시 쉬어가라 옷소매를 붙든다. 높은 곳은 철제 사다리를 만들어 길손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지만 그만큼 험하다.
 
숨이 턱에 오르기를 여러 번, 드디어 천선대天仙臺에 올랐다. 하늘나라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바람이 세다. 신선의 땅에 사람이 발을 붙인 게 못 마땅했을까, 모자를 벗겨가 버린다.
 
건너다보이는 곳이 만물상이다. 세상의 온갖 물상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문자 그대로 만 가지 물상(萬物象)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과 상상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달라 보인다. 시간은 조작가다. 비바람을 빌려 거죽을 긁어내고, 테두리를 지우면서 작품을 만들어간다. 한 점 일 획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는 경지에 들어선, 저 깎아지른 만 가지 모양의 바위를 보라. 위대한 조각가의 저 걸작을 보시라. 금강산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경치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첩첩이 산이다. 멀리 산봉우리엔 구름이 쉬어가고 실안개가 골짜기를 휘감아 돌고 있다. 어쩌면 산들은 저렇게도 절묘한 높낮이로 균형을 이루어 서 있을까. 휘휘 사방을 다시 둘러본다. 아름답다. 암석과 계곡, 봉우리와 함께 계절의 아름다움까지 어우러져 절경을 뽐내고 있다.
 
이 높은 곳 바위 여기저기에 박 아무개 이 아무개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엊그제 박연폭포 바위벽에 새겨진 풍경들이 생각난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허망한 욕심이다.
 
천천히 계곡을 내려온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문이 나있다. 바위 사이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한 모금에 10년이 젊어진다는 샘물이 기다리고 있다. 이 높은 바위틈에서 어떻게 물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하다. 내려오면서 올라오는 사람들 두어 그룹을 만났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음미하는 풍치가 그만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단풍”이렇게 고은 시인의 시를 바꿔 써야 할 성 싶다. 가을 단풍과 바위와 계곡이 어울려 금강산 가을 경치를 맘껏 뽐내고 있다.
 
내려와 보니 기념품 파는 가게가 전을 벌려놓았다.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다. 사람들 몇이 주위에 서서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대부분 수공예품이다. 

   
▲ 금강산 만물상 오르는 길의 경치. [사진제공-정찬열]

 

   
▲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가는 바위. [사진제공-정찬열]

 

   
▲ 겹겹이 산, 금강산이 멀리 여울져 간다. [사진제공-정찬열]

 

   
▲ 천선대 표지석 옆에서. [사진제공-정찬열]

 

   
▲ 천선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계곡. [사진제공-정찬열]

 

   
▲ 시간의 걸작품, 만 가지 물상(萬物象)이 한 곳에 모여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안내원 윤옥심과 함께. [사진제공-정찬열]

 

   
▲ 바위 사이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사진제공-정찬열]

 

   
▲ 한 모금에 10년이 젊어진다는 샘물. [사진제공-정찬열]

 

   
▲ 내려오면서 만난 경치. [사진제공-정찬열]


해금강 - 쪽빛 바다, 올망졸망 섬들이 수반 위에 떠 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온정리 관광단지에 내려왔다. 쓸쓸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 복닥거리며 붐비던 거리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해금강 쪽으로 가는 중이다. 속초 68km 사인이 보인다. 길 양쪽을 따라 녹색 철망이 서있다. 남쪽으로 통하는 금강산 여행길이다. 이 길을 이용하여 수많은 금강산 관광객이 오갔는데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다. 길에 자동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뒷자리에 함께 앉은 안내원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버지는 교원이고, 어머니는 장사를 하고 있단다. 동생은 올해 중학 졸업반으로 열여섯 살인데 자기보다 더 곱다며 동생 자랑을 한다. 졸업 후 군인 지원할 예정이라고 묻지도 않는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북에서는 아이들이 남녀를 불문 군인 지원하는 걸 굉장한 자랑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지난번 사리원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그랬으니까.
 
본인은 원산 교원대학을 졸업한 다음 안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는 교원대학과 사범대학이 있는데 교원대학은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남한의 교육대학에 해당하는 학교였다. 학교 선생을 하지 않고 왜 안내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쪽 일이 더 재미있다고 웃으며 답한다.
 
해금강 앞 검문소에 도착했다. 절차가 까다롭다. 무장한 군인 둘이 한참 이곳저곳 연락을 취하더니 통과 시킨다. 최전방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숲길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이르렀다. 해금강이다. 쪽빛 바다, 라고 하더니 저런 색깔이  쪽빛인가 싶다. 푸르디푸른 바다, 올망졸망 작은 섬들이 수반 위에 떠 있는 풍경, 어느 쪽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도 한 폭의 그림이 될 성 싶다.
 
운전사 방 동무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더니 연어 한 마리를 구해왔다. 인근 낚시꾼으로부터 차에 실어두었던 소주 두 병을 주고 교환해 왔다고 한다. 꽤 큰놈이다. 이 계절에 동해바다에서 연어가 잡히리라곤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점심을 부근 음식점에 부탁했으니 금방 가져올 거라고 한다. 출발 전, 방동무가 평양 가게에서 소주 몇 병을 사자하여 차에 실었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그랬었나 보다.
 
연어를 보니 오래 전, 알레스카 여행 중 연어낚시를 했던 생각이 난다. 7월이었는데 산 중턱에 눈이 쌓였고 백야현상으로 밤 12시도 어슴푸레 밝았었다. 오후 시간에 자작나무 숲 부근 강가에서 낚시를 했다. 강가에 띄엄띄엄 서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다가 고기가 물면 “fish on”하고 소리쳤다. 연어는 크고 힘이 좋아 끌어 올린 다음 옆 사람의 협조가 필요해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짜들은 퍼덕거리는 고기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아, 그런데 소주 안주로는 연어보다 역시 광어였다. 알라스카의 광어는 특별했다. 박세리 선수가 맨발의 투혼으로 LPGA US OPEN 챔피언컵을 들어 올리는 경기를 알레스카에서 보았으니, 10년도 훨씬 전의 일인가 싶다.    
 
김 참사, 방 동무, 그리고 점심을 준비해 온 아주머니랑 함께 자리에 앉았다. 연어 한 마리를 썰어놓으니 한 상 가득이다. 푸짐하다. 연어는 원래 부드러운 고기다. 연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상치에 싸고 마늘 고추를 얹어 한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출렁이는 동해바다, 해금강 경치를 바라보며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한 잔 먹세 그려 / 또 한 잔 먹세 그려 / 꽃 꺾어 산 놓고 /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옛 선인의 시 한 수가 저절로 읊어진다. 좋은 친구와 함께 이 자리에 또 와서 이렇게 한 잔 다시 먹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운전사 방 동무 덕분에 특별한 점심을 먹었다.

   
▲ 온정리 마을의 풍경, 쓸쓸하다 못해 적막하다. [사진제공-정찬열]

 

   
▲ 속초 68km 사인, 길 양쪽으로 그린색 철망이 서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연어 한 마리, 특별한 점심 밥상이 되었다. [사진제공-정찬열]

 

   
▲ 해금강 전경. [사진제공-정찬열]

 

   
▲ 멀리 작도 사이로 남측 고성 통일전망대가 있단다. 8킬로 정도란다. [사진제공-정찬열]

 

해금강에서 남측 고성 통일전망대 쪽을 바라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안내원과 함께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모래사장은 길지 않다. 멀리 바라보이는 저 끝, 작도 사이로 남측 고성 통일전망대가 있단다. 여기서 8킬로 정도 거리라고 한다. 8km. 한 다름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말무리 반도가 있다.
 
저 남쪽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이쪽 해금강을 바라보며 서 있던 때가 있었다. 국토종단을 끝낸 2009년 5월 3일, 국토횡단을 시작했던 2011년 5월 3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짜다.
 
31일 동안 걸어서 국토종단을 끝냈던 2009년 그날, 이렇게 적었다.

“마침내 통일전망대에 올라섰다. 금강산이 멀리 보인다. 금 하나 그어 남쪽과 북쪽을 갈라놓았다. 바다에도 그어 놓고 우리들의 가슴에도 보이지 않는 금을 깊게 파 놓았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모습을 이곳에 와서 다시 확인한다. 북녘으로 뻗어나간 저 길, 산모롱이 따라 휘어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보이지 않는 길, 언젠가는 내가 걸어가야 할 저 쪽을 바라본다.”
 
2011년 국토횡단을 위해 통일전망대에 섰던 때의 심정은 이렇게 적어 두었다.
 
“통일전망대 도착. 두 해 전에는 국토종단 종착점이었지만 이제 국토횡단 시발점이 되었다. 종단 때, 먼 길을 뚜벅뚜벅 걸어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북녘 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말무리 반도. 바다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섬들이 말이 무리 지어 달리는 모양을 이루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조망 너머는 비무장 지대다.
 
1950년 6월 25부터 53년 7월 27일까지, 3년이 넘도록 한반도에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4백만이 넘는 인명피해와 1천만 이산가족을 남기고 국토의 80%이상을 파괴했다. 그리고 휴전이 되었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휴전. 미국, 중국, 소련에 의해 155마일 휴전선이 그어지고, 양측 군대가 대치하는 지점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남북이 똑 같이 2킬로 뒤로 물러나고 이 지대를 비무장지대(DMZ)로 정했다.
 
해안선을 따라 길이 뚫려있다. 저 길은 한 때 남북화해의 상징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저 길을 따라 금강산을 다녀왔다. 지금은 적막하다. 거친 파도만 몰려왔다 몰려간다. 길은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닫혀있는 저 길도 다시 열리고야 말 것이다. 주인을 태우고 달리는 말무리 반도의 말처럼, 저 길은 제 등을 타고 지나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 멀리 건너다보이던 그 곳에서, 내가 바라보았던 곳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언제쯤이나 아무런 제약 없이 오고 싶을 때면 언제나 오갈 수 있는 시절이 올 것인가. 
 
“선생님은 아이들이 몇입네까.”
 
안내원이 묻는 소리가 파도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윤 선생 같은 딸이 하나, 그 아래 아들이 있다고 대답하니 몇 살이냐고 묻는다. 스물아홉, 스물여섯 살이라고 하니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진다.
 
온정리에도 장마당이 서느냐고 물었다. 열흘 마다 한 번, 1일에 장이 선단다. 매월 세 번씩 장날이라는 얘기다. 장마당에서 각종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더니 3천원쯤 된다고 한다. 아버지 월급은 자기보다 더 적을지 모르겠다고, 어머니가 돈을 더 많이 벌어온다고 얘기하며 웃는다. 어머니는 뭐하시느냐고 또 물으니, 장마장에서 장사를 하신단다. 
 
매일 산을 오르면 신발이 좋아야 할 텐데 어떤 걸 신느냐고 물었더니, 장마장에 좋은 신발들이 많다고 한다. 신발이나 옷은 자비로 구입한다고 했다. 월급 받아서 먹고 살고 사고 싶은 물건 사는데 부족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어케 사람이 제 욕심 다 채우고 삽네까”어른 같은 답을 내놓는다.
 
장마장에서는 달러와 중국돈이 주로 통용된다고 한다. 해방산 호텔 구내매점에서 괜찮아 보이는 옷 한 벌에 $300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북한 화폐로 치면 대단한 액수다. 신고 있는 운동화를 보니 중국제품이다. 운동화 한 켤레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장마장에서 운동화는 얼마정도 하느냐고 물으니 종류에 따라 다르다며 피식 웃는다.   
 
해금강 정자에서 어제 만났던 러시아 작가 일행을 만났다. 다시 만나니 할 말이 좀 더 많아진다. 첫 방문인데 대단히 인상적이라며 한 번 더 올 계획이라고 한다. 서로 연락하자고 또 약속을 했다.
 
김 참사와 운전사 방 동무는 휴대폰으로 본부와 수시로 연락을 하는 모양이다. 북한에 손전화가 370만대에 달한다니 인구에 비하면 적잖은 사람이 휴대폰을 이용하는 셈이다. 평양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편리한 물건은 다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다 보급되기 마련이다.

   
▲ 해금강 풍경 1. [사진제공-정찬열]

 

   
▲ 해금강 풍경 2. [사진제공-정찬열]

 

   
▲ 해금강 풍경 3. [사진제공-정찬열]

 

   
▲ 해금강 풍경 4. [사진제공-정찬열]

 

   
▲ 러시아 한인 관광객 일행을 다시 만나다. [사진제공-정찬열]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정주영 회장 생가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다

해금강을 다시 바라본다. 절경이다. 절경은 수식을 불허한다. “금강산을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금강산을 본 자는 보아서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금강산을 둘러본 다음 율곡 선생도 ‘가슴 속에 산수가 들어있을 뿐’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지 않던가. 세계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금강산은 특별한 산이다. 기氣가 서려있는 곳이다. 천하명승 금강산을 뒤로 두고 천천히 원산을 향해 출발한다.
 
고성군과 통천군 경계를 지난다. 통천려관, 통천전당포 상호가 보인다. 정주영 회장의 생가가 통천인데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가 싶어 김 참사에게 “정주영 회장 생가 들려가는 거지요”다짐을 주었다.
 
십여 분 지났을까, 길가 마을 앞에 차를 세운다. 이 마을이 ‘정주영 선생 생가 마을’이라고 한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로상리, 라는 푯말이 보인다. 로상리?,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정주영 씨 생가 마을을 아시느냐고 물으니, “이 마을이 아니고, 저쪽 다리 건너 왼쪽으로 둑을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가 있어 다시 물어보았다. “저기 저 마을이 정주영 생가 마을”이라고 손가락으로 동네를 가르킨다. 그 마을 뒷산 이름이 아산이어서 정주영 씨가 호를 아산으로 정했다고, 생가가 다 보존되어 있고 차로 가면 여기서 10분이면 갈수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길가에 서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정주영 회장 생가 마을, 둥그렇게 솟아있는 저 마을 뒷산이 아산이다. 마을 부근 밭에서 사람들이 추수하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동네로 들어가는 ‘송전 2다리’위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1989년에 세운 다리다.
 
김 참사가 날이 어두워졌으니 그냥 가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묻는다. 생가를 들리지 말고 그냥 가자는 얘기다. 다시 오기 어려운 길이니 생가를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았지만,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방문하지 못할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쉽다. “이봐, 해봤어?”, “길이 없으면 찾고, 찾아도 없으면 닦아나가면 된다”그 분의 말은 쉽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쌀가게 주인에서 시작하여, 자전거 수리공장을 발판으로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사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들이대 해외차관을 얻어와 현대중공업을 키운 분.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통과해 대북사업을 하는 등 그의 도전정신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 분의 생가 방문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다시 출발. 날이 저물어간다. 제법 어두워진 밭둑에서 20여명 농부들이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차창을 통해 보인다. 이 시간에 들판에서 뭘 하고 있을까. 조합원들이 꾸중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작업을 지시하거나 오늘 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밤 8시경 원산 동명호텔에 도착했다. 전기 사정이 긴박하여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으니 이해를 바란다고 종업원이 얘기한다.
 
낮에 먹었던 회가 잘못 되었던지, 체했는지 가슴이 답답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져간 소화제를 먹었지만 효과가 없다. 이 상황에서 아파 누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더 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정주영 회장 생가 마을, 뒷산이 아산이다. [사진제공-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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