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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끝에 붙잡은 민족의 화해협력<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③> 아산 정주영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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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2  19: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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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창간 15주년 기념 기획> 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6.15공동선언과 함께 탄생한 <통일뉴스>가 어느덧 창간 15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보수정권의 집권으로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길을 찾기 어려울 때, 다시 떠나왔던 출발점들을 되짚어 보는 일도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보다 결코 녹록치 않았을 당시에도 통일의 거보를 내딛어 스스로 통일의 초석을 쌓았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과 큰 결단, 그리고 뜨거운 가슴과 구체적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문익환, 김대중, 정주영, 윤이상,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각 분야에서 우뚝 솟은 이정표가 될 인물들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들과 함께 웅대한 통일의 꿈을 한번 꾸어 봅시다.

<통일뉴스> 창간 15주년 기념공연은 11월 4일 오후 6시 30분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봄에서 열립니다. /편집자 주

 
   
▲ 통일소 1998년 6월 16일. “철렁철렁 방울소리 평화를 싣고 오네. 행복을 싣고 오네” [사진출처-아산정주영닷컴]

“북한 사람들을 대할 때나 회의할 때 쓸데없이 아무데서나 웃지 말고 단정하고 정중한 태도로 진지할 것과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그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 것.”

1989년 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첫 방북을 하면서 동행한 박재면 당시 현대건설 사장, 김윤규 전무 등 일행에게 내린 주의사항이다.

당시 일행이던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회장은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 “의자에 기대지 말라”, “옷 단추를 풀지 말라”, “먼저 질문하지 말라”, “쓸데없이 웃지 말라” 등 정 회장의 주의 사항이 당시에는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 회장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첫 방북 당시를 돌아보면서 “형편이 나쁜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의 편안한 웃음조차도 있는 자의 여유로 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고, 혹시 자신들의 궁색한 살림을 비웃는 것은 아닐까 하는 피해의식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현대’를 통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해도 누구하나 탓할 사람 없는 대표적인 기업가인 정 회장의 주의사항이라고 하기엔 지금 다시 읽어도 일에 임하는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가 절절하다.

그러나 금강산공동개발을 타진하기 위한 정 회장의 첫 번째 방북은 기후보다 더 변덕스럽다는 남북관계의 영향으로 무위로 돌아갔고 결실을 보기까지는 그로부터 9년이 지나야만 했다.

모든 일을 다 해낸 대사업가의 마지막 사업...민족의 화해·협력

정 회장이 74세이던 1989년 결행한 첫 방북에서 훗날 금강산 관광사업의 기초가 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현대’를 통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고 자신만만하던 대사업가가 겪은 큰 ‘시련’이었다.

설상가상 3년 뒤인 1992년에는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후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고 당시 팔순을 앞둔 정 회장의 뒷전에서 사람들은 대놓고 ‘실패’를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8년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던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정 회장은 그해 3월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 1989년 1월 생가에서 숙모, 조카와 함께. 숙모에게 입고 갔던 와이셔츠를 빨아 놓으라고, 곧 다시 오겠다고 한 길이 9년이 걸렸다. [사진출처-아산정주영닷컴]

정 회장은 이 회고록에서 “내가 북한에 가서 그 사람들과 열흘에 걸쳐 진지하게 협의해서 도출해 가지고 온 협정서는 사장되고, 결과적으로 나는 되지도 않을 일로 부풋하게(엉성하게 크게) 바람만 잡고 온 사람이 되어 버렸다”며, 회환을 가감없이 기록했다. 그렇지만 “금강산 개발은 아직도 나에게 ‘반드시 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분명하게 다짐을 적어두기도 했다.

회고록을 발간하고 석 달쯤 뒤인 1998년 6월 16일 정 회장은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트럭 50대에 500마리의 소떼를 태워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이때 그의 나이 85세였다.

분단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는 정부 관계자 동행없이 처음으로 판문점을 넘어 북녘의 땅을 밟은 순간이었다. 트럭 옆에는 “철렁철렁 방울소리 평화를 싣고 오네. 행복을 싣고 오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현대에서 ‘카우보이 작전’으로 명명했던 이 소떼 방북을 일컬어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화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래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은 이 과정을 생중계했으며, 세계의 언론은 ‘통일소’, ‘황소외교’라는 표현으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정 회장은 당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문이 단지 개인의 고향 방문이 아니라 부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환경의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자신의 지향을 분명히 밝혔다.

넉 달이 조금 지난 그해 10월 27일에는 소 501마리와 함께 2차 소떼 방북이 있었다. 정 회장은 앞서 1차 소떼 방북 때에 새끼를 배고 있던 암소 100마리를 포함시키도록 지시했으며, 2차 방북 때에는 의도적으로 1마리를 더 포함해 도합 1001마리가 되도록 했다.

1,000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하겠다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세상은 1001번째 황소를 정 회장의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이자 의지로 읽었다.

1001마리 소떼방북으로 시작한 금강산관광

이때 정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 만나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보장받았으며, 한 달이 조금 지난 11월 18일 강원도 동해항에서 금강산을 향한 첫 유람선 ‘현대금강호’를 출항시켰다.

이로써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 사업을 상징하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정 회장은 이듬해인 1999년 2월 자신의 아호를 딴 ‘현대아산’을 설립하고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을 총괄하도록 했으며, 2000년 명예회장직을 사퇴하면서는 5남 정몽헌 회장에게 그룹 회장과 현대아산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2001년 3월 21일 아버지 정 회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사망한 후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금강산관광개발 사업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을 주관하다가 2003년 8월 4일 대북 불법송금 사건과 관련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12층에서 유서를 남기고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정몽헌 회장의 사후에는 그의 부인인 현정은 씨가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해 지금까지 온갖 외풍을 뚫고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지를 이어 대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3년 9월부터 금강산관광은 육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2005년 6월에는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금강산관광 뿐만 아니라 2002년 9월에는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있었고 2003년 6월엔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이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평양에서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 개관되는 경사도 있었다. 2005년 8월 금강산에 이어 개성 시범관광이 시작됐는가 하면 2007년 5월부터는 금강산 내금강지역 관광이 확대되기도 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008년 11월 금강산 관광 10돌을 맞이하기까지 숨 쉴 틈 없이 달려왔지만 그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을 계기로 현대의 금강산관광 사업은 전면 중단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이 설립하고 그의 아들 정몽헌 회장에 이어 며느리 현정은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아산은 지금도 회사 홈페이지에 ‘열려라 금강산’이라는 제목의 팝업창을 띄우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격려와 성원을 당부하고 있다.

“당국에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했다”

   
▲ 1998년 10월 정주영-김정일 첫 만남.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렇다면 북이 공산주의의 적대자로 분류되는 대자본가인 정 회장 일가와 이토록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애국 사업에 기여한 정주영 선생의 사망에 즈음하여 현대그룹과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지난 2001년 3월 22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유가족들에게 보낸 조전의 전문이다.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의 사망에 조전을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며, 김 위원장은 2년 뒤 정 전 명예회장의 후계자 격인 아들 정몽헌 회장의 영전에도 조문단을 보내는 등 특별한 인연을 쌓게 된다.

정 회장의 1차 소떼 방북 두 달 전인 1998년 4월 18일 김 위원장은 남북연석회의 50돌을 기념하는 중앙연구토론회에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제목의 서한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우리는 민족적 단합과 조국통일의 길에서 변함없이 광폭정치를 실시하여 민족적 양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그와 단결하며 조국통일의 한 대오에서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섯 달 뒤 ‘남조선의 대자본가’인 정 회장을 만나겠다고 미리 결심이라도 한 듯,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우리는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여당과 야당 인사들, 대자본가, 군 장성들도 민족공동의 이익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들과도 민족대단결의 기치 밑에 단합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일성 주석이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전문에서 밝힌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모두 다 나라의 통일과 통일된 조국의 융성번영을 위하여 특색 있는 기여를...”에 따르면 정 회장은 바로 그 ‘돈 있는 사람’인 셈이다.

또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현정은 회장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인연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도 서한에 있다.

   
▲2000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 일행과 기념사진. [자료사진-통일뉴스]

“우리는 일단 손을 잡은 사람들과는 조국통일의 길에서 뿐 아니라 통일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에서도 힘을 합쳐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에 공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족의 이름으로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대목이다.

북한은 어쨌든 정주영 회장을 만나 남북경협의 큰 물꼬를 텄으며,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도 후대로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설사 북의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극복해야 할 분단 상황을 안고 사는 남북관계에서는 소중한 자산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5년 7월 금강산에서 현 회장과 딸 지이씨 등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에 대해 회고하면서 “사람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열어놓은 북남관계를 가문이 대를 이어가면서 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앞서 북측이 조문단을 보내온 고 김대중 대통령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유가족들에게만 방북 조문을 허용하기도 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 출생이다. 며칠 후면 다가올 그의 탄생 100년에 그가 꿈꿔왔던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동안 막혀있던 ‘금강산 관광’부터 전면 재개되는 멋진 일은 벌어질 수 없는 걸까?

   
▲ 현대자동차공업사 직원들과 함께 금강산 구룡연. [사진출처-아산정주영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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