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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먹고 살아가는 일이 크고 중하다<정삿갓 북한 방랑기> 동포시인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 여행 (8)
정찬열  |  noproblem10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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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9  15: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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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평양의 종로통, 창전거리

10월 11일(토) 맑음.  북한 방문 8일째다, 6시 기상해서 창전거리 쪽으로 아침 산보를 나갔다. 산책이나 산보라는 말이 원래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는 개념으로 남북에서 누구나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북한에서는 ‘산보’라는 말이 ‘데이트 신청’의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성에게 별 생각 없이 “산보나 하실까요” 제안했다가는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할지도 모른단다.
 
창전거리는 새로 지은 아파트 지역답게 산뜻하다. 약국 간판이 걸려있는데 이름이 없다. 의약품, 보약, 의료기구 라고 되어있다. 약국에서 의료 기구까지 취급하는가 싶다. 종로양복점, 종로과일 남새상점도 보인다. 평양의 종로통이라는 의미일까. 종로 빨래집도 있다. 세탁소인 모양이다. 조선옷집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정부에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배급으로 해결해 주고 있지만, 저런 상점들은 특별히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명이 팔짱을 끼고 뭐라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학교에 가는 모양이다. 평양꽃상점을 지나자 ‘금성제1중학교’가 나타난다. 4층 높은 곳에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다. 저 말은 어느 학교에나 붙이도록 되어있는 구호인 모양이다. 학교 벽에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자” “달려가자 미래로!” 라는 포스터가 보인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늘 비슷하다. 빵 한 조각, 그리고 밥과 국을 가져왔는데 먹다 보니 조금 많다. 한 숟갈 정도 남기면 딱 좋겠는데 미국이나 한국의 음식점이 아닌 이곳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성 싶다. 남기기가 어려워 다 먹으면서 아직도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는가 싶어, 미련 곰탱이 같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침을 먹고 잠깐 방에 올라왔는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종업원 40여 명이 체조인 성 싶기도 하고 춤 같기도 한 율동을 배우고 있다. 가르치는 여성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 종업원들이 율동을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알자지라 방송기자를 만나다

오늘 일정은 단군릉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민속 박물관을 구경하는 일이다. 숙소에서 조금 일찍 내려왔는데 저만치 로동신문사 앞쪽에서 티비 방송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다. 기자 두 명이 평양시민들의 출퇴근 하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니 말을 건넨다. 알자지라 방송 기자라고 한다. 미국에 사는데 북한 여행 중이라 했더니 반갑다면서 명함을 건네준다.
 
알다시피 알자지라(Aljazeera)는 미국 CNN에 대항해 1996년 개국한 카타르의 위성 텔레비전 상업 방송이다. 아랍어로 '섬' 또는 '반도'라는 뜻을 가진 알자지라는 반 미국적, 범 이슬람적 시각에서 아랍인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북한에서 시청할 수 있는 체널에 중국이나 러시아 방송, 그리고 알자지라 방송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알자지라 방송과 북한의 관계가 좋은 것 같다.
 
평양에 온 후로 알자지라 방송을 매일 보고 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기자가 환하게 웃으며,  내용이 어떻더냐고 묻는다. 시청자로서 방송 내용에 대한 내 의견을 말했더니 자기네는 세계 곳곳에 특파원을 보내고 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방송으로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으며 오늘도 평양 시민들의 일상을 취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기자 두 명 중 한 명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남한은 관심이 없는가 물었다. 왜 관심이 없겠느냐며 때가 되면 취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할 수 있을 거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 알자지라 티비 방송기자를 만나다. [사진제공-정찬열]

 

김 참사가 출발할 시간이라고 손짓을 한다. 운전사 방동무가 어느새 왔는가 보다. 교통이 막히지 않아 평양 시내를 벗어나자 금방 교외로 나온다. 과일나무가 줄을 맞춰 잘 심어져있다. 산 밑에 농장을 돌보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평양과수농장 이라고 한다.
 
김 참사가 과수농장에 대해 소개를 시작한다. 전체 넓이가 1000정보라고 한다. 3천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4배 정도란다. 과수농원 울타리 길이만도 100여km에 이른단다. 과수농장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과수와 축산, 축산과 과수의 순환식 생산체계를 세워 운영되고 있으며, 식음료, 화장품 가공생산, 물류와 유통은 물론 양식장도 함께 있다고 한다. 새떼로부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농장에 씌울 그물을 생산하는 공장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규모가 큰 과수농장이라는 얘기일 터이다.
 
검문소가 나타난다. 평양시 외곽으로 나가는 경계인 모양이다. 군인 두 명이 차 안을 들여다본다. 김 참사가 나가서 신분증을 제시하며 설명을 하니 통과시킨다. 
 
단군릉을 방문하다

   
▲ 단군릉 전경. [사진제공-정찬열]


단군릉에 도착했다.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능선마루에 위치해 있는 단군시조의 무덤이다.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4> 서문에서 “현재와 같은 분단시대의 상황에서 남한 독자들을 상대로 북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글로 되고 마는 것이다. ....  단군릉 같은 미묘한 대상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와 염려를 무릅쓰고 양측의 주장을 아우르는 글을 썼다. ...”고 밝혀놓았다.
 
나는 유홍준이 했던 말, “현재와 같은 분단시대의 상황에서 남한 독자들을 상대로 북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글이 되고 만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북의 이야기를 남에 전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북에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통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단군릉은 해방 후 북한 고고학계가 내 세우는 최대의 업적이며. 여러 가지 학술조사와 고증을 통해 능을 건설했다고 한다. 부근에 있던 단군무덤에서 발굴된 뼈를 최신 과학기법을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 단군과 그 아내의 뼈임이 확인됐고, 1993년 당시를 기준으로 5,011(+-)267년 값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이러한 발표에 대해 여전히 이견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높은 곳에 아스라이 능이 보인다. 입구에서 능까지 279단의 화강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단다. 대단한 규모다. 유홍준은 이 모습을 “그 장대함이란 거의 무지막지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다. 
 
안내원을 따라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단군릉은 한 변이 50미터, 높이 22미터로 축조되었고, 화강암 돌은 1994년에 개건되었음을 기념하여 1,994개로 짜맞추었다고 설명해준다. 돌계단 중간 넒은 단에 돌기둥 조각을 세웠고 단군의 네 아들과 여덟 신하들로 호위하게 했단다.
 
270계단을 올라 능 앞에 섰다. 네 모서리에 우람한 돌호랑이를 수호상으로 세워놓았다.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를 것만 같다. 명작이다.
 
거대한 석조기념물 단군릉 앞에 서서 질펀하게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본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밭 그 끝에 산산이 파도가 되어 늠실거리며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개천절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올해도 천도교 대종교를 비롯한 남측 대표 36명이 다녀갔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덧붙인다.   
   

   
▲ 단군릉 돌호랑이 앞에 선 필자. [사진제공-정찬열]

  

   
▲ 질펀한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평양민속공원 방문

오는 길에도 검문소를 거쳤다. 평양 민속공원에 도착했다. 이 민속공원은 평양 대성산 기슭의 60만평 부지에 2009년 공사를 시작해 2012년 완공되었단다.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역사종합교양구, 역사유적 전시구, 현대구, 민속촌구, 민속놀이구, 백두산 및 금강산공원구역 등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대성산 기슭.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이 바로 427년부터 586년까지 160년 동안 고구려 궁전이 있던 안학궁 자리가 아닌가 싶다. 유홍준의 “우리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나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대성산의 생김새가 학이 편안하게 쉬고 있는 형세인지라 편안할 안(安), 학 학(鶴), 안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띈다. <조선-프랑스 개성성 공동조사발굴 전시회>라고 되어있다. 주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유산보호지도국, 프랑스 국립극동연구원. 9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기간이다. 국제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 개성성을 프랑스와 공동으로 조사 발굴하여 전시하는 모양이다.  
 
60만평, 대단한 규모다. 여기저기 관람객이 몰려다니고 있다. 젊은 학생들도 보이고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커플들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다.

   
▲ 벽화가 여러 개 그려져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입구에 여러 개의 벽화를 그려 놓았다. ‘우리나라는 인류문화 발생지의 하나’라는 그림부터 시작하여 ‘우리민족의 첫 국가 고조선’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 발해’로 이어지는 그림이 꽤 길게 이어진다.
 
“우리나라가 인류문화 발생지의 하나”라는 그림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북한 방문을 마친 다음 미국에 돌아와서야 의문이 풀렸다. 학교에서 세계 4대문명 발생지를 배웠지만 우리의 고대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런데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에서 구석기 시대인이 살던 동굴이 발견되었다. 이를 상원 ‘검은모루유적’이라 부르는데,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음을 확인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한에서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충남 공주시 석장리 등 30여 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그때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위에 언급한 ‘문화유산답사기’에 기술된 내용이다.
 
왼쪽 길로 들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학생들을 위한 역사종합교양구에 선사시대부터 움집 귀틀집과 함께 원시 인류의 모형을 만들어 형상화 시켜놓았다. 오른쪽 연못에는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띄워놓았다. 주체사상탑, 당창건 기념탑, 서해갑문, 개선문, 그리고 우리가 방금 다녀온 단군릉 등 현존하는 건축물이 전시되어있다. 황룡사지 구층탑, 석가탑, 다보탑도 보인다. 전국적으로 역사에 나옴직한 구조물들을 실물크기로 혹은 축소하여 전시해 놓았다. 옛날 생활용품과 무기까지도 곳곳에 전시해 두었다.
 
매점 앞에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막걸리를 판다고 한다. 함경도 북청에서 왔다는 젊은이들에게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하니 흔쾌히 응한다. 사람들이 선이 굵고 시원시원하다. 말씨가 투박하지만 남성답다는 느낌이 든다. 각 지방마다 저렇게 특성이 드러난다.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것저것 물음이 많다. 북청분들이 생활력과 교육열이 높아 ‘북청 물장수’라는 말이 있지 않냐고 했더니 ‘맞수다’ 하며 맞장구를 친다.
 
7층 전망대에 올라보니 한반도 모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금강산 모형, 백두산 모형도 보인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올라오기에 물어보니 평양 외국어대학 학생들이라고 한다. 수업이 없어 단체로 구경 왔다고 한다.  

   
▲ 평양 민속공원에서 놀러온 주민들과 막걸리 한잔. [사진제공-정찬열]

 

   
▲ 멀리 모형 금강산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 전라도 살림집에서 수틀을 들고 수를 놓고 있는 아주머니들. [사진제공-정찬열]

 

고구려와 고려, 발해, 조선시대의 궁궐, 관청, 가옥 등 역사 유적이 실물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각 지역 살림집을 전시해 놓았다. 양갓집의 안방 모형과 부엌까지 재현해 놓았다. 전라도 살림집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수틀을 들고 수를 놓고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전통 혼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을 만들어 놓고 가마를 대령해 놓았다. 혼례식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하는데 필자가 끼어들어 사진을 함께 찍었다.
 
제주도 살림집은 문 앞에 돌하루방이 서 있고, 바로 옆 돌판에 “남북교차관광기념 2009년 9월 제주도 지사 우근민”이라고 새겨져있다. 한 때, 남북이 저렇게 왕래하던 모습을 보면서 통일이 문턱에 오는 줄 알았다. 결국 서로 소통하고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안내원이 "평양민속공원의 특별한 점은 건축물뿐 아니라 조선의 역사유적과 문화, 풍속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대규모 노천박물관의 면모를 갖춘다는 데 있다"고 얘기한다. 이런 시설은 통일 이후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개선문, 그리고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

점심시간이 좀 지났다. 시내 모란봉 면회자숙소 식당으로 갔다. 강냉이 김치 온면이 이 집의 별미라고 했다. 쫄깃쫄깃한 면발이며 입에 감기는 맛이 그만이다. 점심을 먹고 바람을 쐬러 잠깐 거리로 나왔는데 저쪽 나무 그늘 아래 택시 기사들이 모여 한담을 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아줌마들이 나들이를 나가는가 보다. 여인들의 옷차림만 보아서는 평양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무슨 얘기들을 나누며 가는지 목소리가 맑고 발걸음도 경쾌하다.

   
▲ 택시 운전사들이 그늘 밑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정찬열]

 

   
▲ 아줌마들이 나들이를 가는가 보다. [사진제공-정찬열]

 
멀지 않는 곳에 개선문이 서있다.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서 갔다. 개선문은 은백색 대리석으로 60미터 높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닮은 모습이다. 개선문은 주체사상탑과 함께 198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 두 건축물은 ‘혁명전통의 계승’을 내외에 선언하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김 참사가 설명을 한다.
 
길 건너편에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연설하는 젊은 시절 김일성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벽화가 있다. 바로 옆에 그의 연설을 새겨 넣은 거대한 화강석 비석이 서 있다. 통바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비문이다. 
 
전 민족이 단결하여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 나가자는 내용이다. 연설문 중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 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라는 대목은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글모임에서 공부할 때 “글은 곱고 쉬운 우리말로 자세하게” 써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으니까.
 
내일 지방에 내려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미리 사두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근처 상점에 들렀다. 음료수에서부터 옷가지까지 여러 가지 물건을 함께 취급하는 잡화 상점이다. 낮이긴 하지만 좀 더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전등이 희미하다. 그렇지만 손님들은 그런 것은 개의치도 않고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는 등 흥정들을 잘도 한다. 대낮에도 환하게 전등을 켜놓고 사는 세상에서 살아 온 사람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아파트 앞에 연탄을 쌓아놓았다. 백 장쯤 될까. 40대 남자가 쌓아 놓은 연탁을 옮기고 있다. 우리도 옛날 김장을 마치고 연탄을 창고 그득히 들여 놓으면 겨울 준비를 끝냈구나 싶어 한 시름 덜곤 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살아가는 일이 크고 중한 일이다.  

주체사상탑의 여성 안내원

주체탑을 방문했다. 주체사상탑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민대학습당을 마주 보는 곳에 서있다. 높이가 170미터, 유경호텔과 함께 평양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인다고 한다.
 
탑 윗부분에 노동자, 농민, 인텔리가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상이 조각되어 있고, 탑 꼭대기에는 횃불모양의 20미터 봉화를 만들어 세웠다. 밤에 멀리서 보면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주체탑 벽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누리에 빛나라 주체사상이여’라는 글 중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입니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간다. 결국 사상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게 핵심이 아닐까.
 
한복을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내원이 안내를 시작한다. 장춘영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황해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군 복무를 마쳤고, 작년부터 안내원으로 근무하고 있단다. 해방산호텔 커피샾 아가씨가 5년 군복무를 했다는 말을 듣고 좀 놀랐는데 이 안내원은 10년을 복무했다고 한다.    
 
안내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평양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빙 돌아가면서 평양시 동서남북을 볼 수가 있다. 대동강 왼쪽으로는 멀리 대동교와 양각도 호텔이 보이고, 강 건너편에는 인민대학습당 김일성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좀 오른쪽으로 창전거리 아파트와 멀리 유경호텔이 서있다. 대동강 오른쪽으로 능라도와 모란봉이 자리 잡고, 눈을 돌려 뒤쪽으로는 아파트와 각종 건물들이 보인다. 

   
▲ 대동강 왼쪽으로는 멀리 대동교와 양각도 호텔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 강 건너편에는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제공-정찬열]

 

   
▲ 좀 오른쪽으로 창전거리 아파트와 멀리 류경호텔이 서있다.[사진제공-정찬열]

 

   
▲ 대동강 오른쪽으로 능라도와 모란봉이 자리잡았다. [사진제공-정찬열]

 

   
▲ 눈을 돌려 뒤쪽으로는 아파트와 각종 건물들이 보인다. [사진제공-정찬열]

 

평양 경치를 구경하던 중, 안내원이 얘기를 건넨다.
“6.25때 평양 시내 90프로 이상이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단 말입네다.”

당시 미군이 40만 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김 참사가 거든다. 잿더미 위에서 도시를 새로 건설했다는 얘기다. 

“사상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 연방제를 하자는 김일성 장군님의 말씀이 얼마나 당연한 말입네까.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합네다.”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과 싸울 때, 남쪽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까지 우리 조선을 응원했다고 하지 않습네까. 그래서 한 핏줄을 가진 동족이 아니겠습네까”
 
안내원이 열심히 얘기를 풀어간다. 내가 물었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아이가 세 살 입네다.”
“선생님도 손자가 있으십니까?”
“ ...... ”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 살 손녀에게 꼼짝못합네다. 손녀가 하자는 대로 다 해 주십네다.”
  
얘기하는 새댁의 얼굴에 행복이 넘쳐난다. 열심히 안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주체탑을 돌아본 다음, 바로 근처에 있다는 맥주집을 방문했다. 맥주 전문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맥주를 만들어 파는 집이라고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운전사 방 동무가 “메뉴좀 게오라”고 한다. 가지고 오라는 말이라고 김 참사가 통역을 해준다. #2 맥주를 주문했다. 좀 쌉싸름하지만 맛은 괜찮다. 종업원이 무어라 말을 건네자 방 동무가 “와그니” 대꾸를 한다. 왜 그러니, 라는 함경도 사투리라고 역시 김 참사가 설명해준다. 사투리에 감칠맛이 들어있다.

일정을 끝내고 김세을 신부님과 함께 고려호텔 부근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차 한 잔 하자고 양각도 호텔 47층에 올라갔다. 꽤 큰 호텔이다. 복도가 침침하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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