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일 서울에서 마침내 제6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다. 2012년 5월 제5차 베이징(北京) 회의 이후 3년 5개월여만이다. 

3국 정상회의가 중단된 직접적인 원인은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댜오위다오)열도 국유화' 조치였다. 그해 말 등장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에 적극 호응해 중국과 대립각을 분명히 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내달렸다. 

중국은 아베의 행보를 적극 활용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과의 역사 공조를 진전시키면서, 착실하게 군 현대화를 추진해왔다.  

한.일 간에도 악재가 겹쳤다. 2011년 12월 교토(京都)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험악하게 충돌했다. 다음해 7월에는 한일정보보호협정이 서명 당일 무산됐다.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을 모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일본을 자극했다. 2013년 2월 취임식 축하사절로 방한했던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으로 양자관계를 동결시켰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보듯, '미(한일) 대 중국의 경쟁 구도'가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된 시점에서 열리는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는 여러 면에서 주목의 대상이다. 2008년 12월 첫 회의 때 표방한 슬로건이 '3국 협력 강화'였다는 점에서 격세지감마저 든다.     

김대중 대통령 "차 한잔 합시다"

제1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 12월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렸다. 하지만, 실제 3국 정상회의는 그보다 훨씬 전인 1999년에 열렸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1997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창설 30주년 정상회의'에 한.중.일 정상들을 초청했다. 첫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것이다.

199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3 정상회의 계기에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일본 총리의 제안에 따라 한중일 정상회의가 별도로 열렸다. 2000년에는 아세안+3 정상회의 계기에 별도 한중일 정상회의가 정례화됐으며, 2002년에는 공식 회의로 격상됐다. 2003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3국 협력 증진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됐으며, 외교장관들을 수석대표로 하는 '3자 위원회'가 설치됐다. 2004년에는 '행동전략'이 채택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건너뛴 2005년을 제외하고, 2007년까지 8차례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체를 역내로 가져온 게 현재의 한중일 정상회의다. 일본이 2008년 1차 회의 의장국을 맡은 이유는 과거 '아세안+3 정상회의' 계기에 열렸던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 순번이 중국 -> 한국 -> 일본 순이었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마닐라에서 한중일 정상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계기와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외교 비사가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한중일 정상회의는 김대중 대통령의 드라이브로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1998년 11월)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방일이 실패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 중일관계는 좋지 않았는데,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총리(중국은 통상 다자회의에 국무원 총리가 참석), 일본의 오부치 총리와 두루 친했던 김 대통령이 '함께 차 한잔 합시다'고 권유한 것이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를 오부치 총리가 3국 정상회의 형태로 제안한 셈이다. 

2012년 5월 베이징 5차 정상회의 '공동선언'은 "우리는 1999년 3자 협력이 시작된 이래 그리고 특히 2008년 최초로 여타 다자회의와 독립적으로 개최한 3국 정상회의 이래 3국 협력이 이룩한 성과를 환영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중일 협력 현황과 전망 

2014년 기준으로, 한중일은 전 세계 인구의 21.3%, GDP의 21%를 점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가 각각 인구 규모로 7%, 6.6%, GDP 규모로 23.8%, 26.3%이다. 이들과 한중일은 오늘날 지구촌을 떠받치는 세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은 전문과 △정치적 상호 신뢰의 증진, △경제.통상 협력 심화,  △지속가능한 개발 촉진, △사회적, 인적, 문화적 교류의 확대, △지역적.국제적 문제에서의 소통 및 공조 강화 분야 50개항의 합의 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비록 3국 협력의 최상층에 있는 정상회의가 오랜기간 열리지 않았지만, 현재 3국 간에는 19개의 장관급 회의, 50개 이상의 실무자급 회의, 100개 이상의 정부 간 협력사업이 굴러가고 있다. 

2011년 9월에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국제기구 형태로 서울에서 문을 열었다. 2012년 5월, 한중일은 투자보장협정에 서명했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시작했다.        

다음달 1일 열리는 제6차 회의에서는 그간 3국 협력의 진전을 가로막아온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힘을 쏟을 전망이다.

'3국 정상회의 정례화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경제.문화.환경.재난 등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정상 차원의 의지를 '공동선언' 형태로 담을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인 한국은 북핵 문제에 대한 3국의 공동인식을 '공동선언'에 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 긴장 초래하는 행위 반대,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공동성명 준수, 6자회담 조기 재개 노력 등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남는 문제들

이번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한국의 의도는 비교적 분명하다. 3국 협력을 통해 북핵 문제 관련 공조를 촉진하고, 한미일 협력과도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가 '미(한일) 대 중국 경쟁 구도'를 누그러뜨리고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쪽으로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태평양 세력'을 자처하면서 '아태 재균형(아시아 회귀)'을 강화하는 미국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남중국해 인공섬 조성을 둘러싼 대치가 격화되면서, 11월 하순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는 미.중 간 총성없는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중국 경사론'에 시달려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중국해 문제 관련 한국이 목소리를 내라'고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최상의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유지'를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우는 박 대통령에게 괴로운 속제를 던진 것이다. 

아베 신조가 이끄는 일본과의 관계 재설정도 난제다. 박 대통령은 3국 정상회의 다음날인 11월 2일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북핵 공조', '일본 자위대의 활동 범위' 등 시급한 현안들이 회담의 명분으로 제시된다. 한일정상회담의 사실상 전제조건이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장관 간 사전협의에서 '계속 노력한다'는 식으로 봉합될 전망이다. 첫 정상회담이 내실 없는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열리는 회담의 숙명이다. 

이런 식으로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아베 총리는 일본 내 보수층에게 '원칙있는 외교'의 승리라고 홍보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중국하고만 잘 통하면 한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인식도 강화될 것이다. 향후 한일관계가 순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1999년 한중일 정상회의의 단초를 마련한 김대중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과의 친분과 다자 틀을 적절히 활용해 주동적으로 한국 외교의 공간을 넓혔다. 반면, 2015년 박 대통령은 자신의 경직된 정책에 발목 잡혀 어렵사리 마련된 3국 협력 공간을 미국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카드로 소모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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