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지난 9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였다. 이것을 두고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특히 열병식 참석을 위해 천안문 성루에 올라 광장을 내려다보게 된 상황을 두고 동북아신질서의 형성이라는 등으로 말하는 언론들의 논조는 자못 감격스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맹목적인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무능과 불통의 통치자로 인식되던 박 대통령이 졸지에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지도자로 부각되는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박 대통령은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도 참석하여 마치 독립운동을 계승하는 대통령인 양 대내외에 알리려고 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중국과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하기까지 하면서 마치 통일을 이룰 지도자인 듯 행세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그를 추종하는 맹목적 지지자들에게는 정말 하늘을 찌를 듯이 기쁜 시간들이 지속되고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반영인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이번 전승절 행사 참석을 계기로 상당히 올랐다고 한다. 전통적인 지지층이 결집되었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른바 중도 층에서도 이번 전승절 행사 참석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그것은 대대적으로 떠들어대는 언론 때문에 착시현상이 생기는 점도 없지 않겠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파격적인 행보 때문에 혹하는 마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런 지지율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들떠 있거나 혹은 반대로 침울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산적한 국내 문제에 대해서 전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터지는 일마다 속수무책인 무능 정권이 이벤트성 행사 참석 때문에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지속하리라고 보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거나 아니면 지나친 비관주의적 사고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여러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마치 박비어천가를 부르는 듯 떠들어대는 수구언론들이야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 혹은 우려감 섞인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갖고 있는 의미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현재의 동북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고 우려해야 할 점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외교적 행보가 왜 동북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없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현 정부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외세 의존성에서 그 이유를 우선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수구 기득권 세력은 아무리 분을 발라도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것은 그들에 대한 맹목적 지지층 아니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지금 자신들의 본질적 존재와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이비’ 민족주의인 것이다. 사이비 민족주의를 통해 권력의 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것은 세계사를 통해 유례가 많다. 박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바로 그런 기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가 뼛속 깊이 친일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 어떻게 부정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임시정부 재개관식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마치 민족주의적인 양 보이려고 했지만, 집권 이래 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근현대사 왜곡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교과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교학사 교과서에 힘을 실어주는가 하면 그것이 실패하자 이제는 아예 국정교과서화를 추진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아베의 종전 70주년 담화에 대해 이렇다 할 반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하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건국 67년이란 발언을 함으로써 사실상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또 외교적 힘은 국내 세력을 통합하여 지지를 얻는 힘에서 나오는데 박근혜 정부의 지금 행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고, 심지어 국민 통합이 아닌 분열을 조장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까지만 해도 복지 정책이니 경제 민주화니 하면서 뭔가 이전 정권과는 다른 길을 갈 듯이 떠들었지만 결국 다 낯간지러운 소리가 되고 말았다.

최근 들어서 부쩍 잦아진 사정 몰이나 이른바 노동 개혁을 통한 노조에 대한 탄압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박근혜 정부는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진보 인사나 야당 인사에 대해 표적 수사를 하면서도 자신들의 핵심층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서는 유야무야하고 있다. 쇠파이프를 든 노조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안 된다고 하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그가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게 만든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외교 행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이비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국민 통제를 강화하고, 그것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교 문제, 남북 문제를 통해서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국내 세력 관계를 재편해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국민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이다.

외교 문제, 남북 문제를 통해 국민 통제를 강화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있어 왔던 낯익은 방식이다. 이러한 기도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기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화려한 외교적 제스처로 문제를 미봉하기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이 너무 크고도 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아무리 분을 발라도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것은 맹목적인 여당 지지층이 아닌 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에 대처해 나가는 민족민주운동, 민중운동의 역량이 그저 당하고만 있을 정도로 약하지만은 않다. 다만 그것이 국민 내부에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상처를 남기면서 오랜 기간 갈 것이라는 점이 우려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혹자는 이제 민족이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가를 수 있는 잣대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물론 진보와 보수가 그렇게 갈려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계사를 들먹일 것도 없이 우리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친민중적인 것은 민족적인 것이고, 반민중적인 것은 반민족적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수구 기득권층이 사이비 민족주의라도 내걸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민족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기로 우리는 누가 진정 민족적인 세력인지를 대중 속에 각인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철저히 친일 잔재 청산을 요구하고 추진하며,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한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 여당을 비판하고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벌어지는 생존권 투쟁, 권리 수호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 나가야 하고, 그에 대한 지지 지원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진정 중요한 것은 민중생존권이 바로 반민족세력과 외세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이 대중적으로 각인되는 것이며,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무기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철저한 인식의 정착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도 바로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세력의 무기를 빼앗으려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이 대중적으로 직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
이러한 경구가 대중 속에 각인될 때, 사이비 민족주의가 판치면서 국민을 현혹하고, 그 이면에서 칼춤을 휘두르는 반민족적 반민중적 정권에 대해 심판의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