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舌戰)은 단순히 ‘세치 혀’만의 싸움이거나 ‘말 대 말’의 싸움으로 치부될 수 없다. 특히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설전은 곧바로 군사적 충돌이라는 실전(實戰)을 야기할 수 있기에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오죽하면 남과 북이 만나면 합의문에 ‘상호 비방 중상 금지’가 꼭 들어가야 했겠는가? 서로 폄하하는 게 일상사인 남북 사이에, 모처럼 북측이 남측에게 비난 아닌 ‘조언’을 하겠다며 나서 신선함을 더해 주고 있다. 다름 아닌 북측 국방위원회가 2일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원칙적이고 동포애적인 조언’을 한 것이다.

◆ 북측은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된 공동보도문을 통해 어렵게 마련된 남북관계의 개선 분위기를 남측이 어지럽히고 있다며 두 가지 차원에서 조언을 했다. 하나는 남측이 이번에 조성된 한반도 안보위기의 주범이 마치 북측인 듯한 여론을 계속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북측은 그 예로 박근혜 대통령이 “북의 지뢰도발과 포탄발사로 이번 위기가 산생되었다”고 공언했으며, 고위급 접촉에 나왔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이 주체로 되는 사과를 받아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이번 기회가 북으로부터 확실한 사과를 받아낸 첫 번째 사례”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 이에 북측은 ‘괴이하다’는 표현을 쓰며 남측이 공동보도문에 나온 북측의 ‘유감’ 표현을 ‘시인’이고 ‘사과’인 것처럼 여론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보도문에서 쟁점이 됐던 ‘유감’과 ‘사과’에 대해 친절한 해석까지 붙였다. 즉 “사과란 저지른 잘못에 대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빈다는 뜻”이라면서, 그 예로 미국이 북한 영해침범을 사과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상기시켰다. 반면, ‘유감’에 대해서는 ‘문병을 한 셈’이자 ‘그렇게 당해서 안됐습니다’ 하는 식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북측은 지뢰폭발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며 다만 남측 군이 목함지뢰 사고를 당한 것에는 ‘동포애적’ 유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 북측은 이번 남북 고위급 합의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 들어 최고치인 거의 50%에 육박한 것을 의식해서일까. 또 하나의 대남 조언으로 남측이 공동보도문 채택을 두고 ‘원칙론의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즉, “지금 남조선 정계는 이번 위기의 신관(信管)을 해체하는데서 저들은 ‘득점’을 하고 북은 ‘실점’을 당한 한판 승부수였다고 크게 떠들어대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북측은 “북과 남이 한자리에서 합의한 공동보도문을 놓고 어느 일방의 승리로 묘사하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비루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조언을 넘는 점잖은 충고까지 곁들었다.

◆ 두 가지 대남 조언을 한 북측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화를 복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어나가자’는 덕담도 상기시켰다. 이쯤 되면 북측이 이번 공동보도문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겠다. 물론 북측도 “공동보도문 채택의 성과가 핵무력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강위력한 방위력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에 의하여 이룩되었다고 평가한다”고 했지만, 다소 의례적이다. 어쨌든 북측은 이번 담화를 통해 상투적인 대남 비난이 아닌 충고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인 의미 있는 조언을 했다. 북측의 인내심이 느껴진다. 남측 당국이 북측의 조언을 상투적으로 넘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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