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8월 10일 설치된 대북 확성기. 군 당국은 지난 4일 발생한 지뢰폭발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짓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만에 재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내무장관으로부터 강원도 지방에 파견한 특파강사 조영환 씨는 홍천군 신남면 부평리 삼팔선 접경 육OO고지에 확성기를 장치하고 지난 십이일 종일토록 대이북방송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이북 삼일오 고지에서 공비들이 욕설을 건네며 발포하였으나, 그를 불관하고 소련의 국제적 고립상태, 동족상단을 시키는 잔학성 등 국내외정세와 국군의 실력을 상세히 설명한 바 공비들도 조용하여졌다고 한다" (1949년 9월 26일, 동아일보)

1945년 분단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한 언론 첫 보도인 듯하다. 1949년 보도인 점을 비춰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확성기 방송이 시행됐고, 이는 한국전쟁의 도화선으로 번진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분단 70년을 맞은 2015년. 대북 확성기 방송이 한반도에 전운을 감돌게 한다. 8월 4일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사건에 대한 대응조치로 10일,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고, 그 여파로 20일 남북 포사격 교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북한군 총참모부는 22일 오후 5시까지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급기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21일 오후 5시부로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전선 대연합부대들이 불시에 작전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들어간다고 명령을 하달했다.

다행스럽게도 22일 오후 6시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려 군사적 긴장은 수그러들었지만, 사흘째 진행되고 있는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지뢰폭발사건 사과와 재발방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두고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살포하는 소리 없는 전쟁인 '종이폭탄' 대북 전단과 함께 심리전의 일환인 확성기 방송. 분단 70년 동안 휴전선 일대를 진동시킨 '소음폭탄'인 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남북관계를 살펴본다.

▲ 2015년 8월 10일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남측의 확성기가 북녘을 향하고 있다. 남북은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로 자연스럽게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확성기 방송, 한국전쟁 전후 자연스럽게 시작

남북의 상대를 겨냥한 확성기 방송이 공식적으로 언제부터 설치됐는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다. 확성기 설치와 관련된 보도를 보더라도 휴전 이후 일대에 확성기를 공식적으로 설치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한국전쟁 전 군 당국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있었고, 전쟁 중 전단살포와 함께 심리전의 하나로 확성기 방송이 시행됐다.

휴전 이후 1958년 12월에 열린 제90차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확성기 설치 안을 북측이 거부했다는 점에서 휴전선 일대 확성기 설치가 공론화됐다. 그리고 1959년 3월 북한 측이 유엔군이 확성기에 라디오를 연결해 방송했다고 주장한 점에 미뤄,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중심으로 휴전선 일대에 확성기가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을 해 남북 간 '소음폭탄'은 휴전선 일대를 울렸다. 당시 방송내용은 무엇일까.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들의 정치, 사회, 경제를 홍보하고 남한을 비방하거나 월북을 권유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남한도 뉴스와 함께 북한의 실상을 비난하거나 노래 등으로 감수성을 자극했다. 1961년 6월 24일 자 <경향신문>에는 "고성능 확성기를 대놓고 욕설에서 시작하는 그들(북한)의 방송은 간접침략을 분쇄하고 민주대한을 구하려고 혁명의 선봉에서 그 과업완수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겐 백%의 마이동풍..."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당시 남북 군인들은 서로의 방송을 듣고 월북.월남하기도 했다.

확성기 방송 중단, '7.4성명', '7.7선언'에서 출발

하지만 남북의 휴전선을 소음으로 가득하게 한 확성기 방송이 두 차례 중단된 역사가 있다. 바로 '7.4남북공동성명'과 '7.7선언'으로 남북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11월 2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에서 남측 이후락 중앙정보본부장과 북측 박성철 제2부수상은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진지한 민족애의 분위기 속에서 협의를 진행한 결과'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고 합의한다.

당시 합의문에서 남북은 "쌍방은 서로 비방,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남북공동성명 조항에 따라 1972년 11월 11일 0시를 기해 대남, 대북 방송과 군사분계선 상에서의 확성기에 의한 대남, 대북 방송, 상대방 지역에 대한 삐라살포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2백 12일 만에 북한이 대남방송을 재개하면서 깨졌다. 북한은 1973년 6월 10일 오후 8시 25분부터 41분 사이 경기도 연천군 북방 10km 지점 504, 511, 513 GP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남북조절위 회담은 김일성의 은덕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방송을 재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9시 5분부터 9시 13분 사이 강원도 화천군 동북방 지역에서 "남한 측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을 충실히 이행치 않아 대남방송을 재개한다"고 재개 이유를 밝혔다.

남북 간 확성기 방송 일시 중단과 재개 이후 발표된 1988년 '7.7선언'은 확성기 방송 일시중단으로 이어진다. 특히, 1988년 7월 19일에 중단된 확성기 방송은 남북 간 합의가 아니라 남측의 일방적인 조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완전한 중단은 군의 사기를 저하한다는 반발에 따라 휴전선 일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루 18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이고 김일성 부자에 대한 비방을 중지하고 체제비판 및 홍보에만 주력했다.

그러다 같은 해 12월 당시 이상훈 국방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89년도 국방정책'을 시달하면서 방송의 내용을 민족 동질성에 중점을 두기로 한다.

그리고 1989년 3월 국방부가 공개한 남북 병사간 확성기 방송 내용은 흔히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남한 병사) "나는 한양대 법대를 다니다 왔다. 친구는 제대 후 무엇을 할 예정인가"
(북한 병사) "군 복무후 공부하여 과학자, 예술인 및 운전사가 되고 싶은데 분단현실을 깨닫고 군 복무를 평생 하기로 했다"

(남한병사) "정월 대보름에 둥근 달을 보면서 한해의 풍년과 소원을 기원하며, 각종 농악놀이를 하고 오곡밥을 먹는데 그쪽은 어떤가?"
(북한병사) "나는 저녁달을 보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김정일 동지의 만수무강을 빌 것이다"

게다가 1990년 10월 북측 여군 장교의 제안으로 남북 병사들은 확성기를 통해 '고향의 봄'을 합창하기도 했다. 1993년 3월 북측은 대남 확성기를 통해 "땅굴은 남침을 위해서 판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조선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남북 간 확성기 방송은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 2004년 6월 남북은 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확성기를 철거했다. 사진은 당시 확성기 철거 모습. 남북의 확성기 철거합의는 1972년 '7.4공동성명'이 처음이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04년 확성기 철거..2015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분단 60년을 앞둔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확성기가 철거됐다. 남북은 합의문에서 △2004년 6월 15일부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한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선전수단들을 다시 설치하지 않으며 선전활동도 재개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11년이 흐른 2015년 8월 10일 지뢰폭발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 내린 남측 군 당국은 '혹독한 대가'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를 두고 남북 간 합의를 우리가 먼저 깨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국방부 당국자는 "천안함 폭침으로 사실상 합의는 깨졌다.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기 전에 계속 이 합의를 준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재개된 방송 내용은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대한민국 발전상, △민족 동질성 회복, △북한사회의 실상 등이 담겨있다.

또한, 가수 아이유의 '마음', 노사연의 '만남', 걸그룹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아이돌그룹 빅뱅의 '뱅뱅뱅' 등의 노래가 방송된다.

분단 70년 휴전선 일대를 울리는 '소음폭탄'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인가. 22일부터 24일까지 진행 중인 남북 고위급 접촉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오늘 여기 무법지, 난 불을 지러, 심장을 태워, 널 미치게 하고 싶어 (중략) 다 꼼짝마라 다 꼼짝마 오늘밤 끝장보자 빵야빵야빵야" 대북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빅뱅의 '뱅뱅뱅' 노래의 가사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