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광복 70년이라고 기뻐들 하고 있다. 35년간 우리를 깔보고 억누르고 짓밟고 쥐어짜던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은 지 70년 되는 날이니 기쁜 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 우리 땅에서 일제를 내몰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의 남북으로 가르고, 각기 자기 구미에 맞는 정부를 세워놓고 떠나 버려, 그 결과 민족분단이 굳어지고 마침내 골육상잔의 내전을 겪고 오늘날까지도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과연 그날을 기뻐만 할 일인지 모르겠다.

분단 70주년이니 우리들 중 만 70세 미만의 사람들은 남, 북 또는 해외 어느 곳에 살고 있든, 전체가 똑같은 하나였던 분단 이전의 우리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또 70세를 넘었어도 80세 미만이면 그때 아직 어려서 분단 이전의 하나였던 시절을 뚜렷이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80세 이상으로 분단 이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총인구의 8.6%에 불과하다. 그리고 평균수명이 남한보다 짧은 북한의 경우는 그 숫자가 더욱 적을 것이다. 그러니 남북 간에 그래도 하나였던 시절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통일을 그 만큼 더 애타게 갈망하는 인구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매년 감소하여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릴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니 그야말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70년 전 분단으로 남북 간에 흩어졌던 이산가족들은 주로 부부간, 부모자식간, 혹은 형제자매 지간이었다. 또 멀어서 4촌간이나 6촌간이었다. 그러나 70년이 지나는 동안 사망 기타의 사유로 부모자식간이나 부부간의 이산가족 수는 대폭 감소되었을 것이다. 4촌이나 6촌간의 이산도 아직 남아있지만 그 수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그만큼 분단에 따른 아픔이 감소돼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역설적으로 강변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그 현상이 분단현실을 수용하고 통일에 대한 민족적 갈망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 인구 대비 이산가족수가 감소된다는 것은 통일을 뼈저리게 갈망하는 인구가 그 만큼 감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현상이 계속되면 남북의 주민은 마침내 상호동질성을 전적으로 상실하여 북의 조선민족과 남의 한국민족으로 즉 전혀 다른 두 민족으로 갈라져 통일의 필요성도 완전히 소멸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남북은 아마 어쩌면 이미 그 과정에 위험할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급한 과제는 민족의 동질성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가서 이를 회복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장차의 주인이 될 남북의 젊은이들 간에 서로 접촉을 늘려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할 것이다.

친목회, 토론회, 운동경기와 문화예술공연, 나가서는 단체여행 등 다양한 접촉기회를 마련하고 증대하여 그를 통해 남북 간에 새로운 부부 관계, 부모자식 관계, 형제자매 관계, 그리고 4촌 6촌 관계 등이 발생되고 발전되도록 인위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에서는 분단의 원조의 한 사람인 김일성의 손자가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남에서는 1961년 4.19 민주혁명 후 맹렬히 타오르던 남한대중의 통일열기를 반공제일주의의 기치를 들고 무참히 짓밟고 영구적 반통일 군사독재체제로 종신집권의 야욕을 채우려다 비명횡사한 박정희의 여식이 최고 권좌에 버티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남북의 당국자들 간의 접촉으로 민족의 동일성을 회복하는 큰 일이 제대로 성과를 올릴 가능성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 간에 이런 뜻에 찬동하는 인사들이 상호교감을 통해 서로의 뜻을 확인하고 해외의 어떤 장소에서 만나 가칭 “남북 청년학생 상호교류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 어떨까하는 꿈같은 공상을 홀로 해본다.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했으며, 6.25 때 육군 정훈장교로 입대해 1955년 대위로 예편했다.
1955년-1971년 외무부 재직 중 한일회담과 각종 무역회담에 참여했으며, 1961년 뉴욕대학원에서 석사학위(국제경제학)를 받았다.
1972년부터 미국 LA에서 제조업체를 설립, 경영했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코리언 스트릿 저널, 크리스천 헤럴드, 라성 한국일보, 기자협회보(국내) 등에 통일문제를 위주로 글을 써 왔다.
1990년 제1차 범민족대회 미주동포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1995년에 ‘통일마당’ 창설 회장으로 선임됐다.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미주본부’ 고문 및 ‘통일뉴스’ 상임고문으로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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