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올해 2015년 8월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때입니다. 해방은 1945년 8월 15일로 정확하게 날짜를 잡을 수 있는데, 분단은 그로부터 며칠 전이어서 애매하게 8월로만 얘기했습니다만 굳이 밝히자면 8월 10일입니다. 일본군이 미군에 항복의 뜻을 전한 날이죠. 해방도 되기 전에 분단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시겠어요? 우리는 왜 해방도 되기 전에 분단되었을까요? 3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받은 것도 서러운데 왜 분단되었을까요? 유럽에서는 독일이 전쟁과 침략이라는 범죄에 대해 분단이라는 처벌을 받았는데, 아시아에서는 침략을 일삼아온 전범국가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왜 침략을 받기만 했던 조선이 분단이라는 희생까지 당했는가요?

그리고 분단된 지 한 세대 두 세대가 흐르고 환갑 진갑이 지나고 칠순이 되어도 왜 통일이 안 되는 걸까요? 분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5년 뒤에 전쟁까지 일어났는데도 아직도 통일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앞으로 얼마나 오랜 세월이 더 흘러야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세계사를 살펴보면 아무리 큰 민족적 충격이나 상흔이라도 한 세대 남짓 또는 충분히 잡아 40년 정도 흐르면 치유가 된다는데, 왜 우리 남북한은 두 세대가 훌쩍 지나도 분단과 전쟁이라는 충격과 상흔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원한과 증오 그리고 적대감을 증폭시키며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요?

여러분은 우리가 왜 언제 분단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언제 어떻게 통일될지 예상하기 어려워도, 전쟁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아주 똑똑하게 기억하고 계시지요?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라고.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아무리 잘 하고 열심히 했어도, 세상에 어떤 전쟁이나 사건을 연도에 덧붙여 월, 일, 요일, 시각까지 외워봤는가요? 자기 사주 빼고 배우자나 부모자식이 태어난 연월일시도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세요?

얘기가 좀 빗나간 김에 6.25전쟁에 관해 한 마디 더 하고 지나가죠. 오늘의 주제는 분단과 통일이지만, 전쟁을 빼고 이에 관해 제대로 말하기는 곤란하니까요. 우리는 ‘3.1절’이나 ‘4.19혁명’ 또는 ‘5.16쿠데타’처럼 무슨 기념일을 포함해 사건의 명칭을 붙이기 좋아하는데, 이러면 역사적 사건의 성격을 잘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6.25전쟁의 네 주체는 남북한 그리고 미국과 중국입니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합니다. 미제국주의 아래서 신음하는 남조선을 해방시켜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란 뜻이죠. 미국은 ‘한국전쟁 (The Korean War)’이라고 합니다. 장소를 중시해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란 말이죠. 중국은 ‘항미원조전쟁 (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에 대항해 조선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는 거죠. 그런데 남한은 ‘6.25전쟁’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시작된 날짜를 강조하는 거죠. 북괴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강행함으로써 전쟁이 터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6월 25일을 세뇌시켜왔는데, 바로 이 때문에 원한과 증오 그리고 적대감이 증폭되는 건 아닐까요? 여러분 가운데 부부싸움을 하거나 형제자매들이 싸우면 ‘왜’ 싸우는지가 궁금하지 ‘누가 먼저’ 때렸는지가 궁금하세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생각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불행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바람직하지, ‘누가’ ‘언제’ 싸움을 시작했는지 세뇌시키며 ‘쳐부수자 공산당’과 ‘상기하자 6.25’를 부르짖는 게 더 중요하냐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6.25 전쟁은 3년 만에 끝났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질적으로는 끝났을지라도 법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것은 전쟁을 멈춘다는 ‘정전 (停戰)’ 또는 쉰다는 ‘휴전 (休戰)’ 협정이지, 전쟁을 끝낸다는 ‘종전 (終戰)’ 또는 ‘평화’ 협정이 아니었거든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간 싸운 뒤 지금 2015년 8월까지 62년간 쉬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3시간 공부하고 62시간 휴식을 취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또는 누가 3일 일하고 62일 쉰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우리는 왜 이런 비정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북한은 오래 전부터 전쟁을 완전히 끝내자며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평화협정을 맺자는데,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미국과 평화를 사랑한다는 남한은 정전/휴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정전/휴전협정을 빨리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면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야 되지 않겠어요?

한편, 통일이 좋긴 하지만 꼭 이루어야 하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두 가지 이유를 꼽는 것 같습니다. 같은 민족이니까, 그리고 강대국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럼 같은 민족 한 핏줄이면 꼭 같이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가운데 직장이나 교육 때문에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떨어져 사는 분 안 계세요? 직장이나 교육 문제로 주말부부로도 살고 기러기부부로도 사는 터에 같은 민족이라고 남북 7,500만이 꼭 한 울타리 안에서 살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꼭 강대국이 되어야 좋을까요? 여러분,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 사람들이 부러우세요, 아니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같은 복지국가 국민들이 부러우세요? 우리나라 경제력은 세계 12-13위 안팎으로 200개 정도 국가들 가운데 톱 6-7% 안에 들어요. 이런 터에 더 강대국이 되기 위해 꼭 통일이 필요할까요? 또한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1945년 분단 이후 70년 동안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서 살아오다 합치면 사회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북녘 인민들이 우리보다 잘 살거나 비슷하면 통일해서 덕 좀 보거나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겠지만, 빌어먹고 굶어죽는다는 사람들과 합쳐봐야 그들 도와주고 먹여주려면 세금을 더 내야할 텐데도 꼭 통일해야 되겠느냐고요.

지금까지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제가 간단하게 답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 우리가 해방도 되기 전에 침략국도 아닌데 분단된 이유는 미국의 전후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챙기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이기자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전리품으로 차지했지요. 1945년 8월 9일 미국이 두 번째 핵무기를 떨어뜨리자 일본 군부가 즉각 미국 군부에 항복의 뜻을 전했습니다.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은 당연히 미국이 차지했어야 할 전리품이었지요. 그런데 소련이 미국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8월 9일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한반도로 내려오던 참이었으니, 미국이 전리품 조선을 38선으로 나누어 소련과 같이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패전국 일본은 미국이 통째로 차지했다 물러가는 바람에 온전한 모양으로 남았고, 전리품 조선은 소련과 나눠 점령하는 바람에 분단된 것이지요.

두 번째 문제: 분단된 지 70년이나 지나도록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힘센 사람들이 통일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단을 유지해야 기득권을 지키며 이익을 챙길 수 있거든요. 나라 안에서는 친일파와 1세대 탈북자들이고, 나라 밖에서는 미국입니다. 첫째, 친일세력은 1945년 일본 대신 들어선 미군정에서 처벌을 받기는커녕 다시 권력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친일/부일이란 죄를 덮기 위해 반공/반북을 악용해왔고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친일은 사회적으로 비난 좀 받으면 그만이거나 심지어 미화되기도 하는데, 친북은 법적으로 처벌까지 받잖아요? 둘째, 1세대 탈북자들은 1945년 해방 직후 북쪽에서 소련군과 김일성 세력에게 쫓겨 내려온 친일파, 토지개혁 때 땅 빼앗기고 내려온 지주들, 종교탄압에 쫓겨 온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원한과 증오 그리고 적대감을 갖고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바라지 않으며 북한이 타도되거나 붕괴되기를 원하지요. 셋째, 미국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으며 ‘악마’로 남겨놓아야 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있고, 남한에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쉽습니다.

세 번째 문제: 1953년 7월부터 지금까지 62년 동안 정전/휴전협정을 유지하며 종전/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주한미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한반도에 미군을 유지한다는 정책을 세워놓았습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죠. 주한미군은 법적으로나 명분으로나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있는 겁니다. 이렇듯 북한의 남침을 막는 게 주한미군의 가장 크거나 유일한 목적이라면,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계속 남아있을 필요가 뭐 있겠어요? 떠나면 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주한미군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북한과 불가침조약 또는 종전/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법적 명분이 사라지고, 그래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지요. 따라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악마로 남겨두어야 하며, 북한을 악마로 유지하려면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거죠.

네 번째 문제: 우리가 통일을 꼭 이루어야 할 이유는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폐해가 너무 크고 통일을 이루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통일 경비가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분단 경비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더구나 통일 경비는 남북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자는 건설적 투자비용이지만, 분단 경비는 서로 적대시하며 죽이자는 파괴적 소모비용이에요. 통일 경비는 천금이라도 아깝지 않지만 분단 경비는 한 푼이라도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피해와 고통 등 돈으로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대표적 폐해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첫째, 분단 때문에 정치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추구하면서도 사상과 양심, 언론과 출판, 결사와 집회 등의 자유 같은 가장 기본적 자유조차 훼손되고 억압당하는 것은 분단 때문이잖아요.

둘째, 분단 때문에 군사 외교적으로 자주권을 침해받고 있습니다. 군대의 작전통제권까지 미군에게 맡기는 등 미국에 너무 종속적이라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국제적 조롱을 받는 현실은 분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역으로 먹고 살며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남한이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미국과의 무역액수보다 두 배 이상 크지만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며 망언을 해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일본과 공조를 진전시켜야 하는 것도 분단 때문이잖아요.

셋째, 분단 때문에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대략 정부예산의 15-20%이죠. 국방비 말고도 남북이 체제 경쟁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쓸데없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국방비를 비롯해 막대한 경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만큼 사회복지비를 늘릴 수 있어, 요즘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무상급식’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겠지요.

넷째,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이 너무도 큽니다. 남북 사이에 일가친척끼리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소식을 알아도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하며, 평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길은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 아니겠어요?

다섯째, 분단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 제한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남한은 ‘완도 (完島)’입니다. 육지와 연결된 ‘반쪽 섬’이 아니라 바다로만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섬’이란 말이죠. 그러기에 해외여행을 하려면 편안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돈이 많이 드는 비행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분단되어 있지 않다면 여기 광주에서 기차 타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저녁 먹은 뒤 밤새 만주나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며 유럽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남북이 연결되면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게 됩니다. 남북은 가만 앉아서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통과료를 챙길 수 있을 테고요.

여섯째, 분단 때문에 주한미군이 유지되고 이를 통해 퇴폐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범죄까지 늘고 있습니다. 미군들이 온갖 폭행과 만행을 일삼아도 처벌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분단 때문이죠.

일곱째, 분단 때문에 한반도가 동아시아 긴장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도 남북한이 끼어 있고요.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덟째, 분단 때문에 징병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20대에 공부하거나 일하다 말고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인 군대에 불려가 2-3년 ‘썩어야’ 하는 현실이 왜 지속되는가요? 군대에 가기 싫어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하고, ‘빽’을 쓰기도 하며,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는 등 온갖 병역 비리가 저질러지는 이유도 징병제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서해교전이나 천안함 침몰 또는 연평도 포격 등 남북 사이의 갈등이나 무력충돌 때문에 희생된 젊은이들보다 군대 안에서 자살과 사고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은데,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 군생활이 적성에 맞겠다는 젊은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자식 등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단결심과 충성심이 더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아홉째, 분단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만에 하나 서해교전 같은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면 남북 모두 막강한 병력과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터에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멀쩡하게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서울도 평양도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될 텐데요. 특히 요즘 전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보듯, 군인들만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습니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경기도 강원도 사람들만 죽은 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도 죽고요.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 아니겠어요? 제가 평화운동/통일운동에 한쪽 발이나마 걸쳐놓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단 1%라도 낮추기 위해서요.

마지막으로, 통일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첫째,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을 잘 따르고 지키면 됩니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약간 고쳐진 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서 유지되어 온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정책은 이른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입니다. 1단계로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 또는 공존공영을 이루고, 2단계로 두 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지키는 국가연합을 이루며, 3단계로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는 완전 통일을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서서히 통일을 추구하면 사회 혼란이 생길 이유도 없고 천문학적 통일 경비가 들 까닭도 없습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화해협력 또는 공존공영을 통한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친북해야 합니다. 북한과 친하게 지내지 않고 북한을 적대시하며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어요? 과거 이승만-박정희 정부 때처럼 무력으로 북진통일을 추구한다면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쳐부숴야죠. 그러나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려면 친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여러분 모두 전쟁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원하신다면 반북이 아니라 반드시 친북을 해야 하는 겁니다.

둘째, 북한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동독이 무너질 때부터 북한도 곧 붕괴되리라는 전망이나 주장이 많이 제기되었어도 25년이 지나도록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도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북한을 반대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지요. 그리고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거나 무너진다 해도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었듯이 고이 남한의 품에 안길까요? 중국이 북한에 엄청나게 투자해놓고 있는 터에 가만 지켜보고만 있겠어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구실로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요. 남쪽 위정자들은 북한이 붕괴되면 그곳 지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벼르고 있을 텐데, 특히 빨치산의 후예들인 북한 군부 지도자들이 이판사판 싸워보자고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을까요? 중국이나 미국이 개입하지 않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채 남한에 흡수되는 건 괜찮을까요? 지금 우리는 3만명 정도의 탈북자들도 제대로 껴안지 못해, 죄 짓고 감옥에 가거나 자살하거나 다시 탈출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는 터에, 북한 인구 10분의 1인 250만 또는 100분의 1인 25만명이라도 남한 사람들이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겠느냐는 겁니다. 북한 체제가 좋아서도 아니고 김정은이 예뻐서도 아니라, 우리가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도 같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북한이 무너질 것 같아도 막는 게 바람직합니다. 평화통일만이 대박이지 흡수통일은 쪽박이죠. 고맙습니다.

* 이 글은 2015년 8월 13일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대중 민주평화 아카데미 학술강연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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