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실제 단양 사인암의 풍경.
아래-김홍도/ 병진년 화첩 제 4폭 /지본담채/26.7*31.6/호암미술관 소장. [자료사진 - 심규섭]

진경산수화는 겸재 정선이 창시했지만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후대 화가들은 겸재파, 김홍도파를 형성해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다. 사실 조선시대 이후 가장 조선적인 그림은 진경밖에 없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진경산수화를 ‘조선 산수화’라고 불렀다.

위 사진과 그림은 실경과 진경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사인암은 단양 팔경 중에 하나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영향으로 조선의 좋은 풍경은 화가들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김홍도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53세였다. 기량이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나이였다. 기록에 의하면 김홍도는 사인암을 그리기 위해 1년여를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것은 사인암이 암석과 수풀이 뒤엉켜 있어 사인암의 독특한 조형요소를 잡아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경을 보면 사인암은 상당히 복잡한 풍경이다.
그러나 진경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서 핵심만을 끄집어내어 실제보다 더욱 멋있는 풍경을 그려내어야 한다. 
만약 김홍도가 중국의 어디쯤 있다는 풍경을 상상으로 그렸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의 풍경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풍경 속에서 진경, 즉 핵심 조형요소만 뽑아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누가 보아도 실경과 닮아야 하고 동시에 그 속에 내재된 이상적인 풍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경산수화는 단지 특정 그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경산수법이란 조형원리와 함께 붙어있다. 진경산수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진경의 미학과 조형원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조선 진경의 미학과 조형원리를 찾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당대 정치상황이나 조선 선비들이 가진 철학이나 사상을 알아야 하고, 실경과 진경을 대조하면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형, 왜곡, 생략, 과장, 부각하는지 또한 화면구도, 원근법과 시점, 필법 따위가 적용되었는지 연구해야 한다.

김홍도는 일단 바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의 수풀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뒤로 밀어버렸다. 바위에는 필요한 나무나 약간의 수풀만 남겼다.
이런 표현은 사인암의 온전한 모습을 그러내기 위한 조형방법이다. 실제 풍경을 보고 이렇게 과감히 주변을 생략할 수 있는 배짱은 김홍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진경산수화를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표현을 통해 수풀에 가려져있던 사인암이 독립적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인암을 표현하는 것도 바위를 여러 개로 나누고, 과장과 생략을 통해 변화를 도출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바위의 윗부분은 세세하게 그리고 아래는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거대한 느낌과 동시에 중량감을 표현한다. 아랫부분을 비워둔 것은 밑도 끝도 없게 만들어 공간을 깊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래서 시원하면서도 공간감이 느껴진다. 

수묵으로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채색을 진하게 한 그림과는 많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김홍도가 이 그림 위에 진한 채색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느낌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실제 풍경과 김홍도의 그림을 보고 모호하게 느낄 수도 있다.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원래 그림이라는 것이 실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실제와 똑같으면 사람들은 '음, 똑같군.'하면서 관심을 돌려 버린다.
다르면서 같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현실과 이상의 관계를 자신의 삶 속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작품과 같은 예술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