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주 / 우리사회연구소 객원연구원

 

[연재를 시작하며]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반입이 뜨거운 논란이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고 이를 위한 수단에는 제한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위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을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발상이다.

세균무기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이번에 벌어진 주한미군 탄저균 논란도 미국이 어떠한 입장과 목적에서 살아있는 탄저균을 이 땅에 반입하였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탄저균 반입 사건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세균전의 나라 미국>이라는 연재를 준비하였다. / 필자 주

<차례>

1. 전염병과 전쟁
2. 731부대장 이시이가 미국으로 간 이유
3. 최초로 폭로된 세균전, 한국전쟁
4. 한국을 생물학전 실험장으로 만든 주피터 프로그램
5. 매년 900kg의 탄저균을 생산했던 미국
6. 세균, 방어용인가? 공격용인가?
7. 진화하는 세균전
8. 불안한 한국사회
9.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이 오산 공군기지로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배달한 사실이 알려지고, 미국의 세균전 실험실이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서울 용산기지와 평택 캠프 험프리, 군산미군기지, 충청지역으로 추정되는 미 육군공중보건국 산하 실험실 등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했고, 미국이 한국을 생화학전의 실험장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넘어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미군이 탄저균을 들여와 무엇을 하려 했는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실험의 목적과 형태가 어떤 것인지, 주한미군 발표처럼 이번 실험이 처음인지, 오산 이외의 다른 기지에서도 진행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미국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라고 불리는 보툴리눔A형 독소까지 실험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어떤 실험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미군은 과연 탄저균 택배를 받아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번 실험은 북한의 생물무기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그런 게 아니라면 미국은 이 땅에서 세균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되어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서 생화학전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생화학전 전력을 강화하는 주한미군 

▲ 제23화학대대 훈련모습 [사진-미2사단]

2013년 4월 미국은 제23화학대대를 주한미군 2사단에 배치했다. 화생방전을 전문으로 하는 이 부대는 2004년 미국 본토에 복귀했다가 다시 한국에 재배치된 것이다. 이로써 주한미군 2사단은 해외 미군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화학대대를 운영하는 사단이 되었다. 애초 이 지역의 미군시설은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2016년 한국에 반환될 예정이었다가 취소되었다.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은 주한미군 2사단 전력을 2배가 하고 최근 창설한 한미연합사단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화생방 무기를 선제 제거, 확보하는 작전을 수립했다. 미군은 키리졸브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통해 이를 숙지하는 훈련을 계속 해오고 있다.

특이한 점은 주피터 프로그램이 시작된 시점(2013년)과 제23화학대대가 한반도에 재배치된 시점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결국 제23화학대대의 재배치는 주피터 프로그램과 함께 미군의 한반도 생화학전 전력 증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은 2011년부터 매년 한미생물방어연습(AR: Able Response)을 해오고 있다. 여기에는 군대만이 아니라 보건소, 질병관리본부 등 비군사 영역까지 포괄하는 양국의 50여개 정부기관 소속 200여명이 참가한다. ‘토의 방식’으로 진행되던 훈련이 2013년부터는 시나리오에 따라 실제 대응절차를 연습하는 ‘기능 연습’의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2013년 10월 미군 의학연구사령부에서 국가 간 생물무기 대응 공조체계인 '생물무기감시포털'(BSP) 구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BSP는 탄저균·두창·페스트 등 10여 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한미간의 협약은 세계 최초의 국가 간 BSP 구축 협약이었다.

이렇게 미국은 한국에서 생물학전 병력과 능력을 꾸준히 증대시켜 왔다. 특히 북한에 대응한다며 북한을 선제타격 하는 것을 포함한 생물학전 대응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한 준비들을 해왔다.

미 육군은 2014년 펴낸 ‘육군 작전 개념(AOC): 복잡한 세계에서 승리하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북한의 위협은 육군이 생화학전(CBRNE) 환경에서 작전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에 걸쳐 미국의 지배력에 도전하는 지정학적 또는 경제적 적국을 제압하는 ‘총력전’(Total War)의 개념을 담은 것으로, 펜타곤 주변에서는 속칭 ‘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라고도 불렸다.

2014년 한미합동 키리졸브 훈련에서는 유사시 북한을 타격하는 타깃 지점에 '생물학무기 진원지'를 대폭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경제신문>의 “한미VS북한, 내일부터 '가상의 전쟁'”기사에 따르면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생물학무기 진원지'를 포함한 합동요격지점(JDPI)을 새로 선정해 북한이 도발할 경우 선제타격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최윤희 합참의장은 인준 청문회에서 “북의 생화학무기 사용 징후에 대해서도 선제 타격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15년 6월에 한국에 순환배치되는 미 제1기갑사단 제2기갑전투여단이 훈련 중인 미군훈련소(National Training Center·NTC)의 마틴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북한군이 갖고 있는 무기 가운데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 무기 공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다.”며 비대칭 특별 전술팀을 초빙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생화학전 전력을 증강시키는 미국

미국이 세균전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나 보수언론에서는 주피터 프로그램 등이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대응차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군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지속적으로 배달해 온 곳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미군은 지난 10년간 미국 내 각 주를 비롯해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총 5개국 80곳 이상에 탄저균을 보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주피터 프로그램의 설계자인 피터 이마뉴엘 박사는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미 국방부의 태평양 중시전략(Pivot to the Pacific) 덕분에 주피터 프로그램의 근거지를 한국에 두기로 한 것은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고도 했다.

따라서 북한이 생물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의 진의 여부를 떠나 북한 때문에 국내에서 탄저균 실험을 하고, 대응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생화학전 전력을 증강하고 대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보도(“미국 핵 연구소서 신종 세균무기 연구”)에 따르면, 핵무기를 관리하고 있는 미국의 에너지부가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손댄 시점은 1997년부터다. 에너지부는 97년 '생화학무기 국가안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9·11 테러 직후 우편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가 발생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해 ‘방어용’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왔다.

2002년 에너지부의 예산은 전년도보다 무려 115% 늘어난 8700만 달러로 책정되었다. 김형성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에 따르면 2001년 탄저균 테러사건 이후 Biodefense 연구예산이 대폭 증액되어 2010년에는 연간 8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4년 7월 부시 대통령은 ‘프로젝트 바이오쉴드(project bioshield)법안’에 서명했는데, 이는 10년 동안 56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08년 미국경제 위기가 일어나고, 정부부채가 너무 늘어서 예산을 자동적으로 삭감(씨퀘스트)해야 하는 처지였던 2013년과 2014년에도 생물학무기방어계획 관련 예산은 예정대로 지출되었다.

<연합뉴스>의 보도(“美, 사상초유 비밀 생물학무기 연구소 건설중”)를 보면, 2006년 부시 정부는 34년 전 생물학 무기가 금지된 이래 처음으로 '국립생물학방위 분석 및 대응센터'(NBACC : National Biodefense Analysis Countermeasure Center)라는 이름의 기밀로 분류된 최대 생물무기 연구소를 2차 대전 때 부터 미국의 생화학전 핵심기지로 주목받아온 메릴랜드 주 포트디트릭 기지에 설립했다. 신문은 세균 실험을 위해 동물들을 수용하는 세균 분무실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이 연구소 운영진들에 의해 슬라이드로 제작된 2004년 업무계획에 따르면 이 실험실은 유전 공학적으로 제조된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무기화된 세균들을 소량 만들고 실험까지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일뉴스> 이시우 전문기자에 따르면, 2012년 8월 7일 미 국방부는 유타 주에 있는 Big-D Construction회사와 약 2천2백만 달러에 더그웨이병기훈련장 안에 새로운 생명과학실험시설을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이 연구소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페스트, 탄저, 야토병 등을 초래하는 병원균을 취급할 수 있는 등급의 연구소라고 한다. 2014년 8월 25일에는 메릴랜드 엣지우드의 에버딘병기훈련장(Aberdeen Proving Ground South)에 미 육군 엣지우드화학생물학센타(ECBC: U.S. Army Edgewood Chemical Biological Center’s)의 첨단화학연구소(ACL: Advanced Chemistry Laboratory)가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 내에는 기밀로 분류된 물질을 다루는 비밀작업공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끊이지 않는 생화학전 준비 의혹

이렇게 생화학전 전력을 증강시키고 훈련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백신개발 등 ‘테러세력’의 생물무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생물무기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것인가? 안타깝지만 우리가 현재로써 이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 보이는 모습은 미국이 세균전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게 만든다.

미국은 1969년부터 생물무기 제조 중단을 선언했고, 1972년에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비준했다. 하지만 미국이 생물무기를 제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게다가 생물무기라는 것이 공격용과 방어용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관련 의혹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에 따르면, 미국의 저명한 군사과학 전문지 <원자력과학자 협회보,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9/10월호가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세균무기 개발 착수내용을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이 잡지는 미국이 자체적인 세균전 능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탄저균, 페스트균, 보툴리누스균 등을 조종·변형·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소를 건설하고 있고, 충격적이게도 이들 세균 시설이 캘리포니아 소재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와 뉴멕시코 소재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 등 핵무기 연구 지역에 건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주민과 단체들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고, 맹독성 세균을 다루면서도 환경평가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국제사회에서도 미국의 생물무기를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기업의 이익 침해 등을 이유로 검증 요구를 묵살했다.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 테러가 있을 당시 ‘미국과학자연맹’ 바버라 해치 로젠버그 박사는 “미국이 매년 탄저균을 900kg씩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에는 ‘제퍼슨계획’이라는 암호명 아래 보다 치명적인 탄저균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등 탄저균 무기화 연구를 진행해 온 데 대해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는 <민족21> 기자의 질문에 대해 “(미국이 하고 있는 것은)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최소한’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2001년 9월 4일 <뉴욕타임스>가 “1997년 CIA가 ‘클리어비전’이라는 암호명 아래 생물무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폭탄을 개발,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소개했다.

한편 미국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이행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단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다. 생물무기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현장사찰 등을 통해 BWC 이행 여부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BWC 가맹국들은 비밀보호를 전제로 방어용 연구에 대한 연간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BWC는 예방차원의 연구를 허용하고 있는데, 미국은 자신들이 하는 것은 ‘방어용’ 목적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생화학무기 개발 의혹을 내세워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의 국가들을 ‘악마화’해 왔고, 생물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부시 독트린'을 채택한 바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군사력을 동원해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가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할 때에도 아사드 정권의 생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핵심 근거로 내세웠다. 이러한 미국이 자신들의 세균 연구는 방어용 목적이라며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비난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탄저균 실험을 하려 한 이유와 생화학전 전력을 증강하고 있는 이유,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각종 의문들에 대해 명백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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