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회는 정보와 지식이 중심이 되는 정보사회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렵·채집의 원시적 사회에서부터 농업사회를 거쳐 공업사회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공업사회를 넘어 정보와 지식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사회질서가 변화하는 정보사회로 진입하였다. 그만큼 정보와 지식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일상적인 삶이 되어버린 사회가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길거리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여도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을 펼쳐놓고 오늘의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각자가 소유한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정보 사회는 또한 우리의 정치 현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인들의 트위터는 팔로워 숫자가 수십만을 헤아릴 정도가 되었고, 일부 정치인들을 이를 자신들의 정책에 활용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정치 참여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수월하게 된 것도 정보사회가 가져다 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정보사회의 도래로 인해 모두가 꿈꾸었던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크리크스 사태에서 보듯이 정보사회는 압도적 힘을 가진 특정 집단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난 대선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잘못된 정보나 편파적 정보의 의도적 전파로 인해 민심을 왜곡시키고, 결과적으로 특정 세력에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도 심심치 않게 목도되는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을 왜곡하여 폭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정보가 현실의 정치적 힘으로 작동하거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북한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는가가 중요해졌다. 이제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올바른 정보’가 중요해진 것이다. 더욱이 북한처럼 정부의 정보 독점이 강한 대상의 경우 올바른 정보의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북한을 둘러싼 ‘이상한 정보’가 뉴스의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특히, 김정은의 ‘공포정치’ 담론이 어느새 상식처럼 확산되면서, 공포정치를 원인이자 결과로 한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도 정보 소식통 혹은 탈북자 정보망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문제 되는 것은 바로 김정은 ‘공포정치’의 부작용으로 북한의 고위급 인사의 탈북, 중간 및 하급 간부의 동요 등의 이름으로 이들의 한국 망명을 앞 다투어 보도 되고 있는 현상이다. 일부 언론은 한때 북한 김정일의 측근이었던 박재경의 망명설까지 제기하였고, 일부는 당 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간부의 망명도 보도하였다. 이들 보도를 접하면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의 상당수 간부들이 흔들리고 있고, 이로 인해 북한 체제가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어갈 것처럼 보인다.

사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탈북-망명은 정부의 확인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황장엽의 망명처럼 아예 외국에서부터 문제가 되는 사례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통일부는 ‘확인된 바 없다’라고 발표하였다. 물론, 말할 수 없는 고위급의 탈북-망명이라면 정부도 쉽게 밝힐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 보도되고 있는 박승원 상장(우리의 중장)의 경우는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공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실상은 오보로 판명되었다).

북한에 대한 정보의 습득과 언론의 보도에 대한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오보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오보 이후에 이를 바로 잡는 정정보도 역시 본 적이 없다. 정보사회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지점이 바로 ‘북한’과 관련된 지점인 것이다. 더욱이 북한과 관련된 정보는 일상의 정보와 달리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판단의 근거도 없는 독점적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조건에서 북한 정보에 대한 생산과 판단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수동적인 소비자의 위치만을 취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많은 정보’보다 ‘올바른 정보’가 더욱 중요한 지점이 바로 북한 관련 정보인 것이다. 지금 보도되고 있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정확히 말해 ‘많은 정보’에도 미치지 못하는 ‘관심끌기를 통한 충격’의 효과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도들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라 할 수 있다. 바로 김정은의 ‘공포정치’ 담론의 확산과 그 결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은폐인 것이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란 담론은 현영철 숙청-처형을 둘러싼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하였고, 어느새 김정은의 정치방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북한 정치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만능의 키워드로 동원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정부는 김정은 집권 이후 약 70여 명이 처형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과거 프랑스 혁명 이후, 지롱드 당을 몰아낸 자코뱅 당의 무차별적인 폭력정치 혹은 정적 제거 등을 표현하였던 ‘공포정치’의 담론이 오늘날 북한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 당의 로베스피에로의 공포정치는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귀결되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되풀이가 북한에서도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 북한의 고위급 인사의 탈북-망명, 중간 및 하급 간부들의 동요와 일부의 탈북 등을 통해서 과거 프랑스 공포정치의 역사적 귀결이었던 ‘테르미도르 반동’을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탈북을 했을 수도 있고, 우리 정부로 망명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중간 및 하급 간부들의 동요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던져준다. ‘공포정치 → 간부 동요 → 체제 불안’이라는 단선적 분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정보가 주어진다면 좀 더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조건에서는 구조적 분석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최근 북한 간부들의 잦은 교체와 동요의 이면에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서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정책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대안적 해석이라고 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당 및 국가 정상화를 위한 정책 실행의 과정에서 과거 세력과의 일정한 단절 혹은 과거의 문제점 등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총화와 검열을 통해 문제있는 간부와 정책들에 대한 재검토 등이 있었을 것이고, 또 일부는 선군정치 하에서 비대해진 군의 기득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의 반발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반발, 갈등 등이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현재의 숙청이나 인사교체는 그러한 과정의 하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해석이 일정한 합리성을 가진다면 앞으로 당분간 북한 간부들의 동요와 탈북, 망명 그리고 북한 내에서의 숙청은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얼마 전 중국의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왕치산 중국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병든 나무는 치료하고, 썩은 나무는 뽑아야 하지만 숲은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썩은 나무를 뽑다가 숲을 망칠 수도 있고, 썩은 나무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정보’와 그러한 정보에 기초한 ‘제대로 된 정책’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공포정치’를 만능의 열쇠로 한 외곬으로만 흐르는 정보의 생산과 분석은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