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연재를 시작하며]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반입이 뜨거운 논란이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고 이를 위한 수단에는 제한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위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을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발상이다.

세균무기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이번에 벌어진 주한미군 탄저균 논란도 미국이 어떠한 입장과 목적에서 살아있는 탄저균을 이 땅에 반입하였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탄저균 반입 사건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세균전의 나라 미국>이라는 연재를 준비하였다. / 필자 주

<차례>

1. 전염병과 전쟁
2. 일본 731부대의 세균실험
3. 6.25와 세균
4. 쥬피터 프로그램이란?
5. 끝내 터진 사고
6. 세균, 방어용인가? 공격용인가?
7. 진화하는 세균전
8. 불안한 한국사회
9. 대안은 무엇인가?

 

▲ "The Plague in Epirus" 에피루스의 역병 [출처= https://coursewikis.fas.harvard.edu/aiu18/Decameron]

전쟁은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무력으로 관철시키는 행동이다. 전쟁에는 역사적으로 인류에 커다란 피해를 끼쳐왔던 세균이 개입되었다. 세균이 규명되고, 바이러스성 질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인간은 세균을 정복하고 제압하였으며, 이를 무기화하였다.

역사적으로 세균은 침략무기로 사용되었다. 전염병은 언제나 한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전투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세균은 가장 혐오스런 공격무기이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적군과 아군도 가리지 않으므로 눈이 없는 공격무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치명적 세균의 덕을 가장 많이 보았는가? 바로 제국주의 침략세력들이었다.

세계를 휩쓴 전염병들

전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에 의해 감염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옮아가는 질환이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염병이 걸린 환자는 따로 모아놓고 사망하면 사체를 불사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역대책은 없었다. 전염병에 대한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이전, 인간이 목숨을 잃는 사망원인 중 1위는 단연코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전염병은 특히 한번 창궐하면 그 일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염병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서기 165년경에는 로마제국에서 변방이었던 시리아 지역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근무지에서 돌아오면서 이른바 안토니우스 역병이 창궐하였다고 한다. 이 역병의 정체는 오늘날 아시아와 무역 과정에서 옮은 천연두로 짐작된다는데 이 때로부터 15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어 541년부터는 이집트에서 전파된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창궐하였는데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하루에 1만 명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페스트로 추정된다.

14세기에 유럽대륙을 휩쓴 페스트는 1347년부터 4년 만에 유럽인구 2500만 명을 사망케 하였는데 이는 전 유럽인구의 1/3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페스트는 쥐벼룩에 의해 감염되는데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사망한다고 해서 흑사병이라고도 불린다.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해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유럽대륙의 노동력 감소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최근에 인류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전염병은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2500만에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추정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병영에서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병사들이 귀환하면서 스페인 독감은 미국 전체에 퍼졌다. 1918년에 총 50만 명의 미국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은 식민지 조선에도 창궐하여 대략 14만 명이 사망하였다고 추정된다.

전염병은 우리 역사에도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사서는 대체로 나라에 망조가 들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공통적으로 역병이 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염병을 줄인 말이 바로 염병이다. “이런, 염병할!”이란 말에서 볼 수 있듯 전염병은 우리 문화에서도 함께하기 싫은, 매우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통용되었다.

전쟁과 전염병

전염병이 특히 기승을 부릴 때는 바로 전쟁 상황이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보건위생은 아무래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적군이 몰려오는 위급한 상황인데 물을 끓여 마실 시간은 없다. 전사한 적군을 땅에 묻어 줄 여유도 없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에서 빨래와 샤워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싸우는 것은 21세기 현대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고대와 중세기, 근대의 전쟁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전쟁터에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세균이 증식하고 이들이 군인들의 신체를 감염시키는 것은 다반사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에 의해 전쟁이 좌우되었던 사례는 기원전 430년경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있었다. 당시 아테네가 이끌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끌던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싸움이 한창이었는데 기원전 430년과 429년, 427년에 걸쳐 아테네에서 역병이 돌았고 이 역병으로 당시 아테네 군인과 민간인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역병으로 약해진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패하게 된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환자의 증상에 미루어볼 때 당시 역병은 장티푸스였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전쟁과정에서 전염병은 때로는 교전보다 훨씬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 대표적 전염병이 바로 티푸스이다. 티푸스는 벌레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리케차에 의해 감염되는데 바로 이와 쥐벼룩, 빈대 등에 의한 감염이다. 온 몸에 붉은 점이 나타나는 발진티푸스가 가장 흔한 병종인데 머리를 감지 못해 생기는 이와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쥐에 의해 일파만파로 감염되었다.

1489년, 유럽 스페인에서 무슬림을 몰아낼 당시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는 마지막으로 항거하는 무슬림에 대한 그리스도교도들의 최후의 공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리스도교도 진영에 티푸스가 창궐했고 이로 인해 1만 7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퇴각길에 올랐을 때, 정작 프랑스 군대를 전멸시킨 것은 바그라티온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도 있었겠지만 주된 요인은 동장군과 더불어 프랑스 군대 내에서 만연했던 티푸스였다.

이런 티푸스는 포로수용소와 같이 위생시설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창궐하곤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였던 1918년에서 1922년 사이, 티푸스는 300만 명의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하고 2차 대전 당시 유태인들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티푸스에 의해 죽어갔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유럽인들의 세균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건너 온 전염병에 의해 인디언의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예로부터 대규모 전염병이 기록되지 않았는데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 들어가면서 대규모 전염병이 줄을 이었다.

사실 무기의 파괴력이 극대화되지 않은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제 아무리 발군의 전투력을 보인다 하더라도 수십만, 백만에 육박하는 인디언을 모두 도륙하고 정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518년 멕시코에 상륙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휘하의 부하는 고작 80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3년 후 인구 30만 명의 도시 테노츠티틀란을 침공했을 때에는 전투가 아니라 그들이 옮긴 천연두에 의해 무려 15만 명의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카나리 군도의 전 인구가 천연두로 전멸했으며, 히스파뇰라에서는 원주민의 절반이 천연두로 죽었다고 한다.

호주지역의 원주민들도 영국인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 균에 원주민 중 50%가 죽었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이 있는 북미대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북미대륙의 뉴잉글랜드 지역에 유럽인들이 정착하였을 때에는 인디언은 백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함께 건너온 각종 병원균들에게 인디언족들은 전혀 무방비상태였고 전염병의 지속적인 창궐로 인디언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고 한다.

북미대륙 전체에 걸쳐 1000만 명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인디언들이 오늘날 수십만 명에 불과한 채로 미국정부가 규정한 보호구역에 사실상 갇히게 된 것도 미국이 자행한 수많은 인디언 토벌정책도 원인이겠지만 기본은 유럽인들이 안고 들어온 병원균에 의한 감염과, 또 하나의 원인은 인디언들의 주된 식량원천이었던 아메리카 들소를 백인들이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것이었다.

식량원천을 없애고 역병을 계속 퍼뜨리니 인디언들이 남아날 재간이 없었다. 살아남은 인디언에게는 이주를 명령하고, 저항하는 인디언은 도륙하였다. 지구상의 한 대륙에서 인디언이라는 인종이 사실상 멸종하게 된 데에는 전염병이 하나의 커다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백신 덕택에 무기로 연구된 세균

인간이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대응한 첫 사례는 1798년 제너가 종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한 것이다. 당시 제너는 종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추적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종두로부터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얻어 접종하였으며 백신을 접종한 아이는 천연두를 접종해도 발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나아가 파스퇴르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병원균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밝혔다. 각종 발효식품에 파스퇴르란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가 그가 이 업적으로 지금까지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1885년, 광견병 병원균을 다른 토끼에게 수차례 감염시켜 그 감염력을 현저히 떨어트린 후에 사람에게 주사하여 광견병을 치료하였다. 그는 1880년 무렵에 탄저균을 연구하기도 하였는데, 오늘날처럼 세균무기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간에게 치명적인 탄저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파스퇴르가 세균성 전염병의 정체를 완전히 규명하고 백신으로 이를 퇴치한 이후로 전염병은 우리에게 절망적인 질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암과 뇌졸중 같은 병을 중증질환으로 두려워하지 장티푸스, 콜레라, 결핵에 감염되었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초기 미생물학자들의 연구 덕택이다.

이제 인간이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자, 인간은 전쟁무기로 세균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 경우가 일제 관동군 휘하 731부대가 벌였던 끔찍한 세균전 실험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료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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