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25일 옥인학당 강좌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속성입니다. 연대의식, 민족수호의지 이것은 대체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발전지향성’은 아마 새로운 개념일 겁니다.”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25일 오후 7시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옥인학당 6월 강좌에서 민족주의의 3대 속성으로 연대의식과 민족수호의지, 그리고 발전지향성을 들고 발전지향성에 방점을 찍었다.

실크로드학을 개척하면서 문명교류론을 정립해온 정수일 소장은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을 주제로 강연에 나서 민족주의의 속성 중 ‘발전지향성’을 “우리 민족을 발전시키고 ‘남보다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노력하는 속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서울 월드컵 당시 전국민적 응원열기를 예시하며 “누구의 주장처럼 우리 민족이 가진 한의 폭발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의 민족주의의 발현, 발산”이라며 “우리가 남보다 강해야 된다, 잘 살아야 된다는 발전지향성에서 나온 자연적인 민족 감정”이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개방, 교류, 복지, 국제연대’ 등을 민족주의의 발전지향성의 내용이라고 정리하고 “역사상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자기 민족의 발전, 무궁 번영을 위해서 자기를 바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족주의는 민족 구성원 간의 연대의식과 민족수호의지 및 발전지향을 추구하는 민족의 이념적 표상으로서 민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체화된 의식구조이며 구체적 생활모습”이라고 개념정의하고 “민족주의는 역사와 생존의 보편가치이고 보편적 진보주의”라고 덧붙였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여러 학자나 정치가들이 규정한 바 있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 규정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 개념 규정과 민족주의의 3대 속성 제시는 향후 관련 논의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민족주의는 한반도 전체 대중의 정서가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민족주의 경험이 일천하고 당초부터 철학적 내용이 빈약한 서구에서는 개념 정립과 대사상가의 배출이 불가능하다”며 한반도에서 민족주의 관련 논의의 진전에 기대감을 표했다.

▲ 정수일 소장은 민족주의 개념규정과 민족주의의 3대 속성을 제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근 국내에서 등장한 ‘민족주의 단계론’에 대해 그는 “근현대에만 국한시켜 단계화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하면서도 통상 최후 단계로 설정하는 ‘통일적 민족국가’ 이후에도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일부 논지는 민족주의의 연구의 새로운 동향일 수 있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일부 진보진영에서 ‘민족주의를 넘어선 사람이 진보주의자이고, 민족주의를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은 진부한 민족주의자’라는 식으로 규정하는데 대해 “진보라는 개념은 전개양상이 시대에 따라서 늘 가변적이지만, 민족주의는 모든 진보사상과 이념에 편재하는 보편적 이념”이라며 “민족주의는 보편적 진보주의”라고 논박했다.

또한 서구에서는 대체로 민족주의를 보수로 보고 국제주의를 진보로 보는 통설과 달리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는 서로 대치관계가 아니라 상보상조(相補相助)적 관계이고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진정한 국제주의자이고,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군 제사는 반계급론’이라는 류의 주장에 대해서도 “신화는 역사의 기억이고, 역사의 기억은 민족구성의 객관적 요소의 하나”라며 “아주 유치한 사이비 계급론”이라고 일축했다. “계급은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사회적 분화현상으로 민족을 떠난 계급이란 존재할 수 없고, 계급은 변해도 민족은 연속되며, 계급과 민족은 상보상조적 관계”라는 것.

아울러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나 배타주의 등으로 백안시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민족주의에는 본질적으로 부정적 면이 있을 수 없고, 있다면 미숙한 민족주의자가 실천 과정에서 노정시킨 부정적인 면, 일탈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더욱 절실하다며 최근 ‘평화운동’이 주창되고 있는데 대해 “평화는 한 시류에 불과하다.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고 민족통일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차병직 변호사의 사회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문명교류에 천착하고 있는 학자로서 민족과 민족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중국 외교부 근무 시절 조국으로 돌아가야겠다며 중국 관리들과 논쟁을 벌여 1963년 ‘환국’하게 되는 과정에서 문제의식이 본격화 됐다고 밝혔다.

정수일 소장은 옥중서한집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창비, 2004)에서 “지성인으로서 시대와 역사 앞에 지닌 민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환국을 신청하면서 중국측에 떳떳이 밝혔던 것”이라고 회고하고 석달 동안 중국 국무원 및 외교부 고위당직자들과 10여차례 면담을 거쳐 진의(陳毅) 제1부총리 겸 외교부장과 최후담판에서 합법적으로 중국국적을 탈퇴하고 환국 승인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문명이라는 것도 민족이 만든다. 씨족, 부족은 만들 수 없다”고 전제하고, 문명교류 연구자로서 민족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에 대해 “문명은 민족에 의해서 교류된다”고 제시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정수일 선생의 민족주의론은 철저히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출발했다”며 “정수일 선생의 문명교류론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문명교류론이라는 점에서 특색이 있는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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