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 11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6.15 15주년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지난 2년 반동안 상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구체적 내용 없이 불량품이라 판단한 MB정부의 강경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정책 수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시기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6.15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과거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실제로 기획한 최대석 박사가 인수위원회에서 낙마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에 북한 핵실험이 있었다”며 “정부가 막 출범하는 시기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주도하고 내용을 채워야 했던 주도 세력이 낙마한 상황에 안보 위기가 벌어진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지난 2년 반동안 박근혜 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여권과 경제계 주요 인사, 거대 보수 언론 일부도 5.24 조치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며 “결국 5.24 조치를 능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 정부가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대북 정책을 수행하며 설정한 목표들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즉 목표 대비 달성률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과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밝혔으면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나아가 “어쨌든 5.24 조치를 우회해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길은 없다”며 “결국 5.24 해제와 대화와 협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줬으면 한다”는 말속에서는 현 정부에서는 대북정책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도 묻어났다.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통치스타일에 대해 “강경한 언술은 아버지 시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남북한의 실제 무력 충돌 자체는 상당히 자제되고 있다”며 “북한이 최근 표방하는 약간의 투명성, 혹은 다원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통상 김정은 제1위원장 등장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더 커진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위협적 언술을 제외하면 실제로 서해상 충돌 등 군사적 무력 충돌은 자제되고 있다는  것.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라며 북한의 경제개발구 추진 전략에 주목하고 “북한 노동자들이 과거 중국에 가서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일반 호텔에 복무하는 등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중관계에 관한 단행본을 저술한 바 있는 그는 “북중관계는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중앙 차원의 정치교류와 지방정부 차원의 경제교류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제시하고 “이중구조 속에서 북중관계는 국제 정세의 영향을 일정 수준 받겠지만 민간과 지방 차원의 교류가 북한이 계속 일정하게 성장하며 발전하는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전망과 관련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4년차에 접어들기 때문에 슬슬 정상 외교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며, “중국 지도부 역시 올해 안에는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을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연내 북중 정상회담설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올 가을에 김정은이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대외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별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전망하면서도 “철저히 내 주관에 입각한 관점이라, 북한의 진법은 다를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통일부 장관 재직 당시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지만 2006년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정부는 쌀차관 제공 중단 등의 대응조치로 맞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바 있다.

그는 “북한은 여전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서방은 모럴 해저드(moral hezard)에 빠져 북한이 핵 보유 능력을 강화하는 모든 행위를 방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6자회담의 즉각적인 재개를 향해 정부는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야당에 대해서도 “야당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현안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 길을 잃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남북문제에 대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두 마디 촌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패러다임을 다시 세워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것은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 평화, 안정과 남북공동번영을 위한 우리의 의무에 대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면서도 “진보, 보수라는 이름으로 대북정책을 갈라놓은 양 진영의 기득권층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고민도 내비쳤다.

“낙망하지 말고 상식과 합리성의 눈으로 통일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다음은 이종석 수석연구위원과 지난 11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

▲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2006년 2월 14일 취임 후 첫 공개브리핑을 갖고 '남북간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증진과 경제협력 확대'를 정책 비젼으로 제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정부와 민간 모두 남북공동행사와 교류를 많이 기획했다. 하지만 최근 6.15 공동행사가 무산됐고, 또 8.15 공동행사 역시 현재 전망이 밝지 않다. 현 상황에 대한 전망은?

■ 이종석 전 장관 : 광복 70년 자체도 중요하지만 6.15와 연계하자면 분단 70년이기도 하다. 때문에 갈등과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와 협력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약속했던 6.15 정상회담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더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정치관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현재는 종속된 상황이다. 예컨대 정책 집행자들, 혹은 정권이 남북문제를 당국 간 대화와 연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면 민간교류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한국 정부의 현주소에 비춰보면 민간운동이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남북 간 당국 대화가 막혀있고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공동행사 개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관계 악화는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으로 누적되고 침체된 현상으로, 민간단체들이 장기적으로 형성된 장벽 사이 틈을 뚫고 대화를 통한 공동행사 개최를 계획한 것 같다. 그러나 틈새를 찾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겠는가.

총체적인 남북관계는 악화됐고, 정부 대화와 민간 대화를 분리하지 않고 정부가 모든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현 정부와, 남북관계에서 유사한 안목을 가진 김정은 정권 사이에 이해와 합의가 들어설 공간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미 예상된 결과가 아니었다 싶다.

□ 결국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지난 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 약간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임기 중반인 현재까지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평가하나?

■ 박근혜 정부가 처음 들어서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운 것은 일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포용정책을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포용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 두 정책의 단점을 보완하며 새로운 안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자면, 어느 매장을 인수한 새 주인이 과거 매장에서 판매하던 상품들을 불량품이라고 판단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매장을 개업하기 전에 대대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든다고 전면광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점을 개장하고 보니 전 주인이 팔던 불량 재고품을 파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인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 초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띄고 남북관계를 실제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은 개략적인 틀인데, 정부 출범 초기 인수위원회에서 틀 안의 세부 내용을 채워야 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실제로 기획한 최대석 박사가 인수위원회에서 낙마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월에 북한 핵실험이 있었다. 정부가 막 출범하는 시기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주도하고 내용을 채워야 했던 주도 세력이 낙마한 상황에 안보 위기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구체적 내용은 박 대통령이 후보 당시 선거에서 공약했던 대로 채운 대신, 당시 일어난 정책 공백으로 인해 과거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2년 반동안 상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구체적 내용 없이 불량품이라 판단한 MB정부의 강경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정책 수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그같은 분석에 따르면 특별한 정책 변화 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이나 조언이 있다면?

■ 현 상황에서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부터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기획했던 학계 인사들의 상당수가 5.24 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년 반동안 박근혜 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여권과 경제계 주요 인사, 거대 보수 언론 일부도 5.24 조치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5.24 조치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내부에서도 팽배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5.24 조치를 능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 정부가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언을 하자면 우선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대북 정책을 수행하며 설정한 목표들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즉 목표 대비 달성률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도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정부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신뢰 프로세스의 작동을 통한 신뢰 조성과 관계 개선, 그리고 북한의 모험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에 대한 징벌적 교훈을 통한 교화 등이었을 것이다.

우선 지난 2년 반동안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남북관계는 더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더 진전됐다고 보는 시각도 얼마 없는 것 같다. 5.24 조치의 계승 등의 정책을 통해 북한을 압박한 결과가 북한의 반성과 양보를 통해 드러나야 하건만, 북한은 도리어 미동도 없이 북중관계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묵표 대비 달성 여부에 대한 냉철한 자평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밝혔으면 한다. 남북관계를 단순히 북한의 공산주의 공격을 억제하는 안보 차원에서 보고 있는 건지.

대통령께서 통일대박론을 이야기하셨고 통일준비위원회 역시 흡수통일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입장을 표명했다. 흡수통일에 대한 일각의 지적에 계속 부정하며 동시에 통일대박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곧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통해 통일을 실현하고 경제적인 대박, 한국의 경제적인 도약을 또한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국민들에게 이번 정부가 남북관계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이야기한 것이다.

다음 문제는 안보인데 우리 수준에서 제재와 압박 없이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를 한다고 안보를 이루지 못하는 것 역시 아니고.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계에 다다른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열고 통일을 향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통일대박론을 통해 새삼 공표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정부가 한 번도 대외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흡수통일을 부정하며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통일대박을 이루겠다는 것인가?라는 문제는 일차방정식에 불과하다. 1+2+ x=10이라는 식이 있으면, x는 당연히 7이다. 이와 같이 ‘흡수통일 부정+남북관계 개선+x=통일대박’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 x는 당연히 남북협력이라는 답은 자명하다.

이런 식으로 남북관계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명료하게 하고, 그걸 통해 정부가 실행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하면 결국 5.24 해제와 대화와 협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어쨌든 5.24 조치를 우회해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길은 없다.

결국 현재까지의 정부 정책이 실패했다면 바꿔야 한다. 현재 시행 중인 제재와 압박은 선악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그 길을 폐기하고 새로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줬으면 한다.

“5.24 조치를 능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2006년 7월 서울에서 열린 제19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권호웅 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고 북한은 그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누가 대통령을 설득을 할 수 있다고 보나?

■ 내부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참모들이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대통령에게 설득할 수 있는 길이 따로 있겠는가. 현재 정책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솔직히 보고하는 수 밖에 없다.

□ 그렇게 솔직하게 보고와 제안을 할 만한 관료 집단은 없을 것 같다.

■ 단순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결과를 바람직한 대북정책 흐름으로 치환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내가 10년 전에 얘기했을 때보다 오늘날 더 현실성이 있다.

10년 전에는 두 개 진영으로 나눠져 한 진영은 내게 동의했지만 보수로 표현되는 다른 집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권 여당이나 보수 인사들 중 상당수 역시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삼면만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면, 이제 봉쇄된 한 면을 뚫고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가 방치하고 유예하고 있다가 잡는다고 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심상치 않다. 중국과 북한의 경제가 계속 구조적인 결합 관계를 형성 중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계속 방치하다간 통일 국가가 만들어 질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또한 남북협력을 통해 그렇게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그 기회의 상당수를 이미 중국이 선점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전처럼 여유를 부릴 때는 지났다.

□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섰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도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정권의 자기 정체성을 대체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한다. 김정은 지도부가 이끄는 북한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체제에 비해 상당히 특색이 있다. 물론 핵 실험 등으로 도발성이나 호전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리고 장성택이나 최근 현영철 숙청을 통해서 김정은 리더십의 무자비함이 언론에 의해 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측면들이 김정은 리더십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불안정성에 있는 건지, 김정은 리더십의 전형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권력을 공고히 다지는 과정이지만, 분명한 것은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에 비해 차별화된 요소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고 이것들이 향후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김정은 정권 이래 강경한 언술은 아버지 시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남북한의 실제 무력 충돌 자체는 상당히 자제되고 있다. 북한이 최근 표방하는 약간의 투명성, 혹은 다원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다. 김정은 정권은 이미 본격적으로 시장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김정일이 사망하기 직전 2010~2011년 2년 동안 중국 지도부를 세 번 만나 북중 경제 관계를 단순 지원 관계에서 구조적인 연결 관계로 변모시키는데 합의를 보았다. 아마 후계자인 김정은 시대에는 전면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는 결심을 한 것 같다.

그리고 2013~2014년 사이에 경제특구를 제외하고 19개의 경제개발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경제개발구는 중국과 서방을 포함한 외국 자본과 기업들의 투자와 관광객들의 방문에 지정 목적이 있다. 북한은 이미 나진, 황금평 등 중앙과 지방 모두 특구와 개발구를 만들어 전국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작년 11월 즈음 중국 접격지역에 방문했을 때 양강도 혜산에 이미 중국의 중소기업이 입주해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이 과거 중국에 가서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일반 호텔에 복무하는 등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

농업 역시 변혁을 거쳤다. 북한의 변화를 논할 때 정치도 중요한 요소지만 경제 또한 경시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개방을 할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바와 달리 북한의 개방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이후 북한과 남북관계의 미래에 끼칠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북한과 경제협력을 논하고 서해상 NLL(북방한계선)에 대해 협의하자고 요청하려면 굉장히 애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말을 하면 북한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

북한은 이미 개방구조를 가지고 있고, NLL과 관련해 가장 예민한 연평도 부근 최전선인 황해남도 강령, 북한의 해군 8전대가 있는 강령을 국제녹색경제개발구로 지정하고 중앙 차원의 개발을 발표했다.

즉, NLL의 평화수역화에 대해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면 대화의 여지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북한 내부를 관찰했을 때 정치 등 불안한 요소들이 많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남북 경제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창이 열려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북중관계는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 북한과 북중관계 전문가인 이종석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통치스타일과 북중관계에 관계의 이중성 등에 대해 자신만의 논지를 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 북중관계와 북러관계 등 국제관계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최근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중관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냉랭하다는 말도 있고. 최근 들어서는 북러관계도 부상하고 있고, 또 가끔 북일관계를 활용하기도 한다. 북중관계를 어떻게 보나?

■ 북러관계가 북중관계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중교역이나 경제협력의 규모는 북러교역이나 정치관계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0년 천안함 사태가 난 직후부터 2011년 8월까지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 김정일과 후진타오, 또 김정일과 원자바오 사이 세 차례의 회담이 있었다.

2009년 북핵실험이 있었고 2010년에 천안함 사태, 그리고 5.24 조치가 있었지만 중국지도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공개적으로는 지지했지만 2009년 10월에는 원자바오가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중 경제협력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보았다.

결국 북중관계는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부 수준의 북중관계, 또 하나는 민간 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경제관계다. 우리는 맨 위의 정부 당국 관계만 바라본다. 하지만 지방정부나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또한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모실 당시부터 전 세계 지하자원을 빨아들이는 하마같은 존재였다. 중국의 자원에 대한 수요와 인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공급능력이 맞닿아 중국의 동북3성 등과 북한과의 구조적인 결착 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 핵 실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이해관계는 항상성을 지닌다.

아무리 중국 지방정부와의 교류라고 해도 북한 전체 인구가 2,400만 명인데 반해 길림성 인구가 2,400만 명, 흑룡강성은 3,500만 명에 달한다. 국가 단위에 맞먹는 엄청난 교류다.

이보다 더 큰 틀은 중앙 당국의 협력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등 대북 제재에 영향을 받고 시진핑 역시 북한에 싫은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언론은 이 싫은 소리에 초점을 맞춰 북한의 붕괴를 예측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구조 덕분에 중앙 당국 간 사이가 나빠져도 지방 차원의 경제 교류는 지속된다.

중국은 국제 사회의 G2로서 위상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언술 수준에서 제재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북중관계를 재단할 수는 없다. 이중구조 속에서 북중관계는 국제 정세의 영향을 일정 수준 받겠지만 민간과 지방 차원의 교류가 북한이 계속 일정하게 성장하며 발전하는 원천이다.

□ 최근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 우선 중국 중앙정부에서 원유 공급을 끊었다고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이 없다. 그리고 예전에는 중국의 대북 원조가 북한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북중경제의 구조적 연결성이 강화돼 북중 경협과 교역만으로도 북한에 유입되는 달러 규모가 상당해 원유 구입이 예전만큼 재정적 부담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에 진출한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임금은 백 달러도 안 되지만 중국에 진출한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은 훨씬 높다. 비록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북한 노동자가 최소 5만 명이라고 하고, 아프리카, 시베리아 등에도 진출했기 때문에 북한의 외화 보유 규모나 경제 규모는 예전보다 훨씬 뛰어나다.

중국 정부가 정말 원유 파이프를 걸어 잠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이 북한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2009년 당시 북한 내 휴대폰 수가 불과 몇 천, 몇 만 대에 불과했을 텐데 재작년에 이미 250만 대를 돌파했다고 한다. 우리의 비관적인 평가와 무관하게 북한의 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즉, 북한과 중국과의 교역이 생각보다 북한 경제에 상당한 지탱력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 흔히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평가할 때 정상 회담을 떠올린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고 집권 이래 현재까지 북중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평가는?

■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4년차에 접어들기 때문에 슬슬 정상 외교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 역시 올해 안에는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을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당시 북중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북러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질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김정은의 불참이 다리 통풍 때문인지,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 때문인지, 전략적 고려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해 정도에 북중 정상회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다.

그리고 6자회담에 대해 무조건 북한의 더 긍정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것은 적절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6자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무조건 북한에 전가할 수는 없다. 북한은 분명히 과거 참석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북 4차 핵실험, “별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 지난달 27일 한반도평화포럼 특별좌담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이종석 수석연구위원. 왼쪽부터 이종석 수석연구위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올해는 북한에게 정권 수립 70돌이자 당 창건 70주년 등으로 중요한 해다. 당 대회를 여느냐, 인공위성을 쏘느냐, 핵실험을 하느냐 등 다양한 시나리오와 관측들이 나왔는데, 당 창건 기념일 행사를 계기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예상해 본다면?

■ 북한의 2006, 2009, 2013년 핵 실험 과정을 보면, 공통점은 단순히 핵 실험만 강행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2006년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고, 2009년과 2013년은 로켓 발사를 했다. 두 단계의 단계적 행동을 취한 것이다.

북한은 핵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을 계산할 것이다. 우선 2006년 핵 실험은 BDA(방코델타아시아)라는 특별한 국면에서 미국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했다. 2013년 실험은 김정은의 체제 정통성 확립과,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 사회의 규탄에 대한 반응 등이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올 가을에 김정은이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대외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별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철저히 내 주관에 입각한 관점이라, 북한의 진법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3차 핵 실험이 있었던 2013년 1월 당시 북한은 경제 발전에 대한 외부적 공표가 없었다. 그리고 2013년 5월 경제개발구 계획을 발표했다. 그 언저리에 개성공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김정은은 개성 단 내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를 명령했다가 이내 철회하고 저자세를 보였다.

북한이 자세를 낮춘 유일한 이유는 경제개발구를 만들어 해외자본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타국 자본가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어느 자본가가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소환하는 사회에 투자하고 싶어할까.

하지만 당시 정부는 북한의 시그널을 오독해 “우리가 강경하게 대응하니 북한이 무릎을 꿇었다!”고 해석해버렸다. 이후 견지한 강경대북정책으로 인해 이산가족 상봉도 무산되고 남북관계의 진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13년 5월에 경제개발구법을 발의하고 19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한 상황에서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북한 경제가 입을 타격이 막대할 것임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타당한 수준의 외부의 압박이나 갈등이 발생했으면 모를까, 굳이 핵 실험을 진행할 동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미국은 관성적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기획할 수 밖에 없고, 중국은 또 비판 성명을 내야 한다.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북한이 현재 갈망하는 경제협력과 관광객 유치에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 실험을 한다면, 국제 사회가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취해야 하건만 모두가 실제적으로 핵 억제와는 무관한 압박과 조치만을 계속하고 있다. 그 뒤에서 북한은 여전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서방은 모럴 해저드(moral hezard)에 빠져 북한이 핵 보유 능력을 강화하는 모든 행위를 방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국민과 미국 국민이 왼편에, 북한이 오른편에 있고 정부가 그 가운데 서있다고 가정하자. 정부와 북한의 거리는 2m지만 정부는 1.5m짜리 채찍을 휘두른다. 정부 뒤에 숨은 국민들은 북한이 채찍에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없지만 이 형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악화되고 북한 핵 문제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으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북한만 비난할 문제는 아닌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 모두 북한 문제에 대해 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다. 우리는 정신 차리고 남북문제와 북핵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남북이 대화를 제기하려면 진정성을 보여야 하고, 6자회담 등의 창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논리조차 우리 사회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말 안타깝고 6자회담의 즉각적인 재개를 향해 정부는 노력해야 한다.

□ 야당 역시 충실한 역할을 못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대선후보로서 NLL 문제에 대처한 것이나 최근 천안함 사건 관련 발언 등을 통해 볼 때 과연 제 1야당이 북한 문제나 외교 문제에 있어 현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 지난달 26일 ‘한반도평화포럼 특별좌담’ 당시 동일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원로들께서 충분히 답해주지 않았다.

우리 사회처럼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진행되면서도 이념적인 이데올로기 지향은 점점 좁아지는 기형적 구조에서 야당이라고 해도 남북문제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러운 건 이해를 한다. 그리고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 정치적 언술을 써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경과하며 통일안보분야, 특히 대북정책 등에 있어 국민정부나 참여정부에서 논란이 되었던 정책들이 사실 합리적이고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인식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즉, 야당은 10년 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 운영과 남북관계 조율을 해 본 경험과 유산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 남북문제에 대한 대안과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원천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천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그래도 전직 장관들과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자문을 구했는데, 최근 3,4년은 그러한 관례도 더 이상 전무하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관계는 파멸적 관계로 치닫고 있지만 야당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본인들이 갖고 있는 강점과 유산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야당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북한 문제를 바라보자”

▲ 이종석 수석연구위원은 대북 문제에 있어서 '상식'과 '합리'를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 문재인 대표도 있고, 박지원 의원도 있고, 전직 장관들로 구성된 한반도평화포럼이라는 든든한 우군도 존재하지 않나. 한 시기를 실제로 책임졌던 인사들인데.

■ 하지만 한반도평화포럼이 나서서 야당을 끌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판단하고 건설적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야당이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야당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현안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 길을 잃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굉장히 불행한 일이고 과연 이래서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야당에 남북관계와 대북 정책에 대한 대오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여러분 있고, 문재인 대표와도 함께 일한 분들 아닌가?

■ 문 대표를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여하튼 남북문제에 대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두 마디 촌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다.

이미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은 우리들의 경험의 범위 내에서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야당이 이와 같은 대처를 제대로 했다는 이미지가 지금 우리 머리 속에 없다.

□ 우리 사회가 계속 보수화와 반북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또한 향후 진로나 또는 주력하려고 하는 방향이 있다면?

■ 정말 가슴아픈 것은 북한 문제에 대한 극단적으로 상반된 생각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면 수반되는 이득이 엄청나다고 주장하면서도 북한과 흡수통일을 하면 통일 비용이 엄청나다는 우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혼란스런 사고나, 북한 이야기만 나와도 질색하는 혐오 증세 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에게 애증이 혼재하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사회 속 남북관계를 통해 모색하는 희망과 열망이 과거에 비해 점점 식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여권이 통일회의론을 만들고, 분단지향적인 정책을 입안하며 북한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 종편이 자극적으로 북한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여권이 북한 혐오증을 양산하기 위해 특별히 애를 쓰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에 대한 반감이 혼재하곤 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진영을 나누고 대북정책과 북한에 대한 시각을 모두 분리한다. 내가 대중 강연을 하면 누군가는 동의하며 박수를 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철저히 반대하기도 한다. 진영을 분리해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풍토가 우리 가운데 뿌리내린 것 같다.

대북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남북관계는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종종 대중 강연 도중 ‘북한 정권이 진보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북한 정권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어떻게 3대 세습하는 정권이 진보적인가. 남한의 수구 정권보다 더 수구적이다. 이러니 수구적인 북한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연대하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란 것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북한 문제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공동번영, 그리고 민족의 통일. 이게 무슨 보수와 진보가 갈릴 문제인가. 상식적으로 우리가 잘 살려면 함께 가야하는 길이다.

□ 본래 민족이나 통일은 보수가 표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사실 세인들이 나를 진보 진영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계급 문제에 큰 관심도 없을 뿐더러, 대한민국의 자주를 강조하다가 미국에게 한 소리 들을 정도로 자주, 주권을 강조했다. 자주, 주권은 따지고 보면 보수가 더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나를 진보로 보는 일각의 시선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을 다시 세워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것은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 평화, 안정과 남북공동번영을 위한 우리의 의무에 대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남북대화에 대해서도 북한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남한만 비판하는 인사들도 있다. 이들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끌어안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합리를 바탕으로 공동선의 성취를 향해 재구성돼야 한다.

진보, 보수라는 이름으로 대북정책을 갈라놓은 양 진영의 기득권층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낙망하지 말고 상식과 합리성의 눈으로 통일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

생각의 전환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도 이제 진영논리로 편을 가르는 관성에서 벗어나 사안을 바라보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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