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5월 13일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북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4월 30일께 “국가반역죄를 저질러 고사총으로 공개처형되었다”고 공개했다. 이후 일부 국내 언론과 네티즌들은 김정은을 ‘미치광이’, ‘사이코패스(Psychopath): 폭력성을 동반하는 이상 심리 소유자’라고 비난하였다.

과연 김정은은 ‘사이코패스’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체제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북한 체제의 특성은 모든 권력이 수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이를 견제할 개인이나 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수령에게 도전한다면 그는 ‘3족’이 멸종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북한 내에 드러내놓고 수령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북한이 정권 초기부터 이러한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귀국한 김일성은 많은 정치적 도전을 받았다. 그는 나이가 어렸고 해외에서 민족해방 투쟁을 했기 때문에 국내에 권력기반이 거의 없었다.

김일성은 제반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국내파 현준혁 및 민족주의자 조만식 제거, 6.25 전쟁 중 허가이.무정.이승엽 등 숙청, 전쟁 후 박헌영 처형, 1956년 8월 소위 ‘8월 종파사건’을 통한 최창익.박창옥.윤공흠 등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1967년 김일성의 핵심 실세들인 박금철.이효순 등 ‘갑산파’ 숙청 등등이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후 북한 내에서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파벌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1967년 이후 북한은 어떤 세력도 정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수령을 절대화하였다. 누구든 ‘수령권’에 도전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논리는 김정일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김일성=김정일’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졌고 김정일에게 도전하는 것은 곧 김일성에게 도전하는 것이므로 ‘천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수령후계자론’을 앞세워 1994년 7월 김일성 사후 권력 강화를 위해 1997년 ‘심화조 사건’을 만들어 서관히.문성술.서윤석.채문덕 등 고위관료들을 숙청하였다. 이것은 김정일이 권력 강화를 위해 철저히 ‘기획한’ 사건이었다.

‘심화조 사건’을 ‘기획된 것’으로 보는 이유는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 관료는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도 최고 권력에 도전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정권에 의해 ‘기획’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수령과 그의 ‘아바타(Avatar)들’은 정권 도전이 아니라 ‘불쾌한 표정’까지도 ‘불경죄’로 몰아 처절하게 숙청하였다. 도전자가 하나도 없는 ‘무균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정권이 종식되기 전까지 수 많은 총리, 당․정․군 고위 관료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기획사정’당하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공식 등장한 ‘3대 수령’ 김정은도 ‘수령왕국’ 건설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기획사정’을 시작하였다. 김정은은 등장 이후 리영호 군총참모장 숙청(2012.7), 장성택 당 행정부장 처형(2013.12), 장령(장군)들에 대한 계급 강등.복위의 반복(2012.2-2014.12),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처형(2015.4) 등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김일성 정권 이후 권력 절대화를 위한 ‘기획숙청’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였다. 김정은이 ‘미쳐서’ 갑작스럽게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닌 것이다.

2012년 4월 6일 김정은은 군최고사령관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당중앙위원회 비서 및 부장급 간부)들과 만나 담화를 나눴다. 이날 김정은은 민심을 떠난 일심단결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민심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현상들과 강한 투쟁을 벌일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인민을 위하지 않는 일꾼(간부)’에 대해 ‘숙청’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공개연설에서도 김정은은 간부들이 “신발창이 닳도록(필자 강조) 뛰고 또 뛰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태한 관료들에 대한 척결을 예고한 것이다.

김정은의 발언은 구두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5월 9일 김정은은 평양의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작심한 듯 관리일꾼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5월 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이 직접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뽑은 후 “만경대유희장은 인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방심해 두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꾼, 인민들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일꾼들이 천 만명이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타한 후 “이 기회에 (일꾼들의)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고 일갈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과 행보는 고질화된 간부의 부정부패, 관료화․귀족화된 간부들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모든 간부들이 “일군(일꾼)을 위하여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일군(일꾼)이 있다”는 사상관점을 가지고 “낡은 사상관점과 뒤떨어진 사업기풍, 일본새(작업태도)와 단호히 결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더 나아가 6월 2일 <로동신문>은 정론을 통해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의 관료화․귀족화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형식주의자’, ‘책상주의자’, ‘기술실무주의자’ 등도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됐다.

김정은 정권 창건 1등 공신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숙청한 이유는 ‘반당.종파’였다. 북한 법에 의한다면 ‘반당.종파’는 당연히 사형이고 ‘3족’이 멸종당하는 죄목이다. 만일 장성택이 정말 ‘반당.종파’를 했다면 본인은 물론 처족까지 몰살당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장성택의 처인 김경희는 아직 살아(국정원 확인)있다. 이것은 장성택이 김정은 권력에 도전하는 ‘반당.종파’를 한 것이 아니라 권력남용이나 월권, 정책실패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획숙청’당한 것임을 증명해 준다.

지난 2015년 4월 30일 숙청당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반당.종파’가 아닌 단순한 불만이나 정책실패, ‘교시 불이행’ 등의 죄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은 군총참모장과는 달리 큰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민군에 대한 후방 보급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현영철 무력부장은 김정은의 “인민군에 대한 보급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 인민무력부는 북한의 각 부서 중 돈이 가장 많은 부서이다. 그러나 많은 이권 사업이 노동당으로 이관된 상황에서 김정은의 과도한 지시를 이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토로했을 수 있고 그것이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과장되어 보고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2014년 11월, 2015년 4월 2회에 걸쳐 러시아 특사로 방문하여 김정은의 북러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것 또한 ‘교시불이행’으로 되었을 것이고 김정은의 ‘읍참마속식’ 처벌의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고위관료 처형과 관련하여 김정은은 공식 취임 이전부터 관료들의 무사안일, 탁상공론, ‘양봉음위’, 복지부동 등을 척결하지 않고는 권력 강화 및 안정이 어렵고, 인민경제 향상을 통한 권력 정당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계획적으로’ 간부 숙청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정은의 정치적 행보를 아무 개념없이 ‘미쳐서’ 무조건 사람을 죽이는 ‘정신병’으로 진단하는 것은 ‘오진’이다. 그리고 ‘오진’을 통해 북한 군부 쿠데타나 민중봉기를 운위하는 것은 향후 대북 정책에서 큰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으면서 갖는 회한은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을 운위하면서 ‘비본질적인’ 문제를 이유로 북한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놓치고 있는 점이다.

조선시대를 포함해 역사상 수많은 참주들은 권력 강화를 위해 최측근들은 물론 친부모, 형제, 아내, 조카, 삼촌 등 친.인척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들 중에는 매우 오랫동안 집권한 사실이 있다. ‘기획숙청’으로 인해 대안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김정은 정권의 장기화에 대비한 장기적 대북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