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핵인권평화운동가 김봉대 선생(왼쪽)이 9일 옛 남영동대공분실에서 '제11회 박종철인권상'을 수상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학규 통신원]
반핵인권평화운동가 김봉대 선생(78)이 제11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봉대 선생은 반핵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 10년 전 숨진 원폭2세 김형률 씨의 부친이다.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이사장 김세균)는 9일 오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스러져간 옛 남영동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센터)에서 ‘제11회 박종철인권상 시상식’을 가졌다,

조국 서울대법학대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시상식에서 제11회 박종철인권상심사위원회(위원장 박동호 신부)를 대표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김봉대는 또 다른 이소선(전태일 열사 모친)이었고, 또 다른 배은심(이한열 열사 모친)이었고, 또 다른 박정기(박종철 열사 부친)였다”며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로서 자식의 이름으로 끝까지 싸운 아버지, 어머니였고 자식의 동지가 되어 그 투쟁을 이어받은 활동가였다”고 상찬했다.

박래군 소장은 “김봉대 아버님은 이제 김형률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골방을 나오지 못하고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1천 3백여 원폭 2세 환우들의 아버지”라며 “앞 세대가 책임져야할 문제로 고통받는 자식과 아랫세대를 위해, 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는 78세의 현역 반핵평화인권활동가”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그냥 아버지에 머물지 않고 당신이 모범적인 인권활동가로 거듭난 박종철의 아버님 박정기 선생을 떠올리며, 김형률의 10주기를 보낸 며칠 뒤인 오늘 김봉대 아버님을 제 11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고 김형률 씨는 2002년 3월, 국내 최초로 자신이 원폭후유증을 지닌 원폭피해자 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한국 원폭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마중물이 된 인물이다.

2004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이끌어냈고,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온 힘을 기울이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폭피해2세 환우들의 인권을 위해 애쓰던 중 지병이 악화되어 2005년 5월 29일 짧았던 생을 마감했다.

김봉대 선생은 아들의 뜻을 이어 반핵인권평화운동에 나서 지난 4월 26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핵 비확산조약 재검토 2015년 대회’에 참석해 “한국ㆍ미국ㆍ일본 정부가 원폭 피해의 유전성을 불인정하고 있지만 나의 아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라고 절규하며, 유니온광장에서 유엔까지 거리행진을 하는 등 핵의 참상을 고발하기도 했다.

▲ 김봉대 선생은 "아들의 이름을 계속 열심히 싸우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학규 통신원]
김봉대 선생은 수상소감을 통해 “저보다는 죽은 형률이에게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기로 했다. 이 상은 특히 저보다 훨씬 앞서 아들의 이름으로 굳건하게 싸워 오신 박정기 아버님께서 주시는 상인 것 같아 더욱 깊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형률이는 갔지만 아직도 형률이처럼 고통받는 원폭 2세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들 모두가 저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아들의 이름으로 계속 열심히 싸우겠다”고 밝혔다.

박종철인권상은 87년 우리 사회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었던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박종철 열사(당시 서울대 언어학과3년)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신의’와 ‘약속’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격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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