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일본대사관 앞 '금요 행동'이 29일도 어김없이 진행됐다. 몽당연필 소속 송승현 씨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일상화된 누군가의 투쟁을 새삼 재조명하여 관심을 환기하는 것 또한 특종 기사를 보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기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2015년 5월 29일 오전 11시부터 정오를 조금 넘길 때까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느 때처럼 벌어진 ‘금요행동’을 취재했다.

매주 금요일 정오가 되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KIN,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 연대체인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일본 정부와 문부과학성의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적 교육정책 폐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열린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실시했는데,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적용을 유예했고 2013년에는 혜택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후배들의 부당한 처지에 반발한 선배 학생들은 2013년 5월 31일부터 매주 금요일 문부과학성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고 그 뜻을 이어받아 국내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 구순의 시위자. 독도사랑운동본부 민경섭 상임위원이 일본대사관 맞은편 인도에서 묵묵히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대사관 앞을 지키는 사람들은 시민모임 뿐만이 아니다.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시침이 12시를 가리키기 한참 전부터 대사관 앞 인도를 묵묵히 지키는 노인이 있었다.

사단법인 독도사랑운동본부 상임위원 민경섭씨(89)는 구순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당당한 체구로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을 즉각 철폐하라’는 현수막을 목에 걸고 있었다.

곧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수행평가 과제라며 소녀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민씨에게 1인 시위 참가 계기에 대해 간략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학생들과 민씨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민씨가 학생들에게 ‘아베 정부는 독도침탈 야욕을 즉각 포기하라’는 구호를 제창할 것을 제의했다.

▲ 민경섭씨가 학생들과 구호를 외치자 경찰은 자제를 촉구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문을 경호하던 경찰 병력이 민씨에게 다가와 여러 명이 구호를 함께 외치는 순간 대사관에서 집회로 간주해 우리 측에 항의를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공권력의 개입은 시민모임의 집회 현장에서도 계속됐다. 정오를 조금 넘긴 무렵 시민모임 ‘몽당연필’ 소속 송승현씨가 ‘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무상화를 적용하라!’는 내용의 홍보물을 들고 인도에 서자 대사관 맞은편에서 근무 중이던 병력이 다가와 홍보물 사진을 찍었다.

채증을 하는 것이냐는 손씨에 질문에 “채증은 아니지만 집회자들의 홍보물 내용을 상부에 보고 해야 한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 경찰은 “채증은 아니지만 집회자들의 홍보물 내용을 상부에 보고 해야 한다”며 1인 시위를 촬영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4월 미 대사관 등 각국 대사관 앞에서의 1인시위를 제한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결정하고 당시 집회를 제지헸던 종로경찰서장 등에게 인권교육 수강 권고를 내린 전력이 있다.

올 초 미 대사관 주변 종북몰이 반대 시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던 수준의 제재는 없었고, 민씨를 자제시킨 경찰의 경우 국내 집시법(집회시위법)에 의거 2명 이상의 집단이 의견을 표출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취한 마찰 최소화 조치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채증은 아니지만 보고를 위해 사진을 찍겠다"는 주장은 한 번에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민씨는 2014년 10월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 집회 참석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는 “본래 독도사랑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독도 알리기 운동을 진행했었지만, 단체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개별적 노력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수막을 들고 대사관 앞으로 나왔다”며 “독도가 어엿한 대한민국 영토라는 진실을 부정하고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일본 정부에 침탈과 왜곡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반성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번이 두 번째 집회 참석이라는 손씨는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 내 차별을 종식하고 무상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무상화 교육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현지 지방자치단체들이 조선학교에 지원하던 보조금마저 지급을 중단한 근거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의 연계성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종북 논란에 갇혀 문제의 본질인 학생들의 교육권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매주, 혹은 매일 어김없이 같은 장소와 시간에 홍보피켓을 들고 고요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냉랭하진 않아도 그리 따뜻하지만도 않은 미적지근함’ 정도로 표현된다.

▲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가 내려간 일본대사관 건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답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남긴다.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주위는 점심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온 회사원들로 붐볐지만 분주한 발걸음에 정작 홍보물에 꽂히는 시선은 미미했다.

수행평가를 위해 위안부 소녀상을 방문했다던 학생들 역시 누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서울 역사 현장을 둘러보고 오는지 조별 시합 중이라며 빨리 가봐야 한다며 사진만 찍은 뒤 바쁜 걸음을 옮겼다. 다음 조도, 그 다음 조도 마찬가지였다. 경쟁 심리에 본말이 전도된 교육은 아닐까, 기우인지 모를 씁쓸함이 들었다.

일본 정부의 반응은 익히 알려져 있듯 비협조적이고 안하무인 격이다. 유엔산하 인권기구인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14년 8월 발행한 최종 의견서에서 일본 정부는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아무런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조선학교 역시 고교무상화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일본 현지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들은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고 천명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명백한 위반하는 처사”라며 규탄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고교무상화의 대상이 될 만한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니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반복했다고 한다.

독도 분쟁에 임하는 입장 역시 매한가지다. 지난 2월 22일 시네마현에서는 반성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 없이 ‘다케시마의 날’ 10주년 행사가 개최되었고 독도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근거들을 체계적으로 취합하여 정부 부처 및 대중에 배포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까지 더해지면 민간 차원의 노력은 힘이 빠지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쉽게 꺾이지 않는 듯 했다.

▲ 한국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받고 있는 일본 대사관 전경. [사진 - 통일뉴스 이태우 인턴기자]
삼엄한 경비와 경찰버스로 둘러싸인 대사관 전경, 맞은편에서 시위자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는 경찰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혈혈단신으로 일본 정부를 향한 메시지가 담긴 홍보물을 들고 서 있는 시위자가 이루는 묘한 긴장감은 매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거창한 구호도, 지지하는 대규모 관중도 없지만 변화의 시작은 1인의 행동부터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그들은 오늘도 침묵의 투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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