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헌 / 동국대 북한학 박사수료
 

신의주는 접경지역 특유의 사적 상거래 전통과 해상무역의 역사 등, 도시의 정체성으로 시장거래에 대한 당국의 제재가 잘 먹혀들지 않는 대표적 도시이다. 수년간 신의주의 상업적 활동은 채하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2002년 이래로 채하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신의주는 신발공장과 같은 경공업 부문의 대규모 공장과 기업소가 다수를 이루는 도시이자 육상과 해상으로 중국과 맞닿아 교역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으로 체득된 주민의 기질이 맞아떨어지는 신의주는 장마당의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에 신의주의 장마당은 대규모 경공업공장에서 생산된 신발, 화장품 등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발전해왔다. 장마당의 확산은 채하 장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의 남송장마당과 친선장마당, 그리고 변두리의 낙원장마당이 서로 위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이루어졌다.

▲ 2002년 4월 채하시장 주변 위성사진 (출처: http://www.nkeconwatch.com)

 

▲ 2004년 1월 채하시장 주변 위성사진. 시장 주변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장사에 주목할 것.
(출처: http://www.nkeconwatch.com)

 

▲ 2005년 1월 채하시장 주변 위성사진 (출처: http://www.nkeconwatch.com)

 

▲ 2009년 10월 채하시장 주변 위성사진 (출처: http://www.nkeconwatch.com)


채하시장은 마지막으로 촬영한 2011년 4월까지도 이 규모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2년 10월에 촬영한 다음 사진에서는 시장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시장이 있던 공간에는 공원이 새로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한때 최대 규모의 시장이었던 평성시장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채하시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장이 교외지역에 세워진 것이다.

▲ 2012년 10월 채하시장 주변 위성사진 (출처: http://www.nkeconwatch.com)

새로 생긴 시장의 규모는 기존 시장의 두 배를 웃돈다. 수치로는 대략 가로 183미터, 세로 60미터에 이른다.

한편 조사에 의하면 신의주 출신 탈북자들의 경우 ‘거간꾼’에 관한 언급을 많이 한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이 지나면서 기관 기업소에서 쌀을 못 주고 대곡도 안 해주었다. 그러니까 신의주시에서 (공장) 지배인들에게 너희 능력껏, 너희가 먹여 살리라고 했다. …… 배급을 못 내주니까 사람들 일을 못시킨다. 이 사람들이 직장에 안 나가고 다 암거래 시장으로 나가서 거간꾼 행세를 한다. 좀 능력 있고 눈 좀 돌아간 사람은 크게 사기 해먹고, 능력 없고 한 사람은 시장 나가서 조그만 장사꾼 사기 처먹고 자기 능력에 맞게 한다.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시장 나가서 공업품을 팔고 신발 하는 여자들에게 내가 얼마를 팔면 돈 몇 프로를 달라고 해서 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 소개시켜 주고 팔아주고 팔아준 값으로 얼마를 받는다. 그러니까 밑바닥 사람들은 몸으로 때워서 먹고 산다.”

약 20여년에 걸쳐 발전해왔던 채하시장의 빈 터에는 최근 고층 아파트가 지어져 수만 달러를 호가하면서 거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생활필수품을 늘어놓고 바쁜 거래가 오가던 시장을 뒤로 하고 움트는 거대한 부동산 시장의 활기는 외곽으로 옮겨간 장터의 모습과 겹치면서 오늘날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