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5.24조치 발표 5주년을 맞는다. 알다시피 5.24조치란 이명박 정부가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그해 5월 24일 발표한 대북 제재 조치이다. 그런데 5.24조치로 남북 경제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후 남측의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가 북측보다 더 크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북측을 압박하려고 한 조치가 오히려 남측에 피해를 주고 있다니,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이러니 이제와선 5.24조치가 남과 북의 공적(公敵)으로 치부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당연히 그간 북측은 5.24조치에 반발해 왔다. 남측이 5.24조치를 해제할 기미가 없자 북측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전가의 보도인 이산가족 상봉과 결부해 왔다. 북측은 박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 요구에 대해 그 조건으로 5.24조치의 해제를 내걸었다. 즉,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북측 때문이 아니라 5.24조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측에서도 예외 없이 5.24조치 해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남북 경협 당사자나 대북 지원단체들은 물론 시민사회계, 종교단체, 경제계, 그리고 정치권에서 여당 의원들조차 5.24조치 해제를 요구할 정도이다. 남북이 이러니 박 정부에게 5.24조치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말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끝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시기가 올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6.15공동선언 15주년과 8.15광복 70주년이라는 남북 대화의 ‘골든타임’(golden time)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더 나빠졌고 기대는 어긋났다. 개성공단 최저임금 문제가 미봉책으로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남북 갈등의 소지가 있으며, 6.15공동선언 15주년을 코앞에 두고도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합의하지 못해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을 잃고 있다. 게다가 북측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남측의 ‘현영철 숙청’ 발표 및 ‘공포정치’ 부각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 꽁꽁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금언은 언제고 긴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이제 그 소기의 목적이 불분명해지고 오히려 남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5.24조치를 아무 조건 없이 해제하면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너무 내뱉은 말이 많기에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캐릭터 상 북측에 지기 싫어하고 또 이명박 정부의 유산을 자신이 설거지 한다는 게 영 마뜩치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건 5.24조치를 건드리지 않고 그것도 우회가 아닌 뛰어넘는 것이다. 즉 5.24조치 해제 문제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더 크게 보자는 것이다. 역사에 그 답이 있다.

다름 아닌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이다.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으로 발표된 7.7선언은 ‘남북동포간 상호교류 적극 추진 및 해외동포들의 자유로운 남북 왕래 문호 개방’, ‘이산가족들 간의 생사, 주소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적극 주선’,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나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협조’ 등 모두 6개항으로 되어 있다. 지금 봐도 놀랍지 않은가?

7.7선언 발표로부터 27년이 흘렀다. 27년이 흐른 만큼 ‘노태우 7.7선언’의 내용보다 더 풍부하고 파격적인 대북 제안을 담는 이른바 ‘박근혜 7.7선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24 대북 제재 조치의 내용을 뛰어넘는 새로운 남북 교류 협력의 내용이 담긴 선언 말이다. 그렇다면 전임 대통령이 남긴 5.24조치라는 ‘부(負)의 유산’(Negative heritage)을 제 손으로 치울 필요도 없고 또 북측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5년간 끌어온 계륵 같던 5.24조치는 자연사(自然死)할 것이고 박 대통령은 ‘제2의 7.7선언’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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