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규섭/수석도/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서양미술의 기본은 인물화로 시작한다. 그 인물화 중에서 나체화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우리그림의 기본은 온갖 사물을 그리는 백물도(百物圖)로 시작한다. 백물도 중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그림이 수석도(壽石圖)이다.

수석도(壽石圖)는 평범하고 못난 돌을 그린 그림이다.
수석도의 소재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돌로는 풍파에 깎이고 닳아서 구멍이 숭숭 뚫린 태호석, 침향석, 수포석 따위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도 모두 수석도의 주요 소재이다.
수석도는 교양적 차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선비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미술공부를 하는 화원들이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 가장 먼저 그려야 하는 그림이다.
이런 수석도가 조선 말기가 되면 청나라와 도교의 영향으로 사물이나 동물을 닮은 특별한 돌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수용된다.

돌의 상징은 다양하다.
선비들에게는 모진 풍파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특성으로 인해 주로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된다. 또한 조선 말기의 부자 양반들에게는 정신적, 물질적 허영심을 채워 주는 풍요의 상징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에게 수석은 신선세계의 일부나 무병장수와 같은 도교적 의미로 수용한다.

우리그림에서 수석은 만물의 기본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그림에는 돌이나 바위가 등장한다. 장생도나 오봉도에는 그야말로 온통 돌이나 바위산으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는 궁중모란도나 화조도에도 수석이 들어가 있다. 우리그림에서 수석을 빼면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그림에 등장하는 수석은 여러 상징들이 통합되어 있다. 장생도나 오봉도에 표현된 기암괴석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세계의 상징이다. 또한 궁중모란도에 표현된 수석은 생명의 근원이자 절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화조도에 등장하는 수석은 생명의 바탕으로 표현한다. 대중그림인 민화에서는 무병장수의 상징이다. 그래서 수석에는 무수한 생명점(태점)이 찍혀있다.

어떤 사람은 흔해 빠진 돌이 우리그림의 중심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지구의 대부분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름진 흙도 돌의 일부분일 뿐이다. 결국 돌은 모든 생명을 키우고 먹여 살리는 주요한 요소인데 생명미학을 추구하는 우리그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위 그림은 한 아름 크기의 돌을 채색화로 그렸다.
조약돌처럼 예쁘지도 않고 태호석처럼 멋있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돌이다. 또한 개구리와 민들레, 석란, 들국화를 그려 여러 생명들과 어우러지게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돌을 생명의 근원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돌의 느낌을 보완하고 장식성을 높이기 위한 구성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화제는 ‘생명돌’이다.
수석도는 ‘생명돌’을 그린 것이다. 보통 이런 그림을 괴석도(怪石圖)라고 부르지만 좋지 않은 어감이다. 그래서 생명의 바탕이란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목숨 수(壽)를 넣어 수석도(壽石圖)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수석도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이런 수석도를 처음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그림을 공부하고 창작하는 화가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그림이다.
수석도를 알고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그림의 전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하지 않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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