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의 항일활동에서 가장 고귀한 업적 중의 하나가 문화항쟁을 통한 민족문화수립에 대한 기여라 할 수 있다. 특히 단군의 의미를 민족적·사회적인 의미로 대중화시키는 등 민족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군이라는 이미지 대중화는 곧 각 방면에서 단군민족주의의 활성화와 직결되었다.

더욱이 대종교 중광은 우리 민족의 경절인 개천절의 문화적 정착과 생활 속에 녹아 흘러 온 단군문화의 의미를 각성시키는 요인이었다. 일제하에서 개천절은 대종교로 국한되는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서 범민족적 기념일로 인식되어 망명동포들이 거주하는 곳이면 때마다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 대종교 중광은 개천절을 정착시키는 등 단군문화의 의미를 각성시키는 요인이 됐다. 사진은 2003년 평양 단군릉에서 남북해외 대표단이 함께 개천절을 기념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에 안재홍은 “조국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 자주하는 정신이란 별것이 아니고 우리 국조 단군 적부터 스스로의 민족, 스스로의 나라, 스스로의 문화의 기업基業을 세워주고 열어주고 또 길러 주신 그 연원, 그 전통, 그 그늘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이 개천절을 국경일로 기념하게 된 것이고, 동시에 국조이신 단군의 성적을 옹호하고 유지하는 사업은 문득 민족정기를 똑바로 세워 독립과 자유와 통일 단합을 재촉하는 기본조건의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라고 개천절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조소앙도 우리 민족이 단군의 개천건국 이래 동방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졌다고 자부했다. 그는 고구려의 무위(武威)와 신라·백제·고려·조선의 문화가 자립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세계 어느 민족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었고 이렇듯 찬란하고 유구한 문화 위에 독립 자주하여 온 것은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영도적 지위에 있었음을 자타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한편 정인보도 1935년 발표한 글에서 10월 개천절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삼위태백을 굽히어 보아 인간에 홍익을 도모할 수 있음을 헤아리시고,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에 하강하셨다 하는 환웅천왕의 성스러운 자손이신 단군은 곧 상천上天의 부속咐囑을 몸받으신 고의古義라. 홍익인간이 단군의 심인心印인 동시에, 이른바 천부인 삼개三個라 함이 환인·환웅·단군 삼위의 일심一心이 한 가지 이에 있음이 인印침 같다 함을 화전化傳함이리니, 그 심인心印이 있는 곳을 찾으려 할진대 홍익인간이 이것이요, 인간에 홍익을 도모하시니 만큼 두루요, 또 크되 삼위태백으로 그 베푸심에 근본을 삼으시니, 예로부터 전함이 비록 간소할지언정 고정교古政敎의 면모를 삼가 계고稽考함직하니.”

더불어 「단군교포명서」에서는 우리 고유 한복에 나타나는 흰색의 영금(領襟) 동정과 단임(檀任) 댄님, 어린 아이의 변발치장 시의 단계(檀戒) 댕기, 그리고 집안 성조신에 대한 고사와 단군어진(檀君御眞)에 대한 유래, 또한 팽우씨와 관련된 선령당(仙靈堂), 성황당, 서낭당과 고시씨(高矢氏)를 기리기 위해 유래된 ‘고시레’ 등의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단군문화의 복원이라는 문화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와해시키려 했던 일제에 대해 문화적 저항요소로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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