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대종교(大倧敎)는 1909년 단군교라는 이름으로 중광(다시 일으켜 세움)한 민족 종교다. 홍암 나철(1863~1916) 대종사가 창시가 아니라 중광을 선포한 것은 단군조선 시대의 신교(神敎)로부터 이어오다 고려 중엽 몽골의 침입으로 문이 닫힌 우리 고유 종교를 다시 일으킨다는 뜻이었다.

대종교는 항일 독립운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 시기에 중광한 대종교는 항일 독립투쟁으로 일관했고, 일제하 36년 간 무려 10만여 명의 순교자를 냈다. 홍암 나철 대종사가 유신회를 조직, 을사오적 처단에 나선 것을 비롯해 ‘무오독립선언서’ 발표, 대종교도들이 주축을 이룬 북로군정서의 ‘청산리독립전쟁’ 승리와 ‘조선어학회 사건’ 등은 일제시기 대표적 항일운동 사례로 꼽힌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뉴스>는 대종교 측에 대종교의 민족독립운동 연재를 요청했고, 최경주 대종교 교화사(성직자)가 기존 연구 성과를 정리, 작성해 연재가 이루어졌다. 대종교의 관점에서 기술됐고, 고유한 어투로 서술된 점을 참작해 잊혀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함께 여행해 보자. 매주 화요일 2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을사년(1905년) 6월에 오기호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의 영구한 평화을 위하여 한․일․청 삼국이 상호 친선동맹을 맺고 또 한국에 대하여는 선린의 교의로써 부조하라는 의견서를 일본정부 각 대신들에게 전달하고 환국하던 개천4363(1906) 병오년 1월 24일 늦은 밤 11시에 나철은 노상에서 첫 번째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서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서 지금의 세종로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갈 즈음 한 노인이 삭풍에 백발을 휘날리며 급히 걸어오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고 “그대가 나인영(나철의 본명)이 아닌가?”하고 물으매 그는 심중으로 이상히 생각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 노인은 이어서 말하기를 “나의 본명은 백전(伯佺)이오 호는 두암(頭岩)이며 나이는 90인데 백두산에 계신 백봉신형(白峯神兄)의 명을 받고 나공(羅公)에게 이것을 전하러 왔노라”하면서 백지에 싼 것을 주고 서대문 쪽으로 홀홀히 가버렸다.

노상에서 두암으로부터 받은 것을 귀가 즉시 펴보니 삼일신고와 신사기 각 한 권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산낙일 같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돌이키기 위하여 희생을 각오한 나철은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심하게 책장 한구석에 방치하였다.

그 후 개천4365(1908) 무신년에 일본과 외교담판 차 일본에 머무르던 11월 12일에 나철의 숙소 청광관으로 한 노인이 찾아온다. 그는 백봉신형 제자인 미도 두일백이다. 그는 나철에게 ‘단군교포명서’를 비롯한 단군신앙 관련 서책들을 전해주며 미래의 사명이 이 정신의 중흥에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며칠 뒤인 1908년 12월 9일 밤, 나철은 미도 두일백으로부터 단군교 의식을 통해 영계(靈戒)식을 받고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존재한다)’을 가슴에 새기고 귀국한다. 국망이라는 절망감 속에서 도존(단군사상)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찾은 것이다.

▲ 홍안 나철은 단군사상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대종교가 모시고 있는 단군 천진. [사진출처 - 대종교]
나철은 나라를 구하는 길이 과거의 족쇄였던 유교적 자아의 껍질을 벗고 민족적 자아로 변모하는 것이며, 민족적인 면에서는 단절되었던 민족문화의 거대한 줄기를 세우는 단군신앙의 중광(重光, 다시 일으킴)을 모색하는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나철은 1909년 1월 15일에 오기호·최전·류근·정훈모·이기·김인식·김윤식등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더불어 「단군교포명서」를 선포하고 단군신앙을 다시 일으킨다.

대종교의 중광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워 준 사건으로써 우리 민족사의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즉 역사 속에 침잠되어 오던 단군신앙의 부활을 통하여 당시 주권을 잃어버린 암울한 민족사회 전반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민족정체성의 와해 속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우국지사들과 동포들은 이를 통하여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특히 국망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된 역사적 원인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도존이라는 정신적 일체감을 통한 치유방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등 국학 중흥의 당위적 방향을 제공했다.

한편 나철은 창교(創敎)가 아닌 중광을 선택함으로써 단군신앙의 원형인 전래 신교의 계승의식을 분명히 천명했다. 이것은 몽고 침입 이후 약 700년간 단절되었던 배달민족 고유신앙의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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