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올해 초 아베 일본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면서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나는 오늘 인간이 타인을 차별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말하며 “일본은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 계속 기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한 피해국과 그 국민들이 이 말의 진정성을 믿기에는 아베의 언행이 너무도 이중적이고 가식적임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월 26일부터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총리는 연일 평화 인권의 신봉자인 양 코스프레를 이어가고 있다. 27일에는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외교관 스기하라 씨의 비자 발급으로 목숨을 건진 유대인 3명을 만난 아베 총리는 “일본으로 향한 유대인 난민을 도운 일본인이 적지 않게 있었다”며 “그들의 용기를 배우고 싶다. 이런 일본인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일본판 쉰들러’를 부각시키면서, 홀로코스트와 관련 “비극을 풍화시키지 말고 기억에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우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화법이 세계적 유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경지에 이르렀다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어린이 100만을 포함한 유대인 600만명과 폴란드인 집시 동성애자 등 1,000만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죄업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한층 악랄한 학살과 만행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름하여 ‘아시안 홀로코스트’라 할만한 반인도적 전쟁범죄가 일본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지속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일본은 물론 서구사회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범죄행위를 일부나마 기억하고 교육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잊혀진 일제의 ‘아시안 홀로코스트’는 그 대상의 광범위함과 잔인성에 있어 나치의 죄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일제의 무차별적인 학살의 원형은 한국에 대한 침탈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군은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 시기부터 사실상 살육과 다를 바 없는 작전을 펼쳤는데 일본군 전사자는 극소수였던데 비해 피학살자는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십만 단위의 규모로 발생했다. 특히 ‘남선대토벌’이란 초토작전을 전개하면서 벌인 살상과 파괴는 해외 언론이 ‘무자비하고 비겁한 대량학살이자 범죄행위’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3.1독립항쟁기에는 비폭력 시위 군중들을 학살한 수가 7,500명이 넘었다. 만주의 독립전쟁에서도 일본군의 살인 강간 방화 등 피비린내 나는 초토화작전은 재연되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20년 경신대참변을 일으켰으며 헤아릴 수 없는 우리 이주 동포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중국의 인적피해는 더욱 막대하였다. 30만명의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살육한 난징(南京)대학살을 비롯, 일본군 대본영이 기획하고 북지나방면군이 수행한 신멸작전〔燼滅作戦: 타다가 남은 깜부기불마저 아예 없애버리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살광(殺光:다 죽여) 소광(燒光:다 태워) 창광(搶光:다 뺏어)의 삼광작전으로 지칭〕으로 270만 명 정도의 민간인이 살해당한 것으로 중국측은 파악하고 있다. 악명높은 731부대를 비롯한 다수 특수부대의 생체실험, 카이밍(開明) 세균 무기 공격, 창더(常德) 화학 무기 공격 등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포함하여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 과정에서 2,100만명이 희생당했다고 중국은 주장하고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연합군과 현지 민간인에 대해서도 일본군의 야만적인 살육행위는 계속되었다. 1942년 2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알렉산드라 병원 직원 부상병 200명 학살과 화교 수만명 숙칭(肅淸)대학살, 1942년 4월 바탄 죽음의 행진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 만여 명 사망, 1943년 버마 죽음의 철도(泰緬철도) 11만 6천명 사망, 1945년 1월 보르네오 산다칸 죽음의 행진 호주 및 영국군 2천 5백명 사망, 1945년 2월 마닐라 필리핀 민간인 대학살 10만 등이 그 일부 사례이다. 아시아 일대에서 강제동원되어 희생당한 인원은 집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는 일본군과 경찰의 방조 아래 조선인 6천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20만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경우도 회복 불가능한 인격말살이라는 측면에서 학살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와 같이 한국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버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오키나와 남양군도 등 아시아 남태평양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된 학살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사례가 많으며 인명피해 또한 막대하였다. 강간 고문 방화 등을 포함하면 만행의 규모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시안 홀로코스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배상과 사죄, 책임자 처벌 그리고 끊임없는 반성과 교육을 보면서도, 일본은 자신들은 독일과 경우가 다르다고 강변하면서 메르켈 독일 총리의 간곡한 충고마저 외면한다. 후안무치하고 비열하게도 연합군에 대한 전쟁범죄는 시인하면서도 아시아 인근제국에 대한 사죄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으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끝내 회피하였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2차대전에 대해 거듭 반성을 표명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물론 심지어 침략이라는 용어마저 교묘히 피해가는 기만적 태도로 일관하였다.

미국에 대해서는 기획사를 동원해가며 비굴할 정도로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개발을 지원한 시혜자였음을 자임하며 한국인들의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넘어 이제 가해자가 아니라 한국을 근대화시킨 은인 행세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노골적인 모욕은 보수정권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민주정부 10년간은 이런 외교적 결례를 당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민주주의와 인권 측면에서 당당할 수 있었으며 남북협력관계 구축도 동북아 외교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탓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한국을 가치관도 공유할 수 없는 후진국 취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외교무능에 남북대결구도가 더해져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독도문제를 제외하면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들과 한국의 집권세력 사이에서 별다른 인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 정권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교육 학술 언론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뉴라이트세력의 소신이 식민지근대화론이며 친일청산 반대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혼쭐이 난 뒤 조심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교과서에까지 모호하게 표현하려 했던 자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던가.

아베는 A급 전범인 외조부 기시 전 총리가 미일동맹 강화를 추진한 신념이 옳았다고 미국에서 떠들어댔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미화하려는 아베의 기도 또한 DNA에서 비롯한 본능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일본과 한국의 극우세력은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동일한 DNA를 가진 쌍생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한일 극우정권 간의 불화는 이해하기 어렵고 희화적이기만 하다.

올해는 일제의 조선침략이 시작된 운요호사건이 일어난 지 140년 해방과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침략과 식민지배는 한국의 근대를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질곡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치가 상징하듯 동북아의 국제정세마저 퇴행적인 현상이 역력하다. 책임질 줄 모르는 이웃, 조만간 현실화 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에 대처해야 할 방도는 또 무엇인가. 한반도중립화론 등 과거의 역사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통일시대를 내다보며 민족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를 진행했다. 친일문제와 한일관계 등 근현대 과거사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법정에 선 역사정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 「74년 조직(세칭 ‘인혁재건위’)사건의 운동사적 의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의 의미와 쟁점」 등의 글이 있고, 『일제협력단체사전』,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 경희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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